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대작의 향기, ‘커튼콜’ 어떤 이야기 펼쳐질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오랜만에 느껴지는 대작의 향기다. KBS 월화드라마 <커튼콜>은 한국전쟁 당시 기적 같은 사건으로 잘 알려진 흥남부두 철수작전으로 문을 열었다. 메리디스 빅토리호를 타기 위한 피난민들의 절박한 탈출기와 그 과정에서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이들의 절절한 슬픔이 안방극장에서 재현되었다.

이 압도적인 스케일은 <커튼콜>이라는 작품이 가진 대작의 풍모를 드러낸다. 남북한을 경유하는 공간적 배경과 더불어 한국전쟁부터 현재까지를 잇는 시간적 배경이 걸쳐진 대서사가 그것이다. 그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 리종문(강하늘)과 아들까지 북에 두고 생이별을 하게 된 자금순(하지원)은 하염없이 가족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나무’가 됐다.

“저 수평선 너머에서도 보이는 등대 같은 호텔을 만드는 게 내 꿈이라고 했었지.” 자금순은 가족을 기다리며 바닷가 국밥집에서 일을 하고 ‘낙원’이라는 여관을 차린다. 그리고 낙원은 손녀 박세연(하지원)의 노력으로 현재 ‘낙원 호텔’이라는 거대한 호텔체인이 된다. 자금순이 등대처럼 서 있던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거목이 된 것.

거목은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누구든 기댈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지만 풍파 또한 겪는다. 남편도 자식 내외도 차례차례 사망한 것. 이제 92세의 나이에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자금순(고두심)이 원하는 건 단 하나다. 그건 이산가족상봉에서 만났던 북의 손주를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이다.

즉 자금순 회장에게 낙원 호텔 체인은 기업의 자산 그 이상의 의미다. 그건 이산가족에 대한 그리움이고, 그 그리움을 품은 채 버텨온 그의 삶 전체다. 손녀 박세연은 그 뜻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지만 첫째 손주 박세준(지승현)은 생각이 다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낙원 호텔 체인을 하나의 자산으로만 보고 가치가 가장 높을 때 매각하려 한다.

<커튼콜>의 이야기는 그래서 자금순 회장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즉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그들에게 넉넉한 보금자리가 되어 그늘을 내어주는 그 가치를 이어주려는 이들과, 자본화된 세상에서 모든 걸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며 계산하는 이들의 부딪침을 담고 있다. 자금순 회장의 수행비서이자 오른팔인 정상철(성동일)이 연극배우 유재헌(강하늘)에게 건넨 제안은 그래서 앞으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드러낸다. “자네 연극 한번 해보지 않겠나? 인생을 바꿀 만큼 크고 아름다운 무대에서.”

진짜 북의 손주인 리문성(노상현)이 조선족 계열의 마약조직에 소속되어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걸 알게 된 정상철은, 자금순 회장에게 차마 그 진실을 알리지 못한다. 연극이라도 해서 아름다운 끝맺음을 하게 해주고 싶은 것. 결국 <커튼콜>은 유재헌이 탈북한 자금순의 손주라는 연극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릴 예정이다. 연극으로 시작할 테지만 진짜 손주가 되어가는 유재헌이 경험하게 될 일들은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걸 드러낼 것으로 보이고, 그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진위보다 중요한 진심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나무는 서서 죽는다’는 이 드라마의 부제는 그래서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그건 한국전쟁 이후 폐허 속에서 일궈낸 경제적 성과들이 그저 수치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무처럼 누군가 손수 심어내고 키워낸 결과물이라는 것이고, 많은 희생들이 주춧돌처럼 세워져 이룬 결과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그 소중한 가치와 사람을 향한 필생의 그리움을 채워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뜻을 하나로 모으는 그 과정은, 연극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예술 작품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세워지는 ‘인생연극’ 한 편은 얼마나 소중한가. 오랜만에 대작의 향기를 풍기는 이 작품은 과연 그 취지대로 마지막에 이르러 제목처럼 ‘커튼콜’을 받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 과정이 궁금해진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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