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스트레이디>, 감우성 논란보다 더 큰 문제는?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11월 28일, 여의도 63빌딩 2층 세콰이어&파인홀에서 <퍼스트레이디 – 그녀에게>의 제작발표회 및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아직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기초 정보를 드린다면, <퍼스트레이디 – 그녀에게>는 육영수 전기 영화이다. 끔찍한 타이밍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제작사 주기석 대표는 10년 전 드라마로 계획했다가 결국 영화로 전환했다고 하며, 정치 영화가 아니라 복고풍 멜로영화라고 주장하는데, 내가 굳이 그 말을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나는 그 인물과 그 이야기를 복고풍 멜로영화의 소재로 본다는 사실 자체가 오싹하게 느껴지지만, 그런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이 나라에서 1,2년을 살아봤나.

이 영화의 감독은 한창학이다.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일 텐데, 그는 <스크림> 아류작이 쏟아져 나왔던 2000년에 <찍히면 죽는다>라는 호러 영화의 각본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다음 해에 <고해>라는 영화의 각본에 참여한 모양인데, 그 작품은 본 적이 없고, 그 뒤로는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퍼스트 레이디 – 그녀에게>의 감독으로 등장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찍히면 죽는다>의 내용을 아시는지? 왕따 당하는 아이를 속여 가짜 스너프 필름을 찍는 척 하다가 진짜로 죽여 버린 고등학생들 이야기다. 이 뻔뻔스러운 것들은 시체를 불태운 뒤 파묻어 버리지만, 2년 뒤, 빨간 우비를 입은 살인자가 나타나 그들을 한 명씩 무참하게 살해한다. 척 봐도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의 흉내였다.

난 이 영화에 대해 정말 나쁜 기억을 갖고 있는데, 그건 영화가 형편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형편없기도 했다) 각본의 태도가 이상하게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중 그럭저럭 착한 애이며, 무리의 도덕적 중심으로 나왔던 박은혜가 복수자에게 짜증을 내면서 외쳤던 “그 때 일을 가지고 지금 와서 왜 이래요?"라는 대사를 기억한다. 그 대사가 나오는 순간 <찍히면 죽는다>는 나에게 한국 장르 영화 최악의 작품으로 찍혀 버렸다. 2008년에 교회 돈으로 찍은 혐오스러운 기독교 센세이셔널리즘 호러 영화인 <맨데이트: 신이 주신 임무>가 등장할 때까지 그 영화는 내 마음 속에서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소재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찍히면 죽는다>의 각본가를 감독으로 세운다는 계획은 지극히 괴상해 보인다. 아니, 이상하지는 않다. 그건 그 계획에 동조한 감독들이 그만큼 없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제작사가 조금씩, 조금씩 야심을 접어 한창학까지 내려가는 과정을 상상해 본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제작발표회와 함께 공개되었던 티저 포스터들의 끔찍한 수준 때문이었는지 (한 번 보시라!

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menu/star/photo/read?bbsId=M002&articleId=82332) 이번 제작보고회에서는 “우리도 멀쩡하게 영화처럼 생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를 주장하는 데에 힘을 들였다. 흠, 80년대 미국에서 극저예산 게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소리를 종종 했었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영화엔 진짜 배우도 나오고, 진짜 스토리도 있다고!”



이들이 수준 보장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캐스팅이었다. 육영수와 박정희로 나오는 한은정, 감우성의 캐스팅은 거의 일급이다. 정한용, 정운택, 전원주, 선우용녀의 조연진도 그럴 듯하다. 하긴 정운택, 전원주, 선우용녀는 이런 영화에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미지다. 순진하게 경력만 생각한다면, 정한용은 이들 사이에서 많이 어색해 보이는데, 내가 그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한은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단지 그 배우가 제작보고회 때 입은 드레스의 색이 빨강인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괴상한 건 감우성이 그것도 박정희로 출연한다는 것인데, 이건 그의 이미지나 경력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퍼스트 레이디 – 그녀에게>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도 감우성이, 그것도 박정희 역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이었다.

감우성은 그날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한은정보다 더 중요한 배우가 빠진 것이다. 김용대 프로듀서는 계약상 딱 두 번만 홍보를 한다고 했고 그 두 번은 영화 개봉 이후에 소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괴상했다. 이 영화보다 훨씬 정치적인 영화에 출연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며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 있는 <26년>의 배우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29일, 감우성은 “자신은 어떠한 사전고지도 받지 못했고, 지인의 연락을 받고 난 후 보도된 기사를 보게 됐으며, 이같이 제작사가 주연배우에게 일체 통보 없이 제작발표회를 감행한 것은 상식 이하의 처사”라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제작사 측의 계약불이행 및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향후라도 온전한 영화촬영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 현재는 상호 합의 하에 계약파기를 완료한 상태"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부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믿는가?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믿는다고 해도 구차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전고지를 받지 못했다는 게 만약에 사실이라고 해도, 이는 여전히 핑계를 만들고 도피하는 것처럼 보인다(다시 한 번 <26년>의 배우들과 비교해보라.) 더 괴상한 것은 60억 이상의 제작비를 투자해 만든다는 이 영화가 이미 엎어진지 오래라는 소문이 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문의 진위성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입장이 못 된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만약에 그게 만의 하나 사실이었다면, 이 제작보고회 겸 출판기념회라는 행사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퍼스트 레이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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