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마력 요구하는 ‘성스러운 아이돌’, 묘하게 끌리는 힘은

[엔터미디어=정덕현] “노예계약을 맺었다...” tvN 수목드라마 <성스러운 아이돌>에서 어쩌다 이 세계로 넘어와 망돌(망한 아이돌) 와일드애니멀의 우연우(김민규)와 운명이 바뀌어버린 램브러리(김민규)는 저 세계에서 대신전이 되어 ‘꿀을 빨고 있는’ 우연우와 계약을 맺었다. 굳이 이 세계로 돌아와 망돌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는 우연우가 램브러리에게 와일드애니멀이 코리안 뮤직 어워즈에서 올해의 가수상을 타면(물론 우연우는 램브러리 몰래 슬쩍 가수상이 아닌 시상식 신인배우상을 계약 조건으로 세웠지만)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겠다고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 장면 하나만 봐도 <성스러운 아이돌>이 어떤 드라마인가를 어느 정도는 눈치 챌 수 있을 게다.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램브러리가 온 것은 레드린 신을 섬기는 대신관의 신성력과 마왕의 흑마법이 공존하는 판타지 공간이다. 그곳에 화산이 폭발하던 날 램브러리는 이쪽 세계로 넘어와 아이돌인 우연우와 운명이 바뀐다. 즉 이 드라마는 망돌 우연우가 된 램브러리가 세계를 파괴하려는 마왕과 맞서기 위해 대신관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고, 그 방법으로 저 ‘노예계약’이 담고 있는 것처럼 와일드애니멀이라는 아이돌그룹을 성공시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황당한 이야기인지라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항마력을 요구하는 게 사실이지만, 아마도 아이돌 그룹 한 팀 정도 팬을 자처해온 분들이라면 이러한 항마력이 오히려 그들만의 세계관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관문으로 여겨지기도 할 게다. 아이돌 그룹들에게 이제 일반화되어 있는 세계관은 다른 행성에서 왔거나 악몽 속을 헤매거나 하는 판타지 세계를 가져오지만 팬들은 그렇게 현실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이들끼리의 유대관계가 더 끈끈해지니 말이다.

대신관의 위치에 있다 아이돌이 된 램브러리는 그래서 만나는 누구 앞에서도 “... 느냐?”라는 고풍스런 하대를 하는 인물로 황당한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춤이라는 걸 춰본 일이 없어 어렵게 잡은 생방송 무대에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난 춤을 모른다!”고 외치고, 그게 엉뚱하게도 밈이 되어 와일드애니멀 사상 최대 관심을 이끌어내는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경험으로 소속사는 이제 램브러리(우연우로 오인되는)를 와일드애니멀의 인지도를 만들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의 희생양으로 내세운다.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렇게 엉뚱하게 당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램브러리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화제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진짜 인기를 얻게 되는 반전일 게다. 하지만 이것이 저 세계에서 대신관으로 마왕과 싸운다는 판타지와 겹쳐진다는 점은, 그 현실과 판타지의 이질감 때문에 그 세계관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상당한 항마력을 요구한다.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아이돌>은 누군가는 키득 대며 빠져들지만 누군가는 헛웃음을 지으며 채널을 돌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대목은 이 진지하게 성스러운 램브러리라는 인물이 그와는 사뭇 다른 속물적인 이 세계(그것도 치열한 이전투구의 장이 펼쳐지는 아이돌 경쟁의 세계에)에 들어옴으로써 보이는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들이다.

“노예계약을 맺었다”는 말에는 그래서 어떻게든 아이돌로 성공하기 위해 뭐든 해야만 하는 아이돌들의 절박한 처지가 담겨지고, 의외로 아이돌이면 지켜야 하는 어떤 것들을 램브러리가 잘 몰라서 마구 엇나가는 이야기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리고 그런 엇나감이 오히려 그 아이돌만의 독특한 개성이 되어 진짜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어떨까. 진입장벽 높은 황당한 세계관을 세워 놓은 <성스러운 아이돌>이지만 그걸 슬쩍 넘어 보고픈 욕구가 생기는 건 바로 이런 반전에 담긴 블랙코미디적인 시원한 한방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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