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골레토>, 테너 신상근 바리톤 정승기 베이스 서정수 [인터뷰]

“국내 첫 데뷔 무대인데, ‘저 가수가 얼마나 잘 하나’ 보러 오는 게 아닌 좋은 마음으로 들으러 오셨으면 해요.”(신상근)
“젊은 성악가들이 예술의전당 무대에 서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해요”(서정수)
“아직 바리톤으로선 ‘아기’인 30대입니다. 계속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정승기)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노블아트 오페라단(단장 신선섭)이 이탈리아 부세토의 야외 오페라 축제 ‘베르디페스티벌’ 프로덕션의 무대와 의상을 그대로 들여와 <리골레토>를 선보인다. 지휘자 안젤로 잉글레제, 파올로 보시시오 연출로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총 4회 공연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무대에 오른다.

제4회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세 번째 참가 작품 <리골레토>의 젊은 주역인 바리톤 정승기, 테너 신상근(안드레아 신), 베이스 서정수를 예술의 전당 내 까페에서 만났다.

■ 클래식 <리골레토>에 깊이를 더하는 드라마 트루기

노블아트 오페라단의 <리골레토>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연출가 김숙영이 드라마 트루기(연극론, 연극술, 연출법을 두루 포함하는 개념으로 흔히 극작술로 표현하기도 한다.)를 맡아 시대의 감수성을 가수와 관객에게 적합하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점이다.

또한, 현재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 전속 가수인 정승기와 신상근은 <리골레토>의 ‘리골레토’와 ‘만토바 공작’으로 수십 번 호흡을 맞춰 본 사이다.

정씨와 신씨 모두 ‘연출의 의도에 따라 클래식한 <리골레토>를 선 보이 돼 깊이감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선 현대적인 연출이 가미된 <리골레토> 작업을 많이 했어요. 공작이 질다를 아버지 몰래 만나는 장면(‘아띠오’ 나오는 장면)에선 공작이 저 만치 달려가서 허들을 뛰어넘고 다시 질다에게 달려오게 만들기도 했어요. 호기심을 자극하며 ‘질다’가 옷을 갈아입는 실루엣을 보여주는 연출도 있었죠. 한국 관객들은 오페라를 처음 보러 오시는 분들도 많으니 이번에 선 보이는 클래식한 연출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신상근)

“주인공 ‘리골레토’를 공작의 시종인 꼽추로 그리지 않고 카바레의 지배인으로 그린 경우도 있었어요. 허리 보호대가 없으면 제대로 서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는 흥미로운 인물로 설정했었거든요. 이번 <리골레토>는 파격적인 설정은 없지만, 국내 협력 연출인 김숙영 선생님이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 있게 끌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어요. 예를 들면, ‘리골레토’의 부인이자 ‘질다’의 엄마는 왜 죽었을까? 란 질문거리를 던져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거죠.”(정승기)

서정수는 그동안 ‘스파르푸칠레’ 역으로 음악회 무대에 서 본 적은 있지만 전막 오페라 공연으로 함께 하는 건 처음이다. 살인 청부업자 ‘스파르푸칠레’에 대해 서씨는 “리골레토가 사랑하는 딸을 잃고 20~30년 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닮은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원래 스파르푸칠레는 ‘무사’ 였을 겁니다. 흔히 사극을 보면 양반이 누명을 뒤집어쓰고 짧은 시간에 큰 상처를 받으면, 킬러로 돌아서기도 하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접근해 갔어요. 이미 마음 속에 크나큰 상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칼로 찔러놓고도 당황하지 않고 무표정하죠. 김숙영 연출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시기도 했는데, 리골레토 역시 딸을 잃은 충격에 스파르푸칠레 처럼 무표정, 무감정의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 테너 신상근 “아파서 일정 취소하는 성악가는 되지 않을 것”

세 젊은 성악가들은 독일 무대에서 함께 활동하며 친분을 쌓았다. 서정수와 정승기는 35살 동갑내기 친구이고 신상근은 그보다 다섯 살 많은 형님이다.

