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뛴다’, 뱀파이어의 웃픈 현재 생존기가 담고 있는 것

[엔터미디어=정덕현] 개가 사람을 물면 아무 이야기도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이야기가 된다 했던가. KBS 월화드라마 <가슴이 뛴다>는 적어도 이 기준으로 보면 말이 되는 이야기다. 인간을 무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뱀파이어를 물어버리는 인간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니 말이다.

100년 동안 관에서 보내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천 년을 넘게 산 고양남(김인권)의 말에 관에 들어간 뱀파이어 선우혈(옥택연)은 그러나 100년을 하루 앞두고 그 관을 열어버린 주인해(원지안)로 인해 뱀파이어도 인간도 아닌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다. 인간이 되기 위해 참아왔던 고통의 세월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도 미칠 일인데, 물어버리려고 덤볐다가 도리어 물려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문 주인해가 위기에 처하거나 하면 그 물린 자리가 신호를 보낸다. 마치 주인을 구하라는 것처럼.

<가슴이 뛴다>는 이처럼 100년 전과 완전히 달라져버린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100년 전에는 일제강점기였지만 뱀파이어 능력으로 두려울 게 없었고 대저택에서 이상해(윤병희), 박동섭(고규필) 같은 뱀파이어 동생들과 저택을 관리하는 인간 주집사(박철민)의 보필을 받았지만 100년 후 깨어난 세상은 그를 집도 절도 없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저택은 등기가 되어 있는 주집사의 후손인 주인해의 것이고, 심지어 인간에게 물리는 일까지 겪는다.

뱀파이어는 더 이상 이 시대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무서운 세상의 변화 때문이다. 다시 만나게 된 이상해는 선우혈에게 그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형님이 관짝에 들어가 있는 동안 세상이 겁나 많이 바뀌었어요. 매혈? 금지된 지 오래됐고 인간 흡혈? 꿈도 못 꿉니다. CCTV네 블랙박스네 카메라 쫙 깔려 있지 과학수사다 뭐다 이제 귀신까지 잡아낸다니깐요.”

그리고 이러한 가혹한 세상이 된 이유를 이렇게 토로한다. “다 돈 때문이죠. 돈 없으니까 사람들이 결혼도 안하지. 애도 안 낳지. 출산율 최저. 인구수 급감. 역대급 식량난이다 이 말씀이에요.” 즉 자본화된 세상이 만들어낸 인간들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뱀파이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10만원도 넘는 피 한 팩을 얻기 위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뱀파이어들의 세상이 왔다는 거다.

이건 <가슴이 뛴다>가 그리고 있는 저 서구의 뱀파이어들과는 완전히 다른 토속적인 정서이자 세태 풍자 가득한 블랙코미디다. 인간이 되겠다고 100년이나 관짝에 누워 있다 나왔는데 그가 되려는 인간들의 세상은 변했다. 뱀파이어를 압도하는 인간들의 세상 속에서 이들의 면면은 역전된다. 뱀파이어들에게서 어딘가 인간미(?)가 보이고, 정반대로 인간들은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일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 버거운 인간의 면면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주인해다. 이름은 주인해지만 정작 주인인 건 하나도 없는 이 청춘은 돈이 없어 빚을 지고 빚쟁이들을 피해 다니는 처지인데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마저 사기 당해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로부터 낡은 저택을 상속받는데, 알고 보니 그곳에 관 속에 잠든 선우혈이 있었던 거였다.

물론 <가슴이 뛴다>는 <트와일라잇> 같은 돈 냄새 풀풀 풍기는 그래픽과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뱀파이어물과는 정반대로 어딘가 없어 보이는 작품이 분명하다. 하지만 애초에 이 작품은 그런 환상적인 뱀파이어를 그리려고 한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초라하고 무력해 인간에게도 물려버리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사는 삶을 블랙코미디적으로 풀어내려 했다.

여기서 다시 질문은 왜 이 뱀파이어가 굳이 인간이 되려 했는가 하는 것으로 돌아간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건 조선시대에 만나 사랑했지만 그를 지키려다 사망한 양반집 규수 윤해선(윤소희) 때문이다. 인간을 사랑하지만 가슴이 뛰지 않아 늘 차디찬 손을 가진 선우혈이라는 뱀파이어는 다시금 가슴 뛰는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인간이어서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마저 잊고 살아가는 주인해 같은 인물을 다시금 사랑하고 싶어 한다. 뱀파이어의 사랑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세태를 꼬집는 이런 질문이 느껴진다. 돈, 돈, 하는 세상 속에서 당신은 과연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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