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슬럼프’, 슬럼프에 빠진 모든 이들을 위한 달달 촉촉 로맨틱 코미디

[엔터미디어=정덕현] “나는 있지, 가장 먹고 싶은 건 아꼈다가 제일 나중에 먹는 사람이거든? 그래서 행복도 그렇게 미뤘어. 교수가 되면 맛있는 것도 더 맛있겠지. 교수가 돼서 해외여행 가면 더 재밌겠지. 해외여행도 일등석 타고 가면 더 재미겠지. 그렇게 모든 걸 다 내일로 미룬 채 일만 했다고. 근데 이게 뭐냐? 응? 실컷 일하고 얻은 게 우울증이라니.”

JTBC 토일드라마 <닥터슬럼프>에서 남하늘(박신혜)이 술에 취해 여정우(박형식)에게 하는 하소연은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건 늘 맨 마지막에 남겨두는 습관. 그건 마지막 과실로 돌아올 성공을 위해 매 과정을 희생해온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밴 방식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돌아온 건 뭘까. 우울증 같은 게 아닐까. 심지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남하늘의 하소연을 듣는 여정우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학창시절부터 전교, 아니 전국 1등을 두고 경쟁하듯 살아왔던 그들이다. 그래서 전국에 체인을 가진 성형외과 의사로 또 100만 구독자를 지닌 인플루언서로 성공했지만 그게 산산조각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카오에서 온 상속녀가 수술 도중 사망했고, 여정우의 과실이라는 누명이 씌워지면서 백억대의 빚더미에 앉게 된 것.

<닥터슬럼프>는 이처럼 의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지만, 저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 등장하는 그런 병원 내 권력투쟁을 다룬 의학드라마도 아니고, 또 박신혜가 출연했던 <닥터스> 같은 본격적인 의사들의 성장에 집중하는 그런 의학드라마도 아니다. 대신 학창시절부터 치열하게 공부하고 의대에 들어가 수석 졸업해 의사가 되었지만 쉬지 않고 달려온 덕에 우울증에 걸렸고, 누명을 써 하루아침에 망해버린 의사들의 이야기다.

원한 건 아니지만 정우와 하늘 두 사람은 모두 지금껏 달려왔던 삶에서 멈춰져 있다. 하늘은 갑질하는 선배 교수를 참지 못하고 들이받은 후 병원을 때려치고 나왔고, 정우는 가진 걸 다 팔아 빚을 갚고도 아직 몇 십 억의 빚을 안은 채 하늘의 집 옥탑방에 셋방살이로 들어와 사는 처지가 됐다. 서로 경쟁하며 잘 나간다 싶었을 때는 으르렁대기만 했지만, 서로가 무너져버린 걸 확인하면서 이들은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어 조금씩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연다. 그리고 그건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질 테고.

그 많은 의학드라마들이 성공의 기준처럼 의사들의 삶을 그려왔고, 그래서 지금도 대학입시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는 학과가 의대라는 현실을 떠올려 보면, <닥터슬럼프>의 이런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를 장르로 차용하고 있지만 도발적인 면이 있다. 극 중에 “<하얀거탑> 장준혁이냐?” 같은 의미심장한 대사가 등장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그런 막연히 꿈꾸는 의사에 대한 선망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진다. 물론 의사들 중에는 이 인술에 대한 진정한 뜻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막연히 부와 성공을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리려는 건 의사라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사라는 성공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곤 있지만 그러다 넘어지고 무너진 후 비로소 알게 되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닥터슬럼프>에서 기대되는 건, 물론 정우가 누명을 벗고 하늘이 우울증을 벗어나 본업으로 돌아가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이들이 잠시 멈춰 선 순간에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들을 갖게 되는 과정들이다.

생존경쟁과 각자도생의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지쳐간다. 지치면서도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치부하고 버텨내려 하고, 심지어 그것이 마음을 조각조각 부서뜨리고 있다는 것조차 우리는 애써 부정한다. 그래서 끝내 넘어져 꿰도 바깥으로 튕겨져 나와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웰컴투 삼달리>의 조삼달(신혜선)이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비로소 삼달리로 내려와 진짜 삶을 찾아냈던 것처럼, <닥터슬럼프>의 정우와 하늘은 그들 앞에 갑자기 생겨난 깊은 슬럼프를 통해 진짜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 달달하고 촉촉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외피로 씌워진 위로와 공감이 어떻게 펼쳐질지 못내 기대되고 궁금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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