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 진원, 오스틴킴, 이동규가 보여준 ‘팬텀싱어4’만의 매력

[엔터미디어=정덕현] 테너 정승원, 진원과 콘트랄토(알토의 음역대를 가진 카운터테너) 오스틴킴 그리고 카운터테너 이동규가 함께 하는 4테너의 조합. 이런 조합으로 과연 한 무대가 꾸며질 수 있을까. 3테너의 무대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가 함께 했던 걸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게다. 그런데 4테너는 최초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 조합 안에는 콘트랄토와 카운터테너가 들어있다. 조합만으로도 한 무대를 꾸미는 것이 최고 난도의 미션이 아닐 수 없다.

JTBC 오디션 <팬텀싱어4>가 첫 번째 라운드로 가져온 포지션 배틀은 같은 포지션, 즉 테너는 테너끼리, 뮤지컬은 뮤지컬끼리, 바리톤은 바리톤끼리, 함께 노래를 해 그 포지션에서 최고의 싱어를 뽑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지금껏 <팬텀싱어>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미션이었는데, 그 이유는 당연하다. 여러 성부를 가진 조합이어야 더 완벽한 하모니를 낼 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같은 성부로만 구성되면 화음과 베리에이션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콘트랄토 오스팀킴이 아이돌 같은 외모의 테너 정승원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음색을 가진 진원과 더불어 세계적인 카운터테너로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이동규를 선택해 한 조합을 꾸린 건 무모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연습과정을 보니 이들은 옥타브 차이가 극단적으로 나는 성부를 갖고 있었다. 정승원과 진원보다 오스틴킴이 3키 차이 높았고, 또 오스틴킴보다 이동규가 3키 차이로 높았다. 그러니 어느 키에 맞춰 곡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도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함께 무대를 꾸며야 하지만 이것은 또한 그 중 최강의 테너를 뽑는 대결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키에 맞춰주면 한 사람은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가장 형(?)인 이동규가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하자 다른 이들도 서로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상황 속에서 오스틴킴이 방법을 냈다. 중간에 전조를 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테너로 시작하다가 전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카운터테너의 음역대로 올려 네 명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렇게 키를 맞추고 작전을 짠 후 연습에 돌입하면서 이동규의 진가가 드러났다. 그는 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발성법을 알려주고 단체 레슨은 물론이고 어떻게 하면 소리를 더 살리는지 또 발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또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아낌없이 전수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동생들 역시 마이크가 익숙하지 않은 이동규에게 마이크 사용법을 알려주는 훈훈한 광경을 보여줬다.

이미 무대를 하기 전부터 이들의 보여주는 호흡은 이 극강의 미션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들이 선택한 곡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일 칸토(Il Canto)’. 테너들도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곡이었다. 진원의 부드러운 미성으로 시작하고 마치 화답하듯 오스틴킴과 이동규가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로 받아준 후 정승원이 다시 이어받아 서서히 가슴을 적시는 소리는 조금씩 성부를 쌓아가는 진원과 정승원의 테너로 채워졌다.

그러더니 우 하는 허밍으로 오스틴킴과 이동규가 부드럽게 전조를 만들고 거기에 진원과 정승원의 목소리가 화음을 내는 기막힌 조합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하모니가 만들어졌다. 마치 진원과 정승원이 낮은 성부로 한 팀이 되고 오스틴킴과 이동규가 카운터테너의 높은 성부로 또 한 팀이 되어 한 번씩 부르는 광경이 연출된 것.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마지막에 이 낮은 성부와 높은 성부가 동시에 부르며 환상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경연이 아니라 공연을 보는 듯한 프로듀서들은 소름이 돋는 체험을 넘어 감동했고, 김문정 프로듀서는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감동의 실체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환상적인 하모니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무대가 끝나고도 여운은 길게 이어졌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공연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천상계다”라는 다른 참가자의 이야기가 실감나는 대목이었다.

프로듀서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따뜻한 온풍으로 우리의 옷을 벗겼다”는 김문정의 평이 있었고 서로 다른 키와 세기를 조율한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라는 윤종신의 평이 있었다. 남성 파트의 테너와 여성 파트의 카운터테너가 합쳐져 “같이 섞였을 때 장관이 있었다”는 손혜수는 제5의 멤버로 이 팀에 들어가고픈 욕망을 드러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대결의 결과는 이동규가 최종 우승자로 뽑혔지만 이들의 얼굴은 모두가 밝았다. 완벽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사실 이런 무대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애초 4테너라는 조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텀싱어>는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최강의 테너를 뽑는다는 취지와 이를 통해 성악부터 뮤지컬, 팝, 국악에 이르는 각각의 분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서 이러한 조합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하모니가 만들어졌을 때 그것 자체가 주는 감동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 정승원, 진원, 오스틴킴, 이동규의 하모니. <팬텀싱어4>만의 매력을 여지없이 보여준 순간이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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