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으로 어려운 문화재 환수, 그래서 ‘스틸러’가 선택한 방법은

[엔터미디어=정덕현] “그 전쟁에 문화재 약탈부대라고 있었거든? 그놈들이 우리나라의 소중한 보물들을 엄청 많이 훔쳤는데 전쟁에 지면서 여기저기 숨겨놓고 도망가 버렸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이긴 한데 혹시 모르니까 대명이가 크면 한 번 찾아볼래?” tvN 수목드라마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이하 스틸러)>에서 대명(주원)이 어렸을 적 아버지는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 보물들을 찾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특별한 동전’과 ‘황금거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의 이 이야기는 문화재청 특별조사과 공무원으로 낮에는 사무실에서 졸기 일쑤인 대명이 밤이 되면 가면을 쓰고 이른바 문화재 도둑 ‘스컹크’가 된 이유일 게다. 그리고 이건 <스틸러>라는 드라마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시작과 함께 일곱 개의 조선통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를 보여준다. 양회장(장광)이 조선통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래서 이를 갖고 있다는 한 사내에게서 그걸 빼앗은 후 죽이려 하지만 오히려 그 사내가 양회장과 그 무리들을 모두 제거한다. 그 사내는 알고 보니 조흰달(김재철)이라는 골동품 도둑이자 전대미문의 암살자였다.

대명은 밤마다 복면을 쓰고 스컹크라는 문화재 도둑이 되어 그의 비밀파트너 이춘자(최화정)와 함께 문화재를 훔치러 다니는데, 그걸 갖고 있는 이들은 양회장처럼 사적 이익을 위해 문화재와 골동품들을 수집하는 컬렉터이거나, 최송철(정은표)처럼 겉으로는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입네 하지만 실제로는 직지 상권 같은 문화재를 훔친 후 정부와 거래하는 그런 인물들이다.

즉 이들에게 문화재는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사적인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대명이 스컹크가 된 건 그래서다. 그는 이런 이들이 사적으로 수집해 놓은 문화재를 훔쳐 서울지방경찰청 문화재 전담팀 장태인 경감(조한철) 같은 인물에게 보낸다. 그것이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리려는 것.

물론 <스틸러>의 스컹크가 문화재를 훔치는 일련의 과정들은 액션과 코믹이 더해진 장르로 그려진다. 어딘지 스파이더맨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고 밖에서 통신으로 연결된 이춘자와 공조해 갖가지 트랩들이 숨겨진 곳을 뚫고 문화재를 훔쳐내는 그 광경은 <레이더스>의 토속적인 버전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B급 액션에 가깝지만.

게다가 이러한 B급 액션이 가미된 ‘도둑질’은 이제 장태인 경감을 위시한 문화재 전담팀과의 공조로 일종의 케이퍼 무비 장르적 색깔을 띨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보물을 훔치기 위해 여럿이서 작전을 짜고 이를 실행해가는 과정을 담을 거라는 것. 하지만 동시에 <스틸러>는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문화재를 강탈당했던 우리의 아픈 기억들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다.

‘문화재 환수’라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를 밑그림으로 가져옴으로써 이 대명과 그 일당들(?)이 하는 도둑질을 시청자들이 기꺼이 응원하게 만든다. 공적인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드라마에서 사적 복수가 많아진 것처럼, 공적인 환수가 잘 되지 않는 문화재를 사적 도둑질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곱 개의 조선통보는 어쩌면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내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이들의 모험담에 눈이 아닌 마음이 먼저 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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