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그대’, 이 드라마 판타지의 진짜 정체

[엔터미디어=정덕현] KBS 월화드라마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거두절미하고 타임머신이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우연히 어느 터널에서 마주하게 된 올드카 형태의 타임머신. 그리고 대뜸 호기심 때문에 그 차를 타게 된 윤해준(김동욱)이 시간여행을 하고, 미래에 갔다가 죽은 자신을 알게 된 그가 미래를 바꾸기 위해 사건의 시발점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1987년으로 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 여정에 엄마 이순애(이지현)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고 절망하다 터널까지 오게 된 백윤영(진기주)이 합류한다. 한 때는 문학의 꿈을 가지기도 했지만 힘겹게 살아가다 죽음을 맞게 된 엄마. 백윤영은 뒤늦게 후회하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모든 걸 되돌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다. 그리고 윤해준의 시간여행에 우연히 동승하게 된 백윤영은 진짜 1987년으로 돌아가고 거기서 젊은 날의 엄마 순애(서지혜)를 만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그 설정만 보면 로버트 저메케스 감독의 <빽 투 더 퓨처>에 OC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터널>이 섞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빽 투 더 퓨처>가 과거로 간 마티(마이클 제이 폭스)가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방해하게 돼서 자신이 태어나지 못할 위기에 몰리고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면,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과거로 간 백윤영이 엄마 순애가 꿈을 꺾고 살아가는 걸 막기 위해 젊은 아버지와의 만남을 방해하고 순애를 괴롭히던 이들과 대결하는 과정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또 <터널>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제사건을 수사하고 풀어가는 박광호(최진혁) 형사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1987년으로 간 윤해준이 훗날 자신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저질렀을 것으로 예상되는 당대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고 막아내는 과정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시간여행을 위해 ‘터널’을 통과하는 건 <터널>을 닮았고, 그걸 자동차로 한다는 건 <빽 투 더 퓨처>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성은 사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에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드라마가 포인트를 맞추고 있는 판타지는 타임머신 설정이 갖는 그런 SF 판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거두절미하고 타임머신이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하고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지만 그 타임머신이 어디서 왔고 누가 만들었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 중요한 건 ‘만약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의 판타지이고 그걸 통해 현재 후회하고 있는 것들을 실현해나감으로써 무엇이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그래서 2회 중반까지 이 드라마는 1987년의 시대풍경과 당대의 음악들 같은 시간여행이 주는 추억을 그려내다가 2회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드디어 진짜 하려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백윤영이 마주한 젊은 날의 엄마 순애가 갖고 있던 꿈과 아픈 상처의 비밀을 들려주는 것. “다들 절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래서 저랑 얘기 안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걔네랑 계속 친구여야 되고요. 그냥 다 장난이어야 되고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죽고 싶어요...”

순애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아무도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았다. 해경(김예지)은 순애를 밀어 물에 빠뜨리기도 했고, 은하(권소현)와 유리(강지운)는 물에 빠진 순애를 보고도 장난인 줄 알았다며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더 놀라운 건 현재 백윤영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모시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고미숙이 젊은 날 엄마의 동창이었고 엄마가 노트에 적어뒀던 글들을 훔쳐 베스트셀러를 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이 드라마는 1987년에 떨어져 이 사실을 알게 된 백윤영이 엄마의 삶을 되찾아주는 판타지를 그린다.

동시에 미래에 자신이 살해될 걸 알고 있는 윤해준은 그 범인과 관련된 우정리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들을 풀어나가며 그 역시 과거의 할아버지와 마주한다. 우정고등학교 교장인 병구(김종수)가 바로 그의 할아버지다. 2024년 손자 윤해준이 사라진 곳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병구에 대해 윤해준은 탐탁찮은 시선을 보낸다. 평소 짠돌이로 돈만 밝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살인사건 해결과 더불어 윤해준 역시 가족과의 화해 같은 판타지를 그려나가지 않을까.

“어떤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는 생각해본 적 있어요? 조금만 일찍 알아챘더라면 조금만 먼저 알았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지도 모르는데. 근데 여기선 아니야. 여기선 아직 아무 것도 늦은 게 아니잖아요. 모든 게 일어나기 전이니까. 미안하지만 나 지금은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여기서는.”

사실 타임머신 같은 SF 설정은 ‘타임 패러독스’ 같은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그런 SF 판타지보다 과거로 돌아간 이들이 그 곳에서 만난 이들의 미래를 바꾸고픈 그 판타지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윤해준이 고장 난 타임머신을 금세 다 고쳐도 백윤영은 다시 현재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저 백윤영의 욕망처럼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판타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