‘전국노래자랑’ MC 발탁된 김신영, 그가 써온 성장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처음에는 이게 사실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곧 이 선택이 ‘신의 한수’라고 생각하게 됐고, 나아가 그 한수가 된 이 인물은 그 자리에 설 자격이 충분하고 마땅한 인물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故 송해 선생님의 후임으로 KBS <전국노래자랑>의 MC로 발탁된 김신영 이야기다.

먼저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이 갖는 상징성과 색깔에 김신영만큼 어울리는 ‘희극인’이 있을까 싶다. 그저 장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국의 소외된 지역들을 찾아가 그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프로그램이다. 또 그 무대에는 미취학 어린이부터 고인이 되신 송해 선생님만큼 고령의 어르신들까지 선다. MC는 단순 진행자가 아니라, 이 폭넓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아닌 그 분들을 세움으로써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인물이어야 한다. 성실함과 겸손함은 물론이고 한껏 흥을 돋으면서도 호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단지 기량(?)으로는 가질 수 없는 요건들이다.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간 살아온 삶의 족적이 나이테처럼 들어서 어떤 태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서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그런 삶 자체가 보기 흐뭇해 응원하게 만드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 희극인으로서 그저 웃기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긴 태도가 더해져 어떤 페이소스를 줄 수 있는 사람.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의 MC는 그런 상징성을 흡수할 수 있어야 가능한 자리다.

김신영은 여성 희극인으로서 그 성장사가 뚜렷한 인물이다. MBC <오늘은 좋은 날>에서 강호동이 했던 ‘소나기’라는 코너를 모티브로 만든 <웃찾사> 간판코너 ‘행님아’로 주목받고 성공했지만, 그 시도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안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던 그였다. 여자가 남자가발 쓰면 안된다, 강호동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몇 번의 퇴짜를 맞은 후 김태현과 콤비를 맞춰 올린 ‘행님아’는 <웃찾사>의 간판개그코너가 됐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김신영이 해온 도전과 성장에 대한 서사의 모티브가 담겨 있다. 여성 희극인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남성 캐릭터를 소화해냄으로써 그 한계를 깬 것이다. 하지만 그건 김신영이 걸어온 도전의 길에 첫 걸음일 뿐이었다. 너무 성공한 코너로 인해 굳어져버린 캐릭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한걸스> 등을 통해 특정 상황의 인물을 콩트로 연기해내는 탁월한 기량을 인정받았지만, 남성 예능인들 중심으로 채워졌던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 동안 갈수록 설 무대는 좁아졌다.

여기에 건강 문제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서 김신영은 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몸으로 웃기던 시절, 희극인이 다이어트를 통해 살을 뺀다는 건 웃음을 포기한다는 뜻으로까지 곡해됐다. 살을 빼고 웃음을 잃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신영이 최근 KBS <빼고파>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가 해온 다이어트가 그저 살을 빼는 표피적인 행위가 아니라 희극인으로서의 소신과 철학이 담긴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그저 몸으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건강한 웃음을 찾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는 것.

점점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제되는 여성 희극인들이 결국 스스로 새로운 물꼬를 틔우는데 전방위적인 역할을 했던 송은이와의 만남은 이러한 김신영에게도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한때 “행님아-”를 외치며 소년 연기를 했던 김신영은 이제 “주라 주라”를 외치는 다비 이모가 되어 그의 특기인 서민 캐릭터 연기로 새로운 정점을 찍었다.

게다가 그의 도전은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셀럽파이브로 가수의 길을 나서는가 하면,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는 형사 역할을 맡아 ‘미친 존재감’을 연기했다. 지난 10년 간 <정오의 희망곡>을 성실하게 이끌어오며 청취자들과 소통해온 그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전국노래자랑> MC 발탁은 바로 이러한 삶의 총제적인 족적들이 뭉쳐져 나온 결과였다는 것이다.

희극인은 웃기는 사람이지만, 바로 그 웃음이 깊이를 갖는 건 여러 차례의 삶의 시련을 겪으며 그 상처들이 나이테처럼 웃음에 깃들여질 때다. “한 물 갔다”는 김신영에게 “축하한다”며 “한물가고 두물가고 세물가면 보물이 된다”고 했다는 전유성의 말처럼 김신영은 이제 깊이가 느껴지는 웃음을 주는 희극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전국노래자랑>의 MC 자리는 바로 그 길이 되어줄 것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SBS, MBC, 영화 <헤어질 결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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