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과 엄정화의 각기 다른 매력① (김완선 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tvN 예능 <댄스가스 유랑단>의 김완선과 엄정화는 시대를 사로잡은 댄싱퀸이었다.

다만 두 사람의 전성기가 겹치지는 않는다. 김완선은 1986년 <오늘밤>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1990년대 초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서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현진영의 곡이었던 <12번째 사랑>으로 랩 댄스 시기에도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은퇴했다. 훗날 우리가 은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해외진출을 노린 매니저의 큰 그림 중 하나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김완선이 그녀의 이모였던 매니저와의 관계에 대해 밝힌 일화는 대중들을 더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엄정화는 김완선의 해외진출 이후에 본격적으로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배우와 가수 중 배우의 비중이 좀 더 높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3집 <배반의 장미>가 번개 맞은 인기를 누리면서 이후 댄싱퀸으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대중들은 김완선과 엄정화를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에 이르는 비슷한 섹시 솔로 여가수로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허나 두 스타의 매력이나 무대연출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김완선은 1980년대 대중문화에 새롭게 등장한 댄스가수였다. 그 이전에도 음악에 맞춰서 율동을 하던 김추자나 디스코 시절의 이은하, 혜은이가 있었지만 이 가수들은 기본적으로 노래에 추임새로 춤을 살짝 얹을 따름이었다. 반면 김완선은 아예 비디오형 가수로 훈련되고 기획된 첫 번째 스타였다.

80년대의 대중들은 팝스타 마돈나처럼 과격한 춤을 추며 무대를 누비는 가수가 한국의 <가요톱10>의 무대에 등장하는 데 컬처쇼크를 받았다. 더구나 김완선의 춤은 마돈나의 발레에 기반을 둔 재즈댄스나 재닛잭슨의 군무와는 다른 독특한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짜인 안무 없이 프리댄스를 추는 듯 보이나 이미 그 안에 훈련된 춤이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특히 김완선의 춤에는 브레이크댄스의 각진 절제와 한국 무용의 우아한 곡선미가 동시에 녹아들어 있어 보는 이들을 넋 놓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완선의 80년대 히트곡 <리듬 속에 그 춤을>은 사실 80년대의 댄싱퀸 김완선 그 자체를 노래한 곡이기도 하다. 록의 대부 신중현이 김완선의 무대를 보고 만들었다는 이 노래의 가사는 춤추는 김완선에 대한 감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대 음률 속에서 순간 속에서 보이는/너의 새로운 춤에/마음을 뺏긴다오./아름다운 불빛에 신비한 너의 눈은/잃지 않는 매력에 마음을 뺏긴다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춤추는 80년대의 김완선은 자신의 춤에 도취된 사람처럼 멋져 보였다.

하지만 5집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에서의 김완선은 조금 다르다. 김완선은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무대에서 춤과 노래,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을 조련하는 베테랑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정작 <기분 좋은 날>처럼 유쾌하지만은 않다. <기분 좋은 날>의 작곡가 故 박청귀는 김완선이 우울해 보인다며 좀 더 밝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기분 좋은 날>을 선물했다고 한다. 하지만 5집의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김완선의 이런 우울한 매력을 노래 안에 잘 녹여 넣었다.

<사람들은 모두 춤추며 웃지만/나는 그런 모습 싫어. (중략)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난 차라리 슬픔 아는 삐에로가 좋아>로 이어지는 노랫말처럼 이 노래는 경쾌한 연주를 걷어내면 멜로디와 노랫말 속에 우울함이 감춰져 있다. 훗날 김완선은 자신의 자아 없이 매니저의 인형처럼 살았던 슈퍼스타의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노래에는 분명 매니저의 터치가 아닌 듯 보이는 김완선 특유의 우울한 감성의 그루브가 잘 녹아 있다. 그리고 그런 우울한 그루브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김완선은 6집에서 멜랑콜리한 감성이 잘 녹아든 대표곡 <애수>를 타이틀곡으로 선보인다. 과거 김완선은 데뷔 앨범의 <지난 이야기>나 3집과 4집 사이에 발표한 이장희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젠 잊기로 해요>, 5집의 <나만의 것>처럼 은근히 숨은 발라드 히트곡들이 있었다. <애수>는 아예 김완선이 작사에도 손을 댄 곡으로 잔잔한 라틴 비트의 곡이다.

김완선은 <애수>를 통해 그녀의 가수 인생에서 가장 정적이면서도 세련된 무대를 선보인다. 그녀는 <애수>를 통해 스탠딩 마이크와 리듬을 타는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절제되고 고혹적인 섹시미가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애수> 이후 근 30년 만에 김완선은 <댄스가스 유랑단>을 통해 과거 댄싱퀸의 역사를 다시 쓰는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김완선은 80년대 대중들에게 충격을 준 댄싱퀸이었지만, 속마음은 <사랑의 골목길> 무대의 춤추는 인형이어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해왔다. 하지만 <댄스가스 유랑단> 속 김완선은 대학축제나 여수 밤바다의 낭만포차 작은 무대에서 추억인 동시에 무대를 즐기는 영원한 댄싱퀸의 행복한 모습이 점점 드러나는 중이다.

과거 김완선의 무대를 TV에서 본 시청자들이 느낀 감정은 무서운 두 눈과 놀랍도록 관능적인 댄스에서 느껴지는 충격에너지였다. <댄스가스 유랑단> 속 김완선의 춤선은 여전히 놀랍다. 더구나 이제 그녀는 시청자들에게 댄싱퀸의 행복에너지를 전해준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M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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