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가 그린 우리 청춘들을 잠식하는 악귀 같은 현실의 민낯

[엔터미디어=정덕현] 어린아이가 죽으면 관에 넣어 매장하는 게 아니라 독에 담아 나무에 매달던 ‘덕달이 나무’, 고시원에서 연달아 학생들에게 벌어진 연쇄 자살 사건, 그리고 불법 사채업자들. 어찌 보면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 사건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이 사건들을 오컬트적 상상력과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극적 관점으로 엮어낸다.

빨간 구두를 신고 고시원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귀신같은 미스터리한 인물의 등장은 고시원에서 벌어진 연쇄 자살 사건이 바로 그 인물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죽은 학생들 사진 속에 함께 있는 이태영이라는 학생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역시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편 구강모(진선규)의 연구노트에 있던 단서를 찾다가 장진리를 가게 된 산영(김태리)과 해상(오정세)은 옛 동네를 알고 있는 이태영의 큰할아버지로부터 그 단서에 X자로 표시되어 있는 곳에 덕달이 나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곳에서 자살하는 이들이 많아 ‘자살나무’로도 불렸다는 나무다. 그리고 산영과 해상은 이태영이 지낸다는 고시원을 찾았다가 그곳에 드리워진 자살나무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해상은 그 나무에서 죽은 자살귀가 고시원 연쇄 자살사건을 일으켰다는 걸 직감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태영을 추적하던 산영이 수족관 사장으로 위장한 불법 사채업자를 만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튼다. 죽은 학생들의 고시원에서 모두 발견된 작은 어항은 바로 그 사채업자가 건넨 것으로 이들이 자살한 건 다름 아닌 빚 독촉 때문이었다. 천정부지로 올라간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학생들이 사채업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로써 빚 독촉에 시달리는 늪으로 빠져드는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빨간 구두를 신고 고시원을 찾아와 문을 두드린 인물은 사실 귀신이 아니라 바로 사채업자였던 것. 이태영 역시 그 독촉에 못 이겨 도망쳐 숨어 지내고 있었다. 결국 <악귀>가 자살귀라는 오컬트적 존재를 끌어와 그려내려 한 건, 비싼 등록금 때문에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고 그렇게 졸업하고도 취업이 되지 않아 고시원을 전전하는 청춘들을 만든 현실이었다. 빚독촉을 하는 사채업자는 그래서 악귀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드라마는 이 현실을 오컬트적으로 풀어낸다. 이처럼 절망의 끝에 놓인 청춘들에게 ‘자살귀’가 들러붙는다는 상상을 더해 넣은 것. 이태영이 갖고 있던 덕달이 나무가 들어있는 사진이 바로 그 자살귀가 붙은 물건이었다. 사채업자가 가족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독촉을 하려 하자 서둘러 그 사진을 찢어 수족관에 넣었고, 그걸 먹은 수족관 물고기들로 자살귀가 붙은 것. 그걸 가져간 이태영의 친구들은 그래서 빚독촉에 시달리며 자살귀가 붙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거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태영을 추적하던 산영 역시 이 자살귀가 붙은 어항을 받고 똑같은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악귀가 들러붙은 산영은 그 위험한 상황을 악귀의 도움을 받아 모면하고 살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점점 커져가는 악귀는 산영을 잠식해가고, 산영은 자신을 영영 잃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살기 위해서는 악귀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생존한다 해도 악귀에게 잠식될 수 있는 딜레마. 이건 어쩌면 현재의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가 아닐까.

이태영 같은 학생들이 불법 사채업자들까지 찾아가 돈을 빌리는 그 어둠의 길을 택하게 되는 건 다름 아닌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야 이력서라도 낼 수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한 선택이 졸업 후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끝없는 빚 독촉으로 피폐해지는 삶이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해서 나를 잃는다면 그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일까.

<악귀>가 오컬트 장르를 가져와 던지고 있는 청춘들이 마주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래서 공감 가는 바가 크다. 그래서 산영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깨치고 나올 수 있을까가 궁금해지고, 그것이 청춘만의 노력으로 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어른으로서의 해상이 어떻게 그를 도울 수 있는가 역시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이 청춘의 환한 웃음이 자신을 잃어버려 소름 돋는 모습이 아닌,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밝게 해주는 진짜 웃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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