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석·김원희 콤비를 되살려낸 권오중의 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놀러와>는 <일밤>과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는지 모른다. 사실상 실패의 연속이었다. 1회성으로 끝났어야 아름다웠을 ‘세시봉’ 식의 7080에 경도되었다가 따뜻한 감성은 <힐링캠프>에 빼앗기고 전통이라 할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수다스러움’은 아예 방석 깔고 앉아서 더 편하게 이야기하는 <안녕하세요>에 내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9월에 트루맨쇼와 방바닥콘서트를 선보이는 개편을 단행했고, 지난 월요일에는 방바닥콘서트를 대신해 국내 최초 슬립 토크쇼라는 새 꼭지 ‘수상한 산장’을 선보였다. <놀러와>는 계속된 실패로 인해 절박함이 생긴듯하다. 그 절박함이 나은 기회일까. 완성도와는 별개로 경쟁 프로그램에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온 <놀러와>의 몸부림에서 새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수상한 산장’은 제작진이 게스트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우회적으로 묻고, 예전 당연하지 방식으로 누가 더 힘든 일을 겪었는지 대결하고, 어려운 발음의 동화를 정확하게 읽기 대결 등 제작진이 제시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초의 슬립 토크쇼라는 설명은 거창했으나 형식은 이처럼 어디선가 본 것들이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었던 것은 게스트로 초대된 ‘트루맨쇼’ 패널 권오중과 그를 다루는 유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놀러와>에 새로운 기운은 권오중으로부터 나온다. 그를 주목하는 건 19금 토크에 열광하기 때문이 아니다. 제대로 된 19금 토크는 권오중의 말대로 아직은 다 잘린다. 그가 블루칩으로 부상한 것은 권오중의 가세로 인해 모든 세대의 대중을 아우르는 편안함을 추구하던 <놀러와>가 <라디오스타> 초창기처럼 신선하고 역동적인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기 때문이다.

세대를 초월한 남자들의 트루먼쇼는 콤비MC의 화학력이 지속적으로 감소되던 유재석과 김원희를 되살린 코너다. 유재석과 김원희 앙상블의 매력은 한 쪽이 폭주하면 한 쪽이 타박을 주는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적절히 잡아주는 데 있었다. 허나 어느 순간 이 관계는 서로가 없어도 조절이 가능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노홍철, 조세호, 남창희 등이 그들을 보조했지만 그들의 역할과 매력은 이 두 MC의 앙상블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줄 럭비공 같은 말썽꾸러기가 필요했다. 그러기에 은지원은 너무 영리한 데다 독립적이고 김나영은 너무 익숙한 그림이다. 사실, 유재석의 곁에 늘 박명수와 하하 등이 있는 것처럼 엉뚱하고 사랑스런 트러블메이커의 존재가 <놀러와>에는 필요했다. 놀랍게도 배우이자 최근에는 준 요리전문가로 활동하던 권오중이, 예능에 첫 발을 내딛은 권오중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권오중의 존재는 <놀러와>의 정서를 바꿨다. 트루맨쇼는 언제 어떤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 되었고, 박재범과 김응수의 캐릭터가 잡히면서 은지원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자리를 잘 찾았다. 세대별 캐스팅은 서로 전혀 친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묘한 그림을 만들어냈다.

캐릭터가 생성되고 이들이 성장해나가는 트루맨쇼의 기본 콘셉트는 리얼버라이어티의 기본 공식이기도 하다. <라디오스타>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건 바로 이런 지점이다. 독하고 자극적인 방송이란 게 꼭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 <라스>가 게스트를 물고 뜯는다면, 여기는 자신들이 물린다. 아직은 매력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형식을 발견하지 못해 여기저기 난맥이 존재하지만 캐릭터가 잡히면서 점점 더 가속도를 붙여 어떻게든 굴러가고 있다.



<놀러와>는 8년이나 된 전통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지금 상황은 파일럿 방송과 다르지 않다. 긍정적인 건 예전 개편 때와는 달리 가능성이 도처에 떠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을 꿰고 매끄럽게 연마해야 하는 단계다. 지금 <놀러와>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MBC노조 트윗발 소식으로는 <놀러와>의 운명이 위태롭다고 한다. 내막과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와 시청자를 대하는 방송사의 고압적인 태도를 볼 때 염려스런 소식이다.

<놀러와>를 견인할 트루맨쇼는 아직 방송 분량도 들쭉날쭉하고 길어봐야 20분 안팎이다. 권오중이 그렇듯 아직은 원석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팀의 매력인 자유분방함과 개성이 조율되면서 <놀러와>는 간만에 기지개를 펴고 있다는 것이다. 일어서려면 시청자들과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의 성적표로 섣불리 결정할 상황은 아니다.

지금의 반응이 세시봉 때처럼 폭발적이지 않지만 그처럼 빨리 기화될 성질의 반응은 아니다. 중불로 은은하게 조려야 할 조림에 가까운 것이다. 확실한 것은 모범생을 지향하던 토크쇼가 점점 더 노는 데 눈을 뜨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따뜻한 감성과 따분한 예능의 경계가 모호했던 <놀러와>는 데프콘이 말하는 대한민국 예능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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