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에서 강남으로 온 ‘힘쎈여자 강남순’, 그 기대와 우려 사이

[엔터미디어=정덕현] 거구의 사내들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날려버리고, 딱밤 하나에도 이가 나가고 두개골이 흔들리는 괴력을 가진 여성들. 심지어 강남순(이유미)은 고장으로 착륙 후 멈추지 않는 비행기를 맨손으로 멈춰 세우는 놀라운 슈퍼파워를 가졌다. JTBC 토일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은 바로 이런 괴력을 대대로 갖고 태어난 집안 여성들이 범죄와 맞서는 통쾌한 코믹 슈퍼히어로 액션물이다.

첫 회는 그래서 어려서 몽골에 놀러갔다가 실종되어 그곳에서 성장한 강남순의 이야기와, 그를 애타게 찾는 어머니 황금주(김정은)의 이야기가 그려지며, 이들이 얼마나 놀라운 슈퍼파워를 갖고 있는가가 그려졌다. 국밥집을 하며 수완을 발휘해 큰돈을 벌어 엄청난 부를 소유한 전당포 대표가 된 황금주는 평범한 은행원 강봉고(이승준)와 결혼해 강남순을 낳았지만, 남편이 몽골에서 아이를 잃어버리자 그 사이가 틀어져 이혼했다.

아이를 찾기 위해 매년 힘센 여자아이 선발대회를 열어 온 황금주는 대회에서 우승한 리화자(최희진)을 강남순이라 믿게 되는데, 결국 진짜 강남순이 몽골에서 한국으로 부모를 찾으러 오게 되면서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전조가 벌어진다. 강남순이 비행기를 잡아 세우는 힘을 발휘할 때 그의 어머니인 황금주와 할머니인 길중간(김해숙)이 모두 텔레파시 같은 신호를 받게 된 것.

<힘쎈여자 강남순>은 2017년 방영됐던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달라진 이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힘쎈여자 도봉순>이 도봉이라는 강북을 배경으로 한다면, <힘쎈여자 강남순>은 강남을 배경으로 한다. 전작이 범죄와 전쟁을 벌이는 여성 슈퍼히어로의 이야기를 그렸던 것처럼 이번 작품 역시 마찬가지의 액션이 펼쳐질 것으로 보이지만, 도봉에서 강남으로 바뀌면서 범죄의 양상도 달라졌다.

도봉 배경의 <힘쎈여자 도봉순>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해 소탕하는 도봉순(박보영)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강남 배경의 <힘쎈여자 강남순>은 신종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그려나갈 작정이다. ‘힘쎈여자’를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내세운 건,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쉽게 범죄의 대상으로 치부되어 온 여성이라는 서사의 관점을 전복시키기 위함이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그래서 흔한 클리셰로 그려지곤 했던 여성과 남성의 성 역할을 뒤집어 놓았다.

황금주와 강봉고의 부부 서사가 단적인 사례다. 황금주가 주도적으로 강봉고에게 프러포즈하고 결혼한 후, 강봉고에게 일은 그만 두고 집안에 눌러 앉으라고 하는 대목이나 마치 후세 생산을 위한 존재처럼 강봉고를 대하는 모습이 그렇다. 게다가 황금주는 배트맨을 뒤집은 ‘배트우먼’ 같은 다크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당연히 판타지가 더해진 슈퍼히어로 액션 영상들이 펼쳐지지만, 그건 진지하다기보다는 B급 액션에 가까운 코미디가 더해진 영상들이다. 그리고 이건 서사 전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인물의 내면이나 감정을 깊게 파고 들어가기보다는 당장 보이는 시원시원한 장면들이나 액션들을 먼저 꺼내 놓는다.

이러다 보니 코미디라고 슬쩍 눙치고 들어감으로써 디테일이 떨어지는 스토리가 주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몽골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몽골에서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뜬금없이 ‘힘쎈 여자아이 선발대회’를 하는 대목이나, 황금주가 국밥집을 하며 아주머니들을 동원해 택시기사들에게 홍보를 하는 수완만으로 큰돈을 번다는 대목이 그렇다.

또 일종의 미러링으로 그려진 황금주와 강봉고의 만남과 결혼, 출산 과정의 이야기도, 너무 코믹한 방식으로 단순화해 그려지다 보니, 강봉고가 남편이라기보다는 아이 생산을 위한 도구처럼 그려진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것 또한 남녀 성 역할을 뒤집기 위한 통쾌한 풍자일 수 있지만, 강봉고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단순하게 처리될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너무 소모적으로 그려진 건 아닌가 싶은 면이 있다. 향후 어떤 식으로든 비어있는 서사가 채워질 것으로 보이지만.

캐릭터 설정은 좋지만, 인물이 어딘가 생생히 살아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강남순이 어떤 아픔이나 목적의식을 갖고 있는지가 보다 분명히 드러나야 이 작품이 그리려는 세계가 공감되지 않을까 싶은데, 현재로서는 부모 잃은 아이와 아이를 찾으려는 엄마라는 가족 서사만 전면에 담겨있어 혹여나 이 괜찮은 설정이 뻔한 서사로만 끝나지 않을까 싶은 우려도 남는다.

<힘쎈여자 도봉순>도 여성 슈퍼히어로라는 좋은 소재와 설정을 꺼내놨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다소 뻔한 멜로에 이 여성 캐릭터도 매몰되는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힘쎈여자 강남순>에게서 우려되는 건 멜로보다는 혈연으로 묶인 가족서사의 구도다. 클리셰를 비트는 재미가 만만찮지만 거기에도 그저 코미디로 눌러버리고 갈 수만은 없는 분명한 내적 개연성과 작품의 의도가 더해진 공감대가 요구된다. 바로 이 지점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갈림길에서 유치해거나 혹은 통쾌해질 수 있을 테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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