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의 오랜 팬이라면 평생 소장하고 싶은 ‘박하경 여행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는 오래 만에 보는 한 권의 연작소설집 같은 드라마다. 과거 KBS <TV 문학관>이나 MBC <베스트셀러극장>처럼 단순히 보는 재미에 그치지 않고 뭔가 곱씹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하경 여행기>는 너무 무겁지 않게 토요일 하루에 떠나는 여행처럼 다가온다.

<박하경 여행기>는 국어 선생님 박하경(이나영)이 일상에 지쳐 토요일 딱 하루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스토리로 진행된다. 박하경은 선생님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여행자가 되어 다른 낯선 도시에서 여행자들과 만난다. 군산, 부산, 춘천, 경주, 제주, 대전 등등 여행지는 다양하다. 오프닝에서 배우 이나영의 귀엽고 상큼한 CF 같은 분위기 때문에(오프닝에서 이 배우는 CF퀸의 대단한 짬밥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뭔가 여행지 광고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혹은 박하경이 여행 풍경을 보고 돌아오는 흔한 숏폼의 힐링물 감성이겠거니 지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박하경은 짧은 숏폼의 구성 안에 생각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집어넣는다. 물론 한국의 도시 곳곳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풍경도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그 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청자는 박하경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들을 지켜보며 뭔가 곱씹고 기억하고 울컥할 만한 이야기의 씨앗들을 발견한다. 박하경이나 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인물들이 마음에 훅 와닿는 대사를 던지는 것이다. 용기에 대해, 사랑에 대해, 도전에 대해, 추억에 대해, 죽음에 대해. 드라마는 그런 감정의 씨앗들을 너무 과하게 폭발시키지 않는다. 그저 봄바람에 날려 보내는 민들레 씨앗처럼 흘리듯 실어 보낸다. 그런 방식으로 심심하지만 심심하지 않은 독특한 드라마의 맛을 매회 살려준다.

그렇기에 <박하경 여행기>에는 박하경이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굉장히 중요하다. 박하경은 우연히 낯선 사람과 만나기도 하고, 군산에서 옛 제자를 만나거나 그의 인생을 만들어준 한때 유명했던 만화가를 만나기도 한다. 마지막 회에서는 경주에서 옛 친구 진솔(심은경)과 다시 만나기도 한다. 특히 <박하경 여행기>의 마지막회는 옴니버스 구성 드라마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아우른다.

해가 지고 에밀레종이 울리면 박하경은 먼저 세상을 뜬 단짝 진솔과 다시 만난다. 둘은 경주 수학여행과 둘만의 20대 여행들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산 자와 죽은 자의 여행을 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넌지시 여행에는 관심 없던 박하경에게 아무 의미 없고 아무 것도 아니지만 즐거운 여행의 맛을 알려준 게 단짝 진솔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한편 <박하경 여행기>는 어느 순간 아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나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드라마기도하다. 사실 교사 박하경은 CF퀸이 아닌 배우 이나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 유형이다. 감정 없는 무덤덤한 사람처럼 삐죽대다 어색하게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주인공 박하경. 뭔가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한 마디 어색하게 툭 던졌는데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바꿔놓은 사람 박하경. 뒷걸음질 치는 세상과 동떨어진 ‘아싸’ 같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가와서 먼저 말을 걸게 만들고 싶어지는 박하경. 그러면서도 뭔가 정열적인 로맨스와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 이나영은 만능 연기자는 아니지만 이런 유형의 인물에는 탁월한 개성을 보여준다. 특히 5회차에서 교실 복도에서 몰래 학생들의 댄스를 따라하는 몸치 박하경의 연기는 이나영이 아니면 소화 못할 명장면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하경 여행기>는 아예 드라마 자체가 뭔가 이나영스러워 보이는 면까지 있다. 그런 이유로 아마도 <박하경 여행기>는 이나영의 오랜 팬들에게는 평생 소장하고 싶은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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