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보배’였던 김선아, 지금의 행보가 조금은 아쉬운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메이커>의 황도희 역이 배우 김희애에게 착 붙는 맞춤옷은 아니다. 김희애는 JTBC <부부의 세계>나 과거 MBC <아들과 딸>처럼 일상의 드라마틱한 고난과 맞서 싸우는 드라마퀸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냥 달콤하기만 한 로맨틱코미디나 속물스러운 경박함과 치졸함을 연기하는 건 뭔가 어색한 느낌이 있다. 달콤함과 속물스러움의 감정을 연구하고 연기해서 좀 작위적으로 보인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희애는 <퀸메이커>의 몇몇 장면에서 황도희 캐릭터를 극적으로 집중시키는 힘은 보여준다. 다만 <퀸메이커> 초반 황도희의 속물스럽고 냉철하면서 어떤 면에서 블랙코미디처럼 보이는 일상의 모습을 잘 살리지 못한 점은 내내 아쉽다. 드라마 초반 몰입도를 주는 데 다소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황도희에 적합한 인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는 채널A 월화드라마 <가면의 여왕>에서 주인공 도재이를 연기하는 김선아다. 배우 김선아의 연기에는 편안함과 냉철함이 동시에 공존한다. 너무나 달콤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로맨스에서 그녀의 감정 연기는 일상의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김선아는 2000대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시대에 전성기를 보낼 수 있었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은 신드롬을 일으켰고 그 이후의 작품들도 김선아가 연기하면 믿고 볼 수 있는 편안한 매력이 있었다. 또 영화에서 편안하고 유쾌한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JTBC <품위있는 그녀>에서부터 그녀는 행보를 바꿔간다. 그녀 특유의 드라이한 연기로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들을 연기하며 호평과 시청률을 모두 잡았다. <품위있는 그녀>의 박복자가 코미디에 스릴러가 섞였다면, 이후 MBC <붉은 달 푸른 해>를 통해서는 내면의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불행한 차우경의 내면을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현실감 있게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다만 김선아의 대표작이 될 뻔한 <붉은 달 푸른 해>의 흥행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그녀의 연기 변신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는 묻혀 버렸다. 이후 김선아는 SBS <시크릿 부티크>를 통해 세신사에서 기업오너의 비밀을 처리하는 제니 정이라는 미스터리한 존재를 또 한 번 연기한다. 그리고 제니정의 비밀스러우면서도 냉철한 모습이 바로 <퀸메이커>의 황도희 캐릭터에 선이 닿는 부분이 있다.

제니정의 모습에 좀 더 블랙코미디적인 면모를 더한다면 <퀸메이커> 초반 은성그룹 절대 권력 손영심(서이숙) 일가를 보좌하는 황도희의 모습으로 적역일 것이다. 그 이후 오경숙(문소리)을 만나 양심적인 인물로 변해가는 황도희 캐릭터도 김선아와 꽤 어울리는 면이 있다. 각 드라마의 성격에 따라 이 배우는 따뜻함과 냉정함 전혀 다른 두 개의 성격을 모두 잘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김선아는 JTBC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이나 <가면의 여왕>처럼 어두운 법조인 캐릭터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디 엠파이어>는 처음부터 막장극을 노린 어두운 드라마여서 배우의 장점이 드러날 여지가 없었다. <가면의 여왕>은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 불이 붙을 여지는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전형적인 흥미 위주의 스릴러물이서 주인공 도재이의 성격이 매력적으로 부각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계속 이어지는 어두운 캐릭터 때문에 배우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지는 면도 있다. 김선아에게 기대하는 건 또 다른 <김삼순>은 아니다. 다만 한번 정도는 인간적이고 편안하면서 공감이 팍팍 가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던 이 배우의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채널A, MBC,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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