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에 빠져드는 건 바둑에 매혹된 자들의 심리가 더해져서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생불여사라 했다. 살린다 해도 이득이 없으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니 곤궁에 처한 돌은 살리려 애쓰지 말고 그냥 죽게 놔두는 것이 낫다.”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이하 세작)>에서 왕 이인(조정석)은 다시 나타나 기대령(임금의 바둑 사범) 선발에 응시한 강희수(신세경)에게 동부승지 김명하(이신영)가 대국에서 진 패인을 그렇게 설명한다. 어차피 죽을 돌을 버리지 않고 살리려 한 것이 패착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당돌하게도 강희수는 왕이 그들의 대국을 계가하며 덧붙인 이 설명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동부승지가 조금 더 버텨 이곳을 보완했다면 종국에는 소인이 졌을 겁니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곤궁에 처한 돌도 살릴 방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왕의 말에 토를 단 강희수는 “어차피 죽을 목숨”에 연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왕의 반박에는 더 당돌한 발언으로 맞선다. “어차피 죽을 목숨 전하께서는 어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십니까?”

이인과 강희수가 대국을 계가하며 나누는 이 이야기는 <세작>이 그리고 있는 세계의 흥미로움을 드러낸다. 이들은 바둑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이를 빌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3년 전 곤궁에 빠진 강희수와 그의 동료를 반드시 구하겠다 약속했지만 이인은 갑자기 왕이 사망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애원하는 강희수에게 자신은 더 이상 ‘필부’가 아니라며 선을 긋고 그들을 내쳤다. ‘곤궁에 처한 돌’을 이득이 없어 애쓰지 않고 죽게 놔둔 것.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강희수는 살아 돌아왔다. 그가 바둑을 빌어 말한 것처럼, ‘곤궁에 처한 돌도 살릴 방도가 있다’는 걸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그래서 이 말은 사실상 왕에 대한 도발이자 선전포고가 아닐 수 없다. 마침 신하들이 옆에서 그 대화를 다 들은 터라, 왕은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이를 묵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보고 들은 자가 많은 지라 내가 임금의 위엄을 지키려면 너를 끌어내 그 방자한 혀를 뽑으라는 명을 내려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그렇지만 이러한 위협에도 강희수가 하는 답변은 앞으로 왕과 강희수 사이의 대결에 대한 흥미로움을 한껏 기대하게 만든다. “바둑은 두 사람이 두는 것이고 바둑을 두는 동안 그 두 사람은 오로지 돌로만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나이도 신분도 군신의 관계도 하등 상관없게 되는 그런 대화 말입니다. 그래도 소인이 죽을 죄라면 장차 영취정에 들이실 자는 눈치 빠르고 비위 잘 맞추는 꼭두각시로 택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야 매번 혀를 뽑는 번거러움을 피하실 수 있을 것이니.”

강희수는 바둑을 잘 알고 있는 왕이 바로 그 룰을 깨고 그저 자신이 가진 권력의 힘으로 상대를 이기는 일이 치욕적일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물론 권력으로는 왕의 말 한 마디에 혀가 뽑힐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강희수는 왕을 바둑의 대결구도로 끌어들인다. 그저 힘으로 이기려면 이겨보라는 것이다. 그건 바둑의 대결로는 진 것을 자인하는 일이니.

<세작>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뭐든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왕이지만, 강희수가 말한 것처럼 바둑의 세계 안에서는 “나이도 신분도 군신의 관계도 하등 상관없는” 대결이 가능하다고 한 것처럼 그 승패를 알 수 없게 됐다. 결국 기대령으로 뽑힌 강희수에게 “네 놈이 복수를 위해 왔다”는 걸 안다고 핏발을 세우지만 왕은 바둑을 두는 방식으로 그와 대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둑은 적이라고 해도 상대에게 매료될 수도 있는 그런 세계가 아닌가. “나는 네놈이 어떠했는지 다 기억한다”고 하는 왕의 말은 그래서 그가 3년이 지났지만 그때 만났던 강희수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적이지만 그의 바둑과 그가 하는 말, 행동에 매혹된 왕이 결코 강희수를 쉽게 이겨낼 수 없는 이유다. 물론 그건 강희수도 마찬가지다. 왕을 무너뜨리려 하지만 그 역시 마음 한구석에 두었던 왕에 대한 마음을 잘라내야 하는 어느 순간이 도래하지 않을까. 바둑이라는 세계를 가져옴으로써 <세작>의 대결구도는 이토록 흥미진진해졌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