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높은 시청률만큼 화제성 뒤따르지 않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드라마 <대행사>가 또 한 번의 흥행몰이 중이다. 초대형 흥행작 <재벌집 막내아들>의 후속이라 부담이 큰 데다 관심도 면에서 동시간대 시작한 경쟁 드라마보다도 주목도가 낮았다. 그러나 4.8%로 무난하게 시작한 시청률이 4회 만에 10%대를 바라볼 정도로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시청률퀸’ 이보영의 스타파워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대행사>는 대기업 광고 대행사를 배경으로 이보영이 분한 고아인 상무가 여성들 앞에 놓인 유리천장을 와장창 깨나가는 이야기다. 무대로 삼은 광고업을 2000년대 <광끼>처럼 치열하고도 화려한 세계로 조명한다. 고아인은 그 치열한 세계에서도 외모부터 능력까지 압도적으로 뛰어난 독보적인 인물인 동시에, 흙수저조차 없는 집안, 지방대 출신의 학벌, 성별로 인해 대기업 광고대행사에 입사한 순간부터 한 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유리천장을 깨온 입지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제목이 주는 기대와는 달리 광고 일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전문직 드라마는 아니다. <대행사>의 고아인이 대행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 직장 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공정과 어려움을 깨부수는 통쾌한 한방이다. 외모부터 워너비인 이보영은 여성들의 공감대와 롤모델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20대 재벌가 3세 낙하산 상무(손나은)와 등거리 관계를 유지하며 중년 남성들로 상징되는 사내 기득권과 맞선다. 이처럼 주제 의식이 명확한 만큼 갈등 지점과 선악의 경계도 뚜렷하다. 간사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남자 간부들의 반대편에는 능력은 출중하나 육아를 위해 가족들로부터 일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는 워킹맘(전혜진)이 자리하는 식이다.

드라마는 성공만 바라보고 인생과 인간관계를 갈아 넣어온 고아인이 그토록 원하던 임원이 되는데서 시작한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딛고 꿈을 이뤘다고 뿌듯해하는 순간, 사측의 계산에 따라 마케팅용으로 승진한 1년짜리 임원임을 알게 되면서 각성하고 맞선다. 자신의 사무실에 ‘이끌든가, 따르든가, 비키든가’라고 걸어놓은 카피는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이자 목표다. 드라마는 숱한 장애물을 넘고 극복하는 여성의 모습을 얼마나 통쾌하고 속 시원하게 보여줄지에 초점을 맞추고 활약을 기대하게끔 한다.

생존 전쟁을 선포한 고아인은 처음부터 내달린다. 인사 전권 가진 내규를 이용해 비리를 저지른 라이벌파의 팀장들을 일반 팀원으로 강등시키고, 비공채 출신을 자신의 편으로 삼기 위해 기습적인 인사평가를 단행해 공채 출신 진급 대상자들을 배제한다. 사내 기득권층에 부역하는 자신의 ‘여성’ 비서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날리기도 한다. 잔인하다는 부하 직원의 충언에 “사자가 사슴 잡아먹는다고 잔인하다고 하나? 생존을 위해선 뭐든지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반 년 안에 매출 50%를 못 올리면 사직할 테니 반대하고 싶으면 다른 임원들도 자신처럼 직을 걸라고 배팅한다.

고아인의 대사처럼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전쟁을 치르다보니 <대행사>는 초반부터 여러 인간군상이 모여 펼치는 현실의 축소판 같은 오피스 드라마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시청률이 오른다는 것은 고아인의 광폭 횡보에 감정이입을 하는 시청자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주제의식과 스토리 전개가 이토록 쨍하고 선명한 반면, 그 이면에 흐릿한 부분도 있다. 한마디로 너무 뻔하다. 현실의 불만과 답답함을 극적으로 깨부수는 판타지는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을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에 따라 몰입도가 달라진다. 또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명확해도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로우면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대행사>는 통쾌함의 파장을 크게 만들고자 현실을 너무 과장하거나 단순화한다. 시청률이 높지만 화제성이 비례하지 않는 이유이자, 박수만 치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예를 들어 유리천장을 깨는 여성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재벌 그룹에 최초의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는 설정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전개는 과하다. 심지어 여성이 임원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뉴스에 초대되고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10년 전이라고 해도 과연 뉴스거리가 될 수 있었을까 의문일 만큼, 통쾌함을 증폭시키기 위해 현실이란 이름의 구덩이를 너무 깊게 팠다.

대행사의 지나치게 수직 관계의 의사소통 문화도 이질감이 느껴진다. SNS 인플루언서와 챌린지 문화가 등장하는 등 오늘날 시대상을 반영한 볼거리들과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사가 팀원들에게 반말로 하대하고 근무시간을 보장하지 않으며, 때로는 모욕을 동반한 업무지시를 한다. 고아인은 극중 그런 부분에서 가장 악명 높다. 여성이라서 받는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고 싸우고 있다만, 능력 제일주의와 비인격적인 대우 또한 여성의 유리천장만큼이나 살펴봐야 할 문제가 아닌지 헷갈린다.

이 드라마가 제공하는 판타지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싸움의 시작이 고아인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생존과 성공 욕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라고 항상 대의를 품고 진지하게 사회 정의를 대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싸움이 여자이기 때문에 받은 불이익인 것이 시작인 것은 맞지만 그 이후 최창수 상무(조성하)와 주고받는 장군멍군은 여성 직원들을 대표해서 부당함에 맞서는 상황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이런 과정에서 주인공의 행동은 불우한 가정환경의 트라우마라는 서브플롯으로 이해를 구하지만, 시련을 가져다주는 악역의 욕망은 단순하고 1차원적으로 그려진다.

주제의식이 선명한 것은 좋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운영의 묘와 세련미가 필요하다. 꼭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좋은 드라마인 것은 아니지만, 대리만족적 판타지를 내세우기 위해서는 공감의 토대가 되는 현실감각이 필요하다. 바로 이 부분에 있어 <대행사>는 통쾌함은 너무나 단순하게 직조된 현실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선악의 경계를 사이에 두고 배치된 캐릭터, 갈등의 지점들까지 평면적이고 표면적이다. 흥미로운 면이 무척 많은 드라마임에도 현실감이 살짝 떨어지다 보니 주제의식의 선명함에 비해 통쾌함이 가깝게 와 닿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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