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드라마, 조연 커플이 매력 있어야 뜬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골든타임>의 막이 오를 때, ‘러브 스토리 인 주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MBC <파스타>의 권석장 PD가 연출을 맡고 셰프 이선균을 비롯해 레스토랑 바지 사장 이성민까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통에 병원 응급센터로 자리를 옮겨 벌어지는 비슷비슷한 사랑 얘기려니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웬 걸, 어쩌다 급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통감하고 남을 불합리한 응급의료시스템과 치열한 병원 내 이권 다툼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면서 주인공(이선균, 황정음)들의 사랑은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굳이 왜 의학드라마를 표방했는지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병원을 무대로 한 드라마들의 사랑 놀음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로서는 <골든타임>의 이 같은 의외의 전개에 안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런데 주인공들의 애정 전선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 것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앞날이 궁금해지는 한 쌍의 커플이 생겼지 뭔가.

돈벌이와 자신들의 안위만 중히 여기는 세중병원 다른 의사들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진정한 의사 최인혁(이성민)과 그의 비서이자 매니저 신은아(송선미) 사이에 오가는 눈빛이 심상치가 않은 것이다. 젊은 아이들처럼 불같은 사랑은 아닐지라도 동지애와 존경심, 애틋하고 사려 깊은 온갖 감정이 버무려진 은근한 사랑인지라, 더욱이 두 사람 모두 솔직히 마음을 드러낼 입장이 아닌지라 안타까운 시선으로 응원을 하게 된다. 부디 이 두 사람이 아름다운 결말에 도달할 수 있기를.

그런가하면 <골든타임>과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SBS <신의>에도 주인공은 아니나 부쩍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두 사람이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세기의 로맨스로 명성이 자자했던 비운의 고려 31대 공민왕(류덕환)과 그의 아내 노국공주(박세영) 커플인데 이 둘 또한 최인혁, 신은아 커플처럼 아직까지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기를 마다한다.




12살 어린 나이에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십여 년을 보냈다 하니 오죽이나 설움과 울분이 쌓였을꼬. 그 와중에 원수의 핏줄을 아내로 맞은지라 미워해야 마땅하나 다짐과는 달리 가슴 깊은 곳에서 불현듯 싹트기 시작한 사랑이 당황스러워 부정하고 눌러 감추려 드는 공민왕, 그리고 자신을 싸늘하게 대하는 남편을 똑 같이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국공주다.

되도록이면 서로 무심한 듯, 그러나 상대가 위기에 처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걱정으로 가득한 눈빛들이 안쓰러운 한편 귀엽기도 한데, 급기야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 자객의 습격으로 인해 노국공주가 칼에 찔려 목숨이 경각에 달하게 되고 고려 최고의 의원 장빈(이필립)조차 고칠 수 없다며 손을 들자 공민왕은 “그 여인이 죽으면 우리나라가 죽는답니다.

왕이 되자마자 나라를 말아먹게 생겼군요.”라며 나라 걱정을 하는 척을 한다. 서둘러 화타에 필적할 신의를 찾아오라며 무관 최영(이민호)을 때마침 열린 천혈로 들여보내지만 공민왕, 그가 구하고자 한 것이 설마 고려뿐이었을까.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미래로 통하는 천혈로 뛰어든 최영이 데리고 온 성형외과 개업의 유은수(김희선)가 노국공주를 살려냈다. 하지만 돌려보낸다, 못 보낸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천혈은 닫히고 유은수는 과거에 남게 된다. 학회 중 영문을 모른 채 무작정 끌려온 그녀가 미래로 돌아가는 문이 닫힌 마당에 어떻게 하면 2012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정의에 죽고 사는 고려 시대 무관 최영과 속물 중에 속물인 그녀의 시대를 초월한 사랑이 과연 이루어질지, 주인공들의 행보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반면 이미 어떤 수순을 밟을지 빤히 다 아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앞날이 더 궁금해지는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다.

<골든타임>과 <신의>에는 비슷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사제지간인 최인혁과 이민우(이선균) 사이에 쌓여 가는, 그리고 군신지간인 공민왕과 최영 사이에 앞으로 쌓여갈 것으로 예상되는 인간적인 신뢰가 보면 볼수록 부럽고 기대가 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처럼 스타성 있는 주인공 말고도 또 다른 볼거리와 관심거리가 풍성해야 더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SBS <신사의 품격>에서 박민숙(김정난>, 이정록(이종혁) 커플이 뜻밖의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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