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 달을 쏘다> 배우 박영수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눈이 오다. 물이 되는 날/ 잿빛 하늘에 또 뿌연 내, 그리고, /커다란 기관차는 빼-액-울며, / 쪼그만, /가슴은, 울렁거린다. / 이별이 너무 빠르다, 안타깝게도, / 사랑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나자 하고-/더운 손의 맛과, 구슬 눈물이 마르기 전/ 기차는 꼬리를 산굽으로 돌렸다.”-윤동주 시인의 ‘이별’

“2막 형무소에 갇혀 선화의 환상을 보며 ‘이별’이란 시를 읊을 때마다 제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초연 때 너무 확 빠져서 조금만 건드리면 ‘끄윽’ 눈물이 날 정도였죠. 지난 번 서울예술단 스펙데이 때도 ‘이별’이란 시가 나오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요.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감정이 없어지지가 않네요. 재 공연하면선 배우가 캐릭터에 너무 빠져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배우가 지나치게 젖어 있으면 관객의 몫, 관객의 공간이 없어질 수 있는 거잖아요.”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윤동주’ 역으로 관객과 만나는 배우 박영수를 만났다. ‘이별’이란 시를 조용히 읊조리는 모습이 담담히 시를 쓰고 사색하는 청년 윤동주 모습 그대로였다.

■ 영혼이 맑은 배우 박영수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대본 한아름, 연출 권호성, 작·편곡 오상준)가 오는 5월 6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혼돈의 시대에 태어나 우리말과 글, 자신의 이름과 종교 등을 빼앗아 갔던 역사 속의 참담한 현실에 몸부림 치던 시인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2013 <윤동주, 달을 쏘다>의 가장 큰 변화는 무대미술과 안무이다. 우현영 안무가가 새롭게 참여해 억압된 삶 속에서도 한국인만의 강인함과 의지를 다이나믹한 재즈댄스 모던댄스 및 발레 몸짓에 담아낸다. 윤정섭 영상감독은 무겁고 부피감 있는 사실적 세트에서 벗어나 이미지로서의 공간을 그려낼 계획이다. 여기에 뮤지컬 ‘햄릿’과, ‘엘리자벳’ 그리고 ‘영웅’ 등에서 호평을 받은 배우 김수용이 윤동주 역에 더블 캐스팅 됐다.

-작년에 권호성 연출을 인터뷰하며, ‘영혼이 맑은 배우’라고 칭찬 하는 걸 들으며 다음엔 박영수 배우를 꼭 만나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수줍게 놀라며 웃기만 할 뿐)

-다시 한 번 ‘윤동주’ 역으로 무대에 서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초연 땐 정말 행운이 뒤 따랐던 것 같아요. 감기에 걸린 상태로 오디션을 치렀는데 너무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주조역만 하다 주연으로 선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렇게 정신없이 무대에 서서 아쉬운 게 많았어요.

서울예술단에서 다시 배우 오디션을 치루기도 했어요. 저 뿐 아니라 전 배역이요. 아무래도 한번 그 역할을 했던 게 있어서 뽑아주셨나봐요(웃음).”

-초연 때 부담감이 많았나.
“그동안 서울예술단에서 임병근 배우와 많이 호흡을 맞췄어요. 전 주역을 받쳐주는 역을 많이 했고요. 그러다 처음 주연을 맡았는데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오더군요. 전 잘 하는 게 없어 노력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윤동주 공연 연습을 하면서 ‘재능이 타고난 사람만 배우를 해야 하는가. 뮤지컬을 관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거든요.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니 윤동주가 감옥에 갇혀 병이 나고 우울해지는 증상과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 정도였어요.”



-2012년 윤동주 역을 맡은 배우에 대해 평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제가 노래를 너무 못해요. ‘달을 쏘다’란 넘버 역시 정말 못 불렀는데 저의 진심, 정서 및 연기를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뿐 아니라 공연 무대 오르는 중에도 힘들었나 보다.
“홍경수 선배가 마지막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그래서 제가 공연 전에 ‘선배 저 이 공연 하면서 목이 다 갔어요’라고 하니 ‘어떻게 목이 가니’라며 의아해하셨어요. 그러시더니 공연을 보고 나서는 ‘네가 그러니까 목이 가지’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직 서툴기만 한 배우였던거죠.”

-무대에서 너무 쏟아낸 건가?
“제가 절제를 하지 못한거죠. ‘진심을 쏟아낸 다는 것’의 방법적 차이에 대해서도 무지했고요. 여전히 그게 뭔지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질러버리기만 하면 목이 가버리는 건데...배우로서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무대에 서는 게 무서웠겠다.
“그 동안은 무대에 서는 걸 즐기는 편이었는데, 윤동주 공연을 하면서는 무대에 서는 게 무서워졌어요. 재공연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래서는 안 되겠다’란 생각으로 더 차분히 준비하게 됐어요. 윤동주의 기운을 안 놓고 작년 공연이 끝난 뒤 10개월 동안에도 매일 매일을 ‘윤동주’로 살았어요. 계속 준비를 한 거죠.”

-그 사이 뮤지컬 <아르센, 루팡>에도 출연했다.
“네. ‘루팡’ 작업과 ‘윤동주’ 작업을 병행해 나간 거죠. 예술의 전당에선 내내 ‘윤동주’로 살고 예술의 전당을 벗어나면 또 계속 ‘레오나르도’란 인물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죠. 그런데 칼잡이 레오나르도가 윤동주란 인물과 상반된 인물이잖아요. 정서적으로 왔다갔다하는 게 쉽진 않았어요. 스스로도 두 캐릭터 정서가 섞이는 경우도 발견하게 되더군요.”

