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에게 또 하나의 영광이 된 ‘더 글로리’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김은숙 작가가 또 한 번 자신을 넘어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는 공개 2일 만에 전 세계 TV부문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공식 순위 집계 사이트인 넷플릭스 톱10에서 6일부터 12일까지 1억2,446만 누적시청시간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이 시청시간 기록은 비영어 부문만이 아니라 영어와 비영어 TV와 영화를 통틀어서 1위다. 이것은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 TV부문에서 <더 글로리>는 현재 798점으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좋은 작품에 글로벌 반응이 폭발하는 건 과거 <오징어게임> 시절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사실 지금은 다소 덤덤해졌다. 그만큼 이제 잘 만든 K콘텐츠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도 똑같은 반응을 내는 일이 일상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에 대한 무수한 분석 기사들이 국내외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출연 배우 하나하나가 조명되고 있다. 하다못해 장면 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이 회자될 정도로 이 드라마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이 모든 화제들 속에서 특히 주목되는 건 이 세계를 만들어낸 김은숙 작가다. 지금껏 멜로드라마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지만, 복수극 <더 글로리>로 돌아온 김은숙 작가의 행보는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과연 달달함이 전공이던 김은숙 작가가 쓰디쓴 복수극에서도 그만한 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작이었던 <더 킹 : 영원의 군주>는 평행세계라는 낯선 세계관을 가져오면서 생각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세계는 트렌디해졌지만, 그 안에 등장하고 있는 서사나 캐릭터는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마를 타고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면면은 이러한 실망감을 구체화시킨 가장 큰 이유가 됐다.

그 이전 작품들로 이른바 3부작으로 일컬어지는 <태양의 후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이 모두 대작이면서도 큰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호평을 받았던 지라,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참패는 너무나 뼈아픈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김은숙 작가에게는 향후의 행보를 결정짓는 중대한 기로가 됐다. 그는 놀랍게도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고 그건 또 하나의 영광으로 돌아왔다.

<더 글로리>가 다룬 건 학교폭력이라는 소재이고 그 형식적 틀은 복수극인지라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소재와 형식이었지만, 김은숙 작가는 그것을 온전히 자기 스타일로 풀어냄으로써 색다른 색깔을 만들었다. 즉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너무 쉬운 사이다 응징이 아니라 쉽지만은 않은 수십 년에 걸친 준비와 포석을 통한 복수라는 점이 달랐다. 그것은 극중에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바둑 같은 방식으로, 상대의 집을 야금야금 빼앗음으로써 결국 고립되게 만들고 저들이 가진 욕망을 고스란히 이용해 그들이 자멸의 길로 가게 하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사적 복수이긴 하지만 물리적 복수가 아닌 그 욕망의 엇나감과 과오에 대한 무처벌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복수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담았고, 무엇보다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복수는 끝이 아니라 그저 생존의 시작일 뿐이라는 걸 말해줬다. 특히 피해자들이 생존해가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공감하는 이들과의 연대가 그 첫걸음이라는 걸 드라마는 보여줬다. 복수극의 과정도 물리적인 폭력보다는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저주의 과정으로 펼쳐졌다. 달달한 대사의 장인이지만, 무섭고 살벌한 대사를 시원시원하게 쏟아낼 수 있는 데도 능숙하다는 걸 작가는 작품으로 증명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은숙 작가의 대단함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건, 그가 과거 신데렐라 스토리를 전매특허로 했던 멜로의 대가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일련의 변화 과정을 이 작품이 담고 있어서다.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연인> 이라는 연인 시리즈로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었고, <시크릿가든>이나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같은 일련의 작품들로 멜로 장르로만 한계가 지목됐던 김은숙 작가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태양의 후예>로 의학, 액션, 재난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로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판타지에 문학에 가까운 시적 대사들을 극점으로 뽑아낸 후 <미스터 션샤인>으로 시대극으로까지 영역을 넓혔다. 아쉽게 실패했지만 <더 킹 : 영원의 군주> 역시 SF 판타지라는 장르 실험을 계속했던 것이고, 이제 <더 글로리>로 마라맛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영역까지 열어놓았다. 과연 김은숙 작가는 어디까지 자신의 한계를 실험할까. 또 하나의 영광으로 남은 <더 글로리>는 그래서 벌써부터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또 어떤 한계에 대한 도전과 그걸 뛰어넘는 영광을 보여줄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SBS,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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