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드라마 도전, 깊이만큼 대중성 아쉽다(‘욘더’)

[엔터미디어=정덕현] 이준익 감독이 드라마 연출에 도전한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는 이 사실만으로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잡아끈다. 영화 <왕의 남자>를 비롯해 최근작인 <자산어보>까지 무수한 히트작들을 내놨던 대가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아닌가. 하지만 막상 서비스된 <욘더>를 본 시청자들은 아쉽게도 어딘가 너무 느리고, 무겁고,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다고 할까.

SF 장르지만 <욘더>가 그리는 2032년의 세상은 그리 요란하게 낯설지는 않다. 작품 자체가 그런 외적 환경의 변화보다 안락사 법이 통과되면서 이를 선택한 자의 내적 심리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현(신하균)은 심장암으로 고통스럽게 투병 중인 아내 이후(한지민)가 선택한 안락사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렇게 이후가 떠나는 날 그 집을 방문한 세이렌(이정은)은 이후의 귓가에 의문의 장치를 부착한다. 그건 기억을 간직하는 장치로, 이 장치를 통해 재현은 이후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계 욘더를 통해 이후를 계속 만날 수 있게 된다.

<욘더>가 던지고 있는 건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대한 질문이다. 재현은 아내가 떠난 후 아내로부터 온 영상 메시지를 받고 충격에 빠진다. “여보 나야. 죽기 전에 자세히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해. 나 여기 있어. 여기로 떠나온 거야. 여기 기억나?” 그 메시지는 아내의 기억이 간직된 바이 앤 바이에서 보낸 것으로 재현은 그곳을 찾아가 아내의 기억이 만든 세계 욘더 속에서 아내를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한다. 죽었지만 육신이 죽은 것이고, 기억은 살아남아 여전히 산 자와 대화를 나누고 소통한다면 그건 죽은 것인가 산 것인가.

재현은 그 경험을 가짜라고 거부하지만 점점 욘더를 통해 아내를 만나면서 그 세계에 진짜로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재현씨는 보이는 걸 믿으세요? 저는 생각하는 걸 믿습니다.” 세이렌이 처음 재현을 욘더로 인도하며 던지는 그 말은 이제 재현이 겪게 될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의 혼란을 예고한다. 아내가 평소 자주 했던 말은 그래서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낸다. “내가 없어진다는 건 나에게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당신으로부터 없어지는 것이다.” 즉 남은 기억이 생생히 살아 구현되는 욘더라는 세계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는 남은 자들의 기억의 문제가 된다. 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한 떠난 자들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욘더>의 이야기는 이처럼 진중하고 무겁다. 기억을 간직하는 공간이라는 욘더의 세계관을 가져와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또한 던지고 있다. 즉 욘더 같은 세계를 구현해내는 것이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재현해내는 영상 기술이고, 영화나 드라마는 바로 그 가상을 실재처럼 몰입시키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극점에 이르러 가상을 실재처럼 느낄 수 있는 특이점을 넘게 되면 영상 콘텐츠가 부여하는 경험은 우리 개개인의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욘더>는 분명 가상현실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질문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깊이가 대중성으로 구현되지는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일단 이야기 전개 속도가 현저히 느리고 무거운 이야기를 계속 들여다보게 만드는 추동력이 생각보다 약하다. 회당 30분 남짓의 분량도 드라마라기보다는 긴 호흡의 영화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관에서라면 일단 들어갔으니 어쨌든 끝까지 들여다보겠지만 OTT는 다르다. 잠깐 지루하다 싶으면 채널이 돌아가는 게 드라마의 생리니 말이다. 6부작의 3부가 공개됐다. 나머지 3부는 어떨 지가 못내 궁금하다. 깊이의 세계가 넓이로도 나갈 수 있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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