-<루팡>하면서 배운 점이라면 뭐가 있는가
"개인적으론 첫 외부 작품이라 더 신경이 쓰였어요. ‘서울예술단’ 이름에 먹칠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게다가 지금까지는 5일~7일 정도의 단기 공연만 했었는데 약 2달 반 동안의 장기 공연을 하게 되니 관객 반응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그 점에서 평들이 좋게 나오지 않았던 공연 초반은 조금 힘들었어요. 그래도 후반 들어 객석이 꽉꽉 찼어요. 전 ‘윤동주’ 때문에 5월 5일 마지막 공연보다 조금 더 일찍 작품을 끝냈어요.

특히, 더블 캐스팅 된 배우 서범석 선배님에게 많이 배웠어요. 보는 것 만으로도 공부가 될 정도였어요. 저는 30대 초반이라 방방 떠 있는 기운이라면 선배님은 한 발짝 물러서서 인물을 바라보시더라고요.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로 연기적 상태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한방 맞은 느낌이었어요. 무대에서 정확한 에너지를 받고 넘겨주시는 너무 좋으신 선배님입니다.”



■ “윤동주 시인의 정서에 흐르는 ‘부끄러움’ 한 가지만 닮았어요.”

스무 살 부터 부산에서 연극배우 생활을 했던 배우 박영수는 2005년 서울예술대학교 연기과를 들어간 뒤 2009년 서울예술단 단원이 됐다. 그동안 댄스컬 ‘15분 23초’, 뮤지컬 ‘바람의 나라’, ‘청 이야기’ 등 작품에 출연했다. 창작 뮤지컬 <아르센 루팡>이 첫 외부 작품이다.

-배우 생활 몇 년 차인가
“스무 살부터 연극 배우 활동을 했으니 횟수로 치면 12년이 되네요. 제가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더니 주변에선 ‘어떻게 네가 뮤지컬을 하냐. 말도 안 돼”라는 반응도 보였어요. 정말 너무 못했어요. 부산에서 극단 생활할 때인데, 당시 세미 뮤지컬을 준비 중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네 마디 음을 잡지 못해 30분간 선배들이 어이없어 하신 적이 있어요.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잘 토닥거려 주셨는데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정말 2시간 동안 울면서 집으로 걸어갔어요. 전 아직도 너무 부족해요. “

-그렇다면 대학교에 들어와서 노래 실력이 늘게 된 건가
“서울예대 김지현 선생님에게 배우고 난 뒤 많이 좋아졌어요. 또 제가 이것 저것 공부를 하는 편인데 이비인후과 책이나 성대 관련 책을 찾아봤어요. 성대의 진동이나 움직임을 사진으로도 찍어보면서 가창의 원리에 대해서도 파고들었죠. 다른 뮤지컬 배우들도 이런 쪽으로 관심을 보이시더라구요. 타고난 노래 실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노력해야죠.”

-왜 뭐든지 자꾸 부족하다고 하는가. 뮤지컬 <바람의 나라>나 댄스 컬 <15분 23초>무대에 올라 몸을 잘 쓰는 배우로도 유명하던데.
“그것도 무용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 비하면 잘 쓰는 것도 아니죠. 배우라면 춤 연기 노래 이렇게 세 가지를 다 잘 해야 하죠. 전 부족하지만 ‘연기’에 더 힘을 싣고 싶어요. 그리고 뮤지컬 속에서 ‘노래’란 단순한 대사가 아니잖아요. 멜로디 선율을 입고 태어나는건데 그 안에 말하는 마음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제가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다시 ‘윤동주’ 이야기를 하자면, 초연 공연 보면서 문학적 감수성이 충만한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문학소년’인가
“오히려 운동을 너무나 좋아하던 소년입니다. 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케이스죠. 배우 하면서 혼자 일기도 쓰게 되고, 시도 끄적거리게 됐어요.”

-‘윤동주’ 공연을 하면서 시를 쓴 건가. 혹시 그 시를 볼 수 있는가
“윤동주 공연의 막이 내린 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생과 서울대학교 산턱에 올라 ‘시’를 썼어요. 페이스 북에 올려놨는데요. 제목은 없는 시입니다.(그리고선 핸드폰을 꺼내 본인의 시를 잠시 보여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윤동주의 ‘이별’이란 시와 박영수의 무제 시를 계속 읽어봤다)”

-시인 ‘윤동주’와 정말 닮은 것 같다.
“딱 한 가지만 닮았어요. 윤동주 시인의 정서엔 나라 잃은 지식인의 고뇌와 부끄러움이 깔려있듯 전 뭘 해도 관객 앞에 서 있는 게 부끄러워요. ‘부끄러움’ 한 가지 만 닮았네요.(웃음)

-‘윤동주’란 인물을 오랜 시간 바라보면서, ‘윤동주’란 인물은 어떤 사람으로 생각됐는가
“‘윤동주’는 암흑의 시대를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인물이 아닙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사가 ‘자라서 무엇이 되겠냐’는 물음에 ‘사람이 되겠다’고 대답하는 장면인데, 그 대사 그대로 윤동주는 ‘사람다운 사람’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사람 냄새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고백하자면, <윤동주, 달을 쏘다> 공연이 임박해 인터뷰가 이뤄져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결국 이번 인터뷰는 돌직구 인터뷰가 되지 못했다.약 30분간의 인터뷰를 끝내자 마자 박영수 배우는 공연 ‘런’을 돌기 위해 바람처럼 뛰어갔다. 짧은 시간 만나봤지만 박 배우에 대한 느낌은 ‘맑음’ 그 자체였다. 권호성 연출의 추천이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감이 잡혔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차후 작품을 공식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언뜻 들었을 땐 깜짝 놀랄만한 역할임엔 틀림 없었다. 다음 인터뷰를 필히 기약해 돌직구를 날려야 할 듯 싶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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