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 <도산 안창호> 주역 테너 양인준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제가 맡은 ‘사이가’란 역은 악역이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입니다. <토스카>의 스카르피아, <오텔로>의 이야고 같은 카리스마를 지녔죠. 대개 바리톤이 악역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테너가 악역으로 설정됐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악인일 정도로 정말 못된 놈이지만 이런 인물이 음악과 맞물려서 보여 질 때 더 짜릿함이 느껴질 것 같아요.”

창작오페라 <선구자, 도산 안창호>가 오는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에 걸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흥사단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는 이번 오페라는 장수동씨 (서울 오페라앙상블 대표)가 연출을 맡았다. 대본은 이남진(소설가, 한국비평가협회장), 작곡은 최현석, 지휘는 여자경(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전임지휘자)씨가 각각 참여한다.

<도산 안창호>의 주역을 맡은 테너 양인준을 만났다. 양인준은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대척점에 선 일본 고등계 형사 ‘사이가’ 로 분한다. 테너 강정우과 같은 역으로 번갈아 무대에 선다. 안창호 역엔 테너 이동명ㆍ김주완이 더블 캐스팅 됐다.

■ 오페라 <안창호>를 재미있게 보려면?

흥사단 오페라단은 이번 공연에서 역사적 기록물 영상에 오페라적 상상력을 더한 새롭고 신선한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민족 우선의 신념을 지켜나간 안창호 선생의 독립운동역사에 관한 이야기로 1905년 외교권을 빼앗긴 이후 33년간의 생애를 총 3막에 담아낸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만 멜로 드라마, 연극적 요소도 골고루 담아내 호기심을 갖게 한다.

-자료를 처음 봤을 땐 안창호, 게이코, 이토히로부미가 주역으로 보였다
“지도자 안창호가 선의 축이라면 ‘사이가’는 악의 축을 담당해요. 흔치 않는 투 톱 테너 오페라죠. 1막에서 3막까지 안창호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1막에선 이토(바리톤 최강지ㆍ박경준)의 그림자로 등장하다 2막에 이르면 테라우찌 총독(바리톤 양석진ㆍ이명국)과 같은 선을 걷다 경감으로 승진이 됩니다. 마지막 3막에 가선 총독부를 쥐고 흔드는 실세가 되죠.”

-실존인물 ‘사이가’를 오페라에 끌어들인 건가
“악질고등형사 ‘사이가’란 실존인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대로 가져오진 않았다고 들었어요. TV다큐멘터리를 통해 ‘사이가’란 인물이 알려지기도 했죠. 이토가 활발하게 활동한 시대에 ‘사이가’는 9세의 어린 소년이었어요. 다만 조금 더 드라마적인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상징적 인물로 극 안에 끌고 온 겁니다. ”

- 독립 운동가를 잡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된 악역 ‘사이가’란 인물에 대한 첫 인상은 어땠나
“처음에 악랄한 일본 순사란 말만 듣고는 얍삽한 간신배가 그려졌어요. 그런데 계속 공부해나가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보니 상당히 매력이 있어요. 또 작곡가, 작가와 연출자가 협의를 통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점도 좋아요. 대개 유명 오페라는 작곡가를 만날 수 없는데 저희 오페라는 살아계시니 의견도 물어볼 수 있고 더 좋죠. ‘내 소리는 이러 이러 하니까 이렇게 맞춰주세요’란 의견도 낼 수 있구요. ‘원석’에서 다듬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창작오페라를 하면서 ‘옛날에도 오페라를 만들면서도 이러했겠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

-어느 장면이 눈 여겨볼만한가
“‘사이가’의 아리아는 없지만 전체적인 음악이 정말 좋아요. 안창호의 아리아가 정말 멋있습니다. 가수의 엄청난 스태미나를 요구할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사실이구요. 특히 1막 마지막에서 도산을 쫓는 장면, 3막에서 ‘사이가’가 안창호에게 일본 쪽 손을 잡자고 권유하는 장면이 긴장감 넘쳐요. 안창호와 사이가가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르거든요. 음악 없이 대사만 하는 부분도 있는데 ‘필요한 것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계속 고민하면서 연습 중입니다.”

-열정적인 장수동 연출과의 작업이 어떤가
“선생님은 그동안 유명 오페라도 많이 연출하셨지만 창작오페라도 많이 하신 분입니다. <백범 김구>,<안중근>,<손양원>에 이어 <안창호>까지 작업하시는데, 열정이 대단하세요.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시는 모습 보면 왜 다들 대단한 분이라고 칭하는지 알게 되죠. 창작오페라 드라마, 아이디어는 선생님이 다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아이디어는 타고나신 것 같아요.”

■ 창작 오페라를 만들고 보는 이유

테너 양인준은 2012년 미국에서 귀국해 국내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첫 작품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올려 진 오페라 <다윗왕>, 그 다음이 <나비부인>,<도산 안창호><손양원>등이다. 특이한 점은 국내 활동을 하면서 맡게 된 작품 6개 중 3작품이 창작오페라란 점. 이에 대해 양씨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시간을 두고 보자”고 의견을 밝혔다.
-<다윗왕> 재미있게 잘 봤다.
“ 저도 기자님 평 봤어요. 같은 오페라를 세 번이나 관람하셨던데 대단하세요. 오페라 가수 입장에선 그런 애정이 정말 감사하죠.”

