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캔들’, 쇠구슬은 김태정 아닌 신재하? 왜?

[엔터미디어=정덕현] 달달해진 tvN 주말드라마 <일타 스캔들>에 범죄 스릴러의 기운이 어른거린다. 남행선(전도연)이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남해이(노윤서)의 커밍아웃(?)으로 최치열(정경호)과 남행선의 불륜 스캔들은 누명을 벗었다. 게다가 남행선의 절친 김영주(이봉련)로부터 이렇게 된 전후 사정을 모두 들은 최치열은 남행선을 꼭 껴안아 주었다. 둘 사이의 스캔들은 이로써 모든 이들이 감동하게 만든 로맨스가 되었다.

이처럼 일타강사 최치열과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의 로맨틱 코미디가 달달함 한도 초과의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드라마 초반부터 등장했던 ‘쇠구슬’로 불리는 연쇄살인범이 드라마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쇠구슬을 쏴 길고양이를 죽이고, 올케어반 학생을 건물 난간에서 밀어 추락사시켰으며, 프라이드학원 진이상(지일주) 수학강사를 쇠구슬을 쏴 살해했다.

사실 사랑이야기를 담는 로맨틱 코미디에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범죄스릴러가 들어가는 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이런 시도는 K드라마에서 종종 시도된 바 있다. <별에서 온 그대(2013)>에서 천송이(전지현)와 도민준(김수현)의 로맨스에 끼어든 이재경(신성록) 같은 범죄의 그림자가 그렇고, <동백꽃 필 무렵(2019)>에서 “까불면 죽인다”라는 낙서 메모로 시종일관 이 달달한 멜로에 긴장감을 부여했던 ‘까불이’가 그렇다.

특히 <동백꽃 필 무렵>의 까불이는 일종의 ‘맥거핀 효과’를 끝까지 만들어 자칫 사랑이야기가 한껏 풀어놓은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타 스캔들>의 쇠구슬은 그런 점에서 까불이 같은 역할을 한다. 누가 쇠구슬일까를 궁금하게 만들고, 또 중간 중간에 등장해 불안감을 만들어 드라마를 팽팽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과연 쇠구슬은 누구일까. 처음 드라마는 다소 노골적으로 이선재(이채민)의 형이자 장서진(장영남) 변호사의 아들 이희재(김태정)가 쇠구슬이라는 암시를 줬다. 장서진은 아들이 미국 대학에 갔다고 주변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지만,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입시 당일 시험을 치르지 않고 방으로 숨어든 이희재는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간다. 그런 그가 밤이 되면 집을 나와 길거리를 전전하고, 그의 책상서랍에서는 쇠구슬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이희재가 범인이 아닐까 추측하게 만든 것.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범인으로 몰아세우면 이런 범죄스릴러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오히려 그가 범인이 아닐 거라 추측하기 마련이다. 예상대로 이희재는 길고양이를 잔인하게 쇠구슬로 쏴 죽인 범인이 아니라, 그렇게 다친 고양이를 보살핀 인물이라는 게 밝혀졌다. 이희재가 범인이라기보다는 목격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대신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최치열의 매니저로 마치 동생처럼 그를 걱정하고 챙기는 지동희(신재하)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게 아니지만, 몇 가지 복선으로 시청자들은 그가 범인일 거라고 추측한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지만 지동희는 최치열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특히 최치열이 남행선과 가까워지고 자신보다 그의 말을 더 듣기시작하자 지동희는 남행선에게 은근히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치열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자 커피 대신 물을 마시겠다는 최치열의 이야기에 서운함을 느끼며 지동희가 자신이 가져온 커피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그가 쇠구슬일지도 모른다는 복선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고 보면 쇠구슬이 죽인 인물들은 모두 최치열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올케이반 학생은 대놓고 최치열을 무시하고 막말을 한 날 추락사를 당했고, 진이상은 SNS에서 최치열의 스토커로 갖가지 스캔들을 조장해온 ‘최치열나짱나’라는 게 밝혀지는 날 쇠구슬에 의해 살해당했다. 최치열에 대한 동경이나 애정이, 그를 괴롭히는 이들에 대한 공격성으로 바뀌어 벌어진 범행이라면, 지동희는 유력한 용의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제2의 까불이’ 같은 추측을 하게 만드는 쇠구슬이라는 존재의 효용성은 누가 범인인가 하는 궁금증과 범죄스릴러의 긴장감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쇠구슬 같은 존재를 세워두고 서로 의심하게 되면서 드러나는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가 굳이 이런 인물을 로맨틱 코미디에 투입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장서진은 아들 이희재의 서랍에서 쇠구슬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을 의심한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희재를 더욱 절망하게 한다. 자식을 믿지 않고 대외적으로 유학 갔다고 거짓말을 할 정도로 외부의 시선만 신경 쓰는 이 모자관계는 입시 경쟁에서 자식이 어떤 대학에 들어갔는가에만 몰두하는 우리네 어른들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입시 경쟁에서 실패했다고 심지어 그저 쉽게 자식을 범인으로까지 생각해버리는 이 엄마의 비정함은, 쇠구슬이라는 존재를 통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동희가 만일 진짜 쇠구슬이라면 거기에도 관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깔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치열을 마치 스타처럼 따르고 동경해왔고 결국은 그의 옆에서 일하게 된 ‘성덕’이지만 그 관계가 선을 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누가 진짜 쇠구슬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의문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만큼, 이 인물이 야기하는 드라마 속 여러 캐릭터들의 관계와 그 갈등 양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 이 쇠구슬이 왜 이 드라마에 존재해야 했는가에 대한 답이 있을 수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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