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찾는 수퍼스타, “이젠 알 것 같아요”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2012 UK 아레나 투어의 지저스 역을 맡은 벤 포스터를 직접 캐스팅하며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내가 찾는 수퍼스타는 페노메논(phenomenon)을 일으킬 수 있는 배우여야 하는데 벤 포스터가 바로 그 사람이다"고 극찬 한 바 있다.

2013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가 6년 만에 재공연된다고 했을 때, 기자 역시 웨버의 그 말을 떠올렸다. 박완규(지저스), JK김동욱(유다)이 나온 2004년 국내 초연도 보고, 2012 아레나 투어 실황을 그대로 옮겨온 영화도 봤지만 매번 볼 때마다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지저스>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이로운 현상을 경험했다. 예수의 마지막 말 “다 이루었다”의 의미, 마리아의 “이젠 알 것 같아요”가 이렇게 마음 속에 와 닿기도 처음이다. 2013 ‘지저스’ 역은 마이클 리와 함께 배우 박은태가 더블 캐스팅 됐다.

브로드웨이와 한국을 오가며 활약 중인 뮤지컬 스타 마이클 리는 미국 <수퍼스타>에만 400여회 출연한 배우로, 한국 공연에 임하며 “피와 살을 가진 인간, ‘아웃사이더 지저스’의 분노, 좌절, 공포, 사랑을 담아 내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사실, 마이클 리의 입에서 처음 대사가 터져 나올 때 100% 완전한 한국어 발음은 아니었다. 물론 몇몇 일부 발음이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1막 ‘가엾은 예루살렘’넘버에서 확실히 마음의 문을 연 뒤, 2막 ‘겟세마네’에선 이 공간에 ‘그와 나 단 둘이 있는 듯’,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빠져들었다.



‘신의 아들인 예수도 결국 인간’ 임을 이렇게 절절하게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듯 싶다. 마이클 리는 울고 화내고 아파하고 고민하고, 결국 받아들이는 ‘예수’ 역을 설득력 있게 체화했다. 그 무엇보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점은 성스러운 기본 이미지에 더해 따뜻한 온기가 있는 인간적인 지저스를 무대로 불러낸 점.

‘지저스’ 역은 잘못하면 폭발하는 가창력만 돋보이기 쉬우나 그는 가창에만 방점을 찍은 게 아닌 목소리의 힘 안에 다양한 예수의 모습을 숨겨놓고 하나 하나 꺼내 펼쳐 놨다. 관객들은 지저스의 마음 속 앨범에서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했다. 결국 기립 박수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유다’의 눈으로 ‘인간 예수’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을 그린 록뮤지컬이다. 당시 스물 한 살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스물 다섯 살 팀 라이스가 힘을 합쳐 만든 이 작품은 유다의 시선에서 지저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렬한 록 오페라음악은 물론 예수에 대한 종교적 금기를 깨고 그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파격적인 재해석은 뮤지컬 사상 최고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지저스를 단순한 스승 이상으로 경배하고 사랑하는 제자 유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왜 모든 걸 던지고 가려 하냐. 당신이 이 땅에 온 의미를 알 수 없다”고 외친다. 이런 유다의 심경은 넘버 ‘수퍼스타’에서 극대화 되어 나타난다.

2013년 현재와 예수가 죽어가는 과거가 공존하는 무대가 펼쳐지면, 예수와 같은 하얀 의상을 입은 유다가 천사들(혹은 백댄서)과 함께 등장해 흥겨운 노래를 부른다. 거미줄 같은 막 뒤로 십자가에 매달려 괴로워하는 예수의 모습이 함께 보여지는 것. 소름끼치는 장면이란 바로 이런 장면 아닐까. 전율과 소름 그 뒤에 밀려오는 생각들은 관객의 몫이다.

스승에 대한 의심과 의문에 가득 찬 지저스의 제자 ‘유다’ 역에 윤도현(YB)과 김신의(몽니), 한지상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선다. 특히 한지상은 “무대인생의 터닝 포인트…유다에 내 모든 것을 걸겠다”는 선언 그대로 지저스와 팽팽한 긴장감을 선보이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열정적인 유다이자 냉소적인 유다가 두 시간 내내 강렬한 고음을 내지르며 질문을 던질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지상에 유다가 단 한 명 남는다면, 단연코 (한)지상 아닐까’라고. 그 만큼 SNS에선 한지상 유다에 대한 감동의 한 줄 평이 넘쳐난다. 인간 유다의 고뇌와 혼란의 도가니에 2013년 관객들은 빠져들었다. 유다가 1막 초반 ‘마음 속의 천국’을 부를 때부터 관객은 이미 유다가 만들어 낸 천국에 와 있으니 말이다.



2013 <지저스>는 천재 뮤지션 정재일 씨가 편곡을 맡아 강렬한 락 스피릿을 선사한다. 이지나 연출은 심플한 사막을 재연한 무대 위에 음악의 강력함으로 무장한 인류 최초의 락 스타 지저스와 유다를 흙바람 속에서 만나게 했다. 단, 심플한 무대와 한국어 가사와 영어가 섞인 가사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듯 하다.

지저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느끼며 혼란스러워하는 마리아 역은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여배우 정선아와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코리아’ 출신 장은아가 맡았다. 정선아의 청량감 있는 목소리와 호소력 있는 연기가 ‘마리아’ 역과 잘 어울린다. 반면 장은아는 허스키한 목소리를 지녀 좀 더 거친 보헤미안의 매력이 묻어나온다.

‘역대 최연소 헤롯’으로 뮤지컬 데뷔를 하는 조권과 더블 캐스팅 된 김동현 헤롯은 지저스와 민중 모두를 이해하지 못하는 냉소적인 왕을 매끄럽게 소화했다. ‘헤롯의 노래’에서 보여주는 악동기질 역시 절대 미워할 수 없다. 군중의 요구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극형을 선고하고 마는 무기력한 지배자 '빌라도' 역을 맡은 배우 지현준과 김태한의 연기력도 돋보인다. 특히 39대의 채찍과 십자가 처형을 선고하며 갈등하는 빌라도의 내면은 김태한에게서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었다.

6월9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설앤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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