-국내 들어오자 마자 <다윗왕>의 주역을 맡았다.
“제가 작년 5월에 귀국했는데 9월에 바로 주인공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게 됐어요. 당시 주변에 <다윗왕>에 출연하게 됐다고 하면 주인공이라곤 생각하지 못하고 '그 작품에서 무슨 역‘이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결국 그 작품으로 이름이 조금은 알려지게 됐습니다. 젊은 피들이 모여 열심히 했어요.(웃음)”

-창작오페라는 ‘재미없을거다’란 선입견도 없을 수 없다
“창작이라 재미없을거야? 꼭 그렇지 않아요. 창작 나름의 의미가 있잖아요. 가수와 스태프가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연출이 가수에게 새롭게 기대하는 부분도 있을거구요.



또 백범 김구 선생님이나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 안창호 선생님은 덜 알려진 느낌이 있는데 이번 <도산 안창호>작품으로 대중에게도 알려질 수 있을거라고 봅니다.”

(인터뷰 현장에 함께 한 흥사단 오페라단 제작팀장인 송종준씨가 한마디 했다)“오페라 역사를 되돌아볼 때, 오페라가 초연 될 때부터 성공 한 것은 많지 않잖아요. 결국 괜찮은 것만 살아남게 되는 건데 우리 오페라도 잘 만들고 다듬어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해외 공연도 추진해보고 싶어요. 흥사단 미주지부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니 더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려구요.”

-국내에서 자주 보는 오페라는 <라보엠><라 트라비아타>,<토스카>등 레퍼토리가 한정 돼 있다.
“알려진 작품을 선호하는 풍토, 또 제작 여건을 생각하면 꼭 나쁘게 볼 수 만은 없어요. 특히 사립 단체가 창작오페라를 올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창작오페라엔 유명 오페라의 익숙한 음악은 없지만 또 다른 좋은 음악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도산 안창호>를 끝낸 후 바로 박재훈 창작 오페라 <손양원>무대에 선다.
“<손양원>에선 손양원 목사의 맏아들인 ‘손동인'역으로 나와요. 테너 김동원 정재환 선생님과 트리플 캐스팅입니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끼리는 손양원 패밀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손양원 목사의 부인 정양순, 맏아들 손동인 둘째아들 손동신, 셋째 딸 손동희 모두 주역은 아니지만 주 조역으로 비중이 없다고도 할 수 없어요. ”

■ ‘행운’의 성악가 양인준

다섯 살 때부터 영락교회 성가대 활동을 시작했던 소년은 성악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테너 박인수 교수의 제자로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94학번으로 들어갔다. 이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공립대학교인 템플 대학에서 성악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국내 무대 첫 데뷔는 2001년 예술의 전당 <마술피리>다.

-테너 양인준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미국에 있을 땐 연주에 전념하기 보다는 학교강의와 공부에 신경 썼어요. 미국에서 석사2년 박사4년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더 알려진 게 없을 겁니다.”

-성가대 경험이 성악가의 길로 인도 한 건가
“어린시절부터 경험한 찬양대 활동이 음악적 지식의 체계를 잡아준 것 같아요. 제금 생각해보니 ‘행운이라면 행운’인 것 같아요. 당시 교회 지휘자님이 현재 너무도 유명하신 윤의중, 윤형(바리톤), 양진모 지휘자분들입니다. 그분들 밑에서 제가 음악을 배웠으니 행운인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악의 길을 생각하게 됐어요.”

-왜 이태리가 아닌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가
“미국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학교 동기인 테너 김석철의 영향이 큰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시 그 친구가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저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지더라구요. 토플 점수도 없고 영어도 잘 못 하면서 무작정 도전했어요.

1년 정도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대학을 준비했어요. 결국 맨하튼 음대와 템플 음대를 동시에 합격했는데, 전액 장학금을 제시한 템플 쪽으로 결정했어요. 학교에서 일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라 더 끌렸거든요. 결국 자의반 타의반 템플에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박사과정도 템플에서 쭉 배웠구요. 막상 학교를 다녀보니 교육과정이 좋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제가 얻은 학위 역시 어렵게 탄 거라는 걸 인정해주시는 분도 계셨구요. ”

-궁금한 게 있다. 오페라 관련 자료를 받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와 달리 오페라 가수들은 왜 그렇게 출신학교를 꼭 써 놓는가
“음악인들은 그걸 마스터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아요. 결국 출신 학교가 어떤 마스터, 장인에게 배웠는지를 알려주는 장치니까요. 예전에 지인이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성악가 사회는 계보를 따라가는게 꼭 중국의 무술 ‘소림파’, ‘무림파’ 같이 나눠지는 것 같다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웃음) 저 역시 노래 스타일과 발성이 박인수 선생님과 비슷한 면이 있을 거예요. 한 배에서 나온 자식들이 비슷하듯이 말이죠.”

인터뷰 말미 극적인 두 테너의 열연이 기대되는 <도산 안창호>를 보러 올 관객에 대해 한마디 하라고 하자, 양씨는 “세상을 살면서 한번쯤 꼭 만나야 할 오페라입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너무 좋은 오페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관객에게 거짓말 하고 싶진 않아요. 좋은지 나쁜지는 관객이 직접 느껴야 하는 거니까요.”

오페라는 철저한 팀웍으로 움직인다. 오페라 가수에 대한 평은 함께 작업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들어야 진짜다. 송 팀장은 “양인준씨는 2001년 예술의 전당 <마술피리>부터 함께 작업했던 가수인데, 실력 뿐 아니라 사람이 정말 좋아요. 제작자 뿐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출연진을 편하게 해주는 분으로 손 꼽을만해요. ”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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