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예능 출연자에게 설득이 된 건 난생처음(‘아빠하고 나하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나에게 배우 백일섭은 노년층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지극히 유해한 사람이었다. 부디 예능 프로그램에서 더 이상 보지 않기를 바랐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를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TV조선 예능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딸 백지은이 그간의 사정을 풀어 놓는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7년 전 아버지와 절연을 하게 된 이유는 차라리 이혼이면 깔끔할 텐데 ‘졸혼’이다 뭐다 방송에서 마치 무용담처럼 떠벌이는 게 싫었다고 한다. 자신만큼은 어머니 편이 되어드리고 싶기도 했고. 늘 불 같이 화만 내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신 후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래서 그게 깨지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말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관찰 예능 출연자에게 설득이 된 건 난생처음이다.

온 세상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문제의 ‘졸혼’ 선언 후 부녀가 절연을 했고 그 사이에 막내 ‘시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외손녀 ‘시아’를 불과 얼마 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나. 31일 방송을 보니 시아가 할아버지를 남달리 살갑게 대하지 뭔가. 남인 나도 대견할진대 할아버지는 오죽이나 예쁘겠나. 백일섭이 딸하고 둘이 얘기를 나누다가 짐짓 손을 내밀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그림이다. 짐작컨대 학습효과일 터, 인터뷰에서 ‘나는 사랑을 배우질 못했다, 가족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라고 털어 놓은 바 있는 백일섭. 이번에 손녀 시아에게 사랑을 배운 모양이다.

어느덧 방영된 지 십년을 넘긴 tvN 예능 <꽃보다 할배>. 세대 간의 소통에 기여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향한 숱한 칭송 가운데 백일섭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이 안 좋았다. 매사 부정적이고 툴툴거리고, 결정적으로 아내가 싸준 장조림 통을 무겁다며 길바닥에 내팽개치는 장면. 이런 걸 왜 싸줬느냐 역정을 내는 모습.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카메라가 도는 상황에서 그리 할 정도면 집에서는 얼마나 폭력적이었을까, 수군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가 2013년이었는데 몇 년 지나 2017년 ‘졸혼’이라는 이슈를 들고 KBS <살림하는 남자들 2>에 등장한 백일섭. 서류 정리가 된 건 아니지만 아내와 갈라서서 따로 살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아내 편을 드는 딸과는 절연을 했다고 밝혔다. <살림하는 남자들 2>에는 아들 가족이 출연했었는데 이번 <아빠하고 나하고>에는 딸네 가족이 출연한다. 졸혼을 빌미로 그렇게나 예능 나들이를 자주 하더니 이제는 갈등을 풀겠다고? 화해를 하겠다고? 이 가족의 등장이 삐딱하니 다가올 밖에.

딸 백지은과 사위 김수찬이 화해를 시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왜 우리는 할아버지와 만나지 않는가, 아이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번 방송 출연 여부를 아이들과 의논을 했다는 점에서 이 부부의 결정이 신뢰가 간다. 방송을 보니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알고 눈치를 본다.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백일섭. 자신의 독단적인 행동이 가족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줬는지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사위의 조언대로 아내를 향한 부정적인 마음도 바꾸지 싶다.

혹시 민망해서, 어색해서, 빌미가 없어서 아버지와 데면데면 지내고 계신 분들. <아빠하고 나하고>를 보시고 그걸 계기로 한번 풀어보시면 좋겠다. 이 가족의 불행이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만만한 아내에게 풀고. 남편에게 당한 억울함을 자식에게 하소연했을, 딸에게 감정을 투영시켰을 아내. 남편이나 아내나 감정의 분출구로 가족을 이용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가 은연중에 그렇다. 예능 한 편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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