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라’, 이영애가 지휘해야할 오케스트라와 삶의 서사

[엔터미디어=정덕현] 지휘봉을 들고 지휘하는 이영애의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 모습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을 닮았다. 아무래도 클래식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다, 그것도 지휘자의 이야기니 겹쳐지는 연상이다. 하지만 tvN 토일드라마 <마에스트라>에서의 이영애가 그려나갈 지휘의 이야기는 어딘가 김명민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똥.덩,어.리.”라는 단 네 단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명민이 연기한 강마에와 달리, 이영애가 맡은 차세음은 어딘가 숨겨놓은 아픔과 비밀이 느껴진다.

한때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아직 그건 밝혀지지 않았다) 클래식을 포기하려 했고 그래서 자신을 놓아버리기도 했던 차세음(이영애)이었다. 바다 속으로 뛰어든 그녀를 살려내 ‘죽기 전에 나랑 놀자’며 타락으로 이끌었던 유정재(이무생)를 만나지만 ‘음악이 아프다’고 했던 그녀는 그를 미련없이 버리고 클래식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는 전 세계 단 5% 뿐인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가 된다.

과거 갑자기 음악을 놓고 삶마저 포기하려 했던 것처럼, 갑자기 이 세계가 인정하는 마에스트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의 ‘더 한강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로 돌아온 데는 분명 숨겨진 아픔과 비밀이 있다. 그건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지만 갑자기 사라져 모두의 기억 속에 잊혀진 채 생의 마지막 날을 살아가는 그녀의 엄마 배정화(예수정)와 관련된 것이면서, 또한 순간 아득하게 보이기도 하는 자신의 상태(그게 병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차세음이 돌아온 한강필은 만만찮은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 오자마자 한강필의 정신적 지주이자 악장인 박재만(이정열)이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차세음은 그를 밀어내고 한강필에서 가장 어린 이루나(황보름별)를 실력만 보고 악장으로 세운다. 박재만은 한강필을 떠나고 단원들은 모두 반발하지만 차세음은 이를 강행하는데, 관행이 아닌 실력을 기준으로 새로이 한강필을 꾸리기 위함이다.

동시에 차세음은 박재만을 찾아가 아내가 있는 앞에서 “잘린 게 아니라 물러난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야기하며 그의 면을 세워주는데, 차세음은 악장이 아니라도 악장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지 않냐며 한강필로 돌아와달라 설득한다. 결국 돌아온 박재만이 최연소 악장이 된 이루나를 지지하게 되면서 단원들의 반발도 수그러든다.

즉 <마에스트라>는 한강필을 성장시키는 차세음의 지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가 하는 지휘가 합주를 조율하는 그런 차원 이상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는 단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갖고 있는 고충이나 어려움을 끄집어내고 그걸 바꿔줌으로써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게 해주고 그걸 통해 오케스트라의 협업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리려 한다.

하지만 차세음이 한강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굴지의 투자사 회장님이 된 유정재(이무생)가 나타나 다짜고짜 그녀의 삶을 뒤흔드는 상황은, 이 ‘지휘’의 이야기가 오케스트라만이 아닌 ‘삶의 지휘’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기대하게 만든다. 차세음에 집착하는 유정재는 그녀에게 이혼을 한 후 자신과 더 놀자고 제안하는데, 그녀는 그런 제안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심지어 아예 한강필을 인수해버린 유정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연을 못하게 하겠다 협박하지만, 차세음은 ‘야외 무료 공연’을 통해 보기좋게 그의 뒤통수를 친다.

유정재는 차세음을 소유물처럼 여기며 그녀를 뒤흔들어 마음대로 지휘하려 하지만(지휘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차세음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스스로 지휘해내려 한다. 남편 김필(김영재)에게서 불륜의 냄새가 풍겨도, 또 자신을 손아귀에 쥐려는 유정재의 압박에도, 단원들의 반발에도, 또 어머니와 얽힌 트라우마 속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휘해간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김명민이 했던 강마에의 역할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 열등감에 사로잡힌 단원들을 보다 강하고 자유롭게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에스트라>에서 이영애가 하는 차세음의 역할은 한강필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을 지휘해내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마주한 장애물들과 과거와 얽힌 숨겨진 슬픔과 비밀들을, 끝내 무너지지 않은 채 뚫고 나갈 수 있을까. 이영애가 보여줄 지휘가 사뭇 궁금해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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