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아, 송하윤... 도파민 중독이 불러온 빌런들의 전성시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사이코예요. 우리 딸이지만...”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백하린(장다아)에 대해 부모가 나누는 대화는 이 빌런의 색다름을 드러낸다. 그는 괴물이다. 부모도 감당할 수 없는 괴물.

보통 학교폭력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빌런들은 부모로부터 학대나 억압을 받거나 혹은 죄를 지어도 비호하는 부모 때문에 비뚤어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학교폭력이라는 심각한 사건의 이면에는 어른들의 방치 혹은 악영향이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다.

하지만 백하린은 어딘가 달라보인다. 부모도 통제가 안된다. 부모가 백하린을 두고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그들 역시 정상은 아니지만, 그들의 어떤 약점을 백하린이 쥐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겨난다. “당신이 백연여고 재단 통해서 자금 돌린 증거 하린이한테 있다고요.”

이 집안은 어딘가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다. 백하린의 부모들인 최이화(정애연)와 그의 남편 백현준(김영필)도 괴물 같지만, 그들보다 딸인 백하린이 더 괴물 같고, 여기에는 그 손녀딸이 하고 싶은 건 뭐든 하게 해주는 할머니가 존재한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 인해 백하린이라는 괴물이 존재함으로 해서 <피라미드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가능해진다.

이 드라마는 백연여고 2학년 5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피라미드 게임’이 핵심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비밀투표를 통해 등급을 A부터 F까지 나누고 한 표도 받지 못한 F는 ‘공식적인 왕따’가 되어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게임. 이 학교폭력을 시스템화하여 정당화시킨는 게임이 전제되어야 드라마가 가능한 것인데, 그 키는 괴물 빌런 백하린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피라미드 게임>은 마치 <오징어 게임>처럼 게임적 요소를 가져와 사회 현실을 은유하는 드라마다. 학생들을 성적 순으로 줄 세움으로써 교실에서부터 나뉘어지는 피라미드 서열은, 그들의 부모들의 피라미드 서열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2학년 5반의 이야기가 피라미드화 되어 있는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이라는 은유다.

그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서 있고, 그래서 누군가를 밟고 서 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백하린은 심지어 집에서도 그 서열이 1등인 할머니 다음처럼 보인다. 부모로부터의 통제 또한 벗어나 있는 극강의 빌런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중요한 전제가 되는 이유다.

바야흐로 빌런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도파민 과다의 드라마들이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며 시청자들을 더 강도 높은 도파민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주인공보다 빌런의 존재감이 더 압도하는 드라마들이 등장하고 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같은 드라마가 단적인 사례다. 그 드라마는 주인공인 박민영, 나인우보다 빌런들인 이이경, 송하윤이 더 주목받는 기이한 결과를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피라미드 게임>에서 빌런의 꼭짓점에 서 있는 백하린 역할을 연기하는 장다아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첫 데뷔 작품이지만 외모와는 정반대로 서늘하고 섬뜩한 괴물 연기를 제대로 소화하고 있어서다. <피라미드 게임>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특히 신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래서 많은 신인들이 주목되고 있다.

주인공 성수지 역할의 김지연은 확실히 여러 작품 경험이 있어서인지, 빌런 백하린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팽팽한 대결구도로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안겨주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그의 든든한 친구로 등장하는 명자은 역할의 류다인이나 임예림 역할의 강나언 같은 인물들도 괜찮은 연기 존재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건 역시 백하린 역할의 장다아다. 좋은 배역이 주는 힘 덕분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서늘한 이미지를 이 괴물 빌런 연기에 잘 활용하고 있는 장다아의 노력도 주목받을만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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