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영화 뮤지컬에 이어 창극으로 탄생한 ‘서편제’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눈을 끔적 끔적끔적 끔적끔적 끔적끔적 끔적이허더니 만은, (송화와 동호가 함께) ‘떴구나!’” <심청가>의 마지막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안숙선 명창이 부르자 관객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고 있는 창극의 만 가지 묘미에 마음의 눈이 열리고 소리의 눈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 <서편제>가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소설가 고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1976)는 1993년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유명하다. 2010년엔 이지나 연출가 윤일상 작곡가의 손을 거쳐 뮤지컬 <서편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창극 <서편제>는 판소리 종가 국립창극단이 만드는 소리꾼들 이야기란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판소리꾼의 예술혼을 담은 창극 <서편제>는 남도를 유랑하는 소리꾼 유봉과 소리 외에는 무엇도 마음에 두지 못하도록 딸을 소경으로 만드는 아비 유봉의 모습, 그런 아비를 원망하지만 소리로서 더 큰 세상을 품게 되는 송화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작품.

창작 창극이지만 모든 대사에 새롭게 소리를 붙이지 않고 김명화 극작가의 연극적인 대본에 판소리 다섯 마당의 눈대목(하이라이트)과 우리 귀에 익숙한 민요들을 엮었다. 소리꾼1인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서사시와도 같은 판소리의 연극성에 주목 한 것.



유봉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가 대목이 나오고, 눈먼 송화가 신세를 한탄하는 장면에선 ‘심청가’의 한 대목을 만날 수 있는 <서편제>는 ‘주크박스 창극’에 가깝다. 이 외에도 명창 임방울과 기생 김산호주의 일화를 창극으로 만들어 공연하는 ‘전국판소리 명창 경연대회’가 나오는 2막에서는 ‘흥보가’,‘적벽가’등의 하이라이트를 만나 볼 수 있다. 익숙한 민요 ‘진도아리랑’은 동호와 송화의 연정을 전달하는 대목에서 제 역할을 했다.

영화와 뮤지컬과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 송화가 한명이 아닌 세 명이란 점. 인생의 굴곡과 한(恨)을 소리로 표현하는 주인공 송화를 세대별로 구분 해 어린 송화, 중년 송화, 그리고 노년 송화로 등장시켰다.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처럼 파릇한 소리에서 원숙한 소리로 변화 돼 가는 송화의 모습이 극 전체 메시지와 긴밀하게 연결 된 점이 인상적이다.



송화가 계절에 따라 성숙해지고 변화하듯 지리산의 사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창극이다. 박동우 무대 디자이너와 정재진 영상 디자이너는 ‘광목’을 병풍처럼 겹겹이 두른 무대 위에 한국 수묵화를 활용한 3D영상을 삽입해 막을 영리하게 전환했다. 특히 송화가 눈이 머는 장면에서 들을 수 있는 ‘눈이 따갑소’라는 대사가 어둠 속의 충격적 파동 같은 영상과 함께 보여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3D영상이 등장인물의 심리 전달에 효과적인 장치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립무용단 황용천의 학춤 역시 유봉의 내면을 입체화시키는 데 한 몫했다.

양방원이 작곡한 국악과 양악의 크로스오버 음악이 귓가를 자극했다. 계성원 지휘자가 지휘한 풍성한 선율이 수묵화 같은 창극의 정서와 만나자 고리타분하다고 여기기 쉬운 ‘창극’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도 사실. 기자 옆의 외국인 관객은 막이 내린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손에 무게감을 담아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윤호진이 연출한 <서편제>가 고유의 창극 색과 다르다는 이유로 전폭적인 지지를 내 보이지 않은 관객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면 장면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만한 창극도 없다는 점에선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듯 싶다.

어린 송화 민은경, 중년 송화 김미진·이소연 노년 송화 안숙선· 김금미, 어린 동호 김준수, 중년 동호 이광복·임현빈, 유봉 왕기철·왕기석, 어머니 박애리, 삼월 나윤영, 서방 김학용 등 국립창극단의 간판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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