테너 신상근은 한양대학교 성악과를 거쳐 이태리 노바라 콘서바토리와 라 스칼라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독일 도르트문트 국립극장에서 도니젯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로 유럽 무대에 데뷔,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등에서 <리골레토>,<가면무도회>,<카르멘>,<토스카>,<파우스트>,<나비부인>등 주역으로 출연했다. 현재 정승기와 함께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 전속 가수 소속이다.

신씨는 원래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성악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는 흥미로운 일화를 전했다.

“고교시절 클럽활동 시간에 합창단과 신문반 두 곳에 합격했어요. 당시 친구는 합창반에 떨어졌는데, 저랑 같이 오면 친구도 합창단에 넣어준다는 말에 넘어가 합창단에 들어갔어요. 그 친구는 곧 그만두고 저는 계속 합창단에 남았어요. 한번 시작하면 끈기 있게 끝까지 가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한양대 성악가 선배에게 레슨까지 받게 됐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으니까 성악을 계속 한 거 아닌가
“노래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재미도 있었구요. 저희 집안이 아버지는 곧잘 노래 하시는데, 어머니는 클래식보다는 하루 종일 트로트를 즐겨 듣는 분이세요. 그 안에서 성악을 직업으로 삼은 제가 나왔어요(웃음)”

-국내 첫 데뷔다. 어떤 테너로 설명하면 될까.
“제가 세례명이 안드레아라 ‘안드레아 신’으로 예명을 써요. 처음 듣는 사람들은 안드레아 보첼리와 이름이 비슷해 그런 성악가인가? 하는 생각도 가지시더군요. 음악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한양대 재학시절엔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은 학생이었어요. 연습을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고, 실력이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구요. 소프라노 임세경이 저랑 동기인데 둘 다 학생 땐 많이 놀았어요. 그러다 결혼한 뒤 가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오히려 일이 잘 풀렸어요. 결혼한 뒤 콩쿠르 우승도 더 잘 됐고, 아이 낳고 난 뒤에 좋은 극장으로 옮기게 됐거든요. 다 아내 덕입니다. 이 이야기는 꼭 써주세요.(웃음) 그런데 한국에서 공연을 하면, 꼭 전화를 해서 공연 보러가겠다고 말씀을 하죠. 그것도 부담이긴 합니다.”

-‘만토바 공작’ 역을 맡은 성악가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완전 바람둥이 캐릭터로만 그리는 경우를 몇 몇 봤다. 본인은 어떻게 보여줄 건가

“개인적으로 <리골레토> 프로덕션은 세 번째이고, 횟수론 50번이 넘게 공연했어요. 3~4번 공연 할 땐 노래 부르기에 바쁘죠. 10번이 넘어가면 노래에 감정을 싣는 부분에 더 신경을 쓰게 돼요. 독일에서 배울 때 역시 ‘노래하지 말고 연기하라’는 말을 하실 정도로 연기가 중요하죠. 이번 프로덕션에서 연출은 아무 생각이 없는 졸부 바람둥이로만 표현하길 원하시는데, 전 좀 더 감정을 싣고 싶어요. 2막에 공작이 질다가 없어진 걸 알고 카바티나를 부르는 그 장면에서 좀 더 가사를 음미하면서 부르고 싶어요. 기자님이 까다로우셔서 제가 표현하는 만토바도 마음에 안 차실 것 같은데 어쩌죠. 첫날 공연 보시면 미리 크리틱 좀 해주세요(웃음)”

-독일에서 성악가로 활동하는 건 어떤가
“독일은 대개 2년에 한 번씩 재계약을 해요. 극장에 소속 돼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게 안정적이긴 하지만, 항상 평가받고 있는 입장이라 편하진 않아요. 9월에 계약을 연장을 할 것인지 통보를 하는데, 극장 측에서 아무 말이 없으면 남아있는 거고, 편지를 받으면 나가라는 의미거든요. 그 시기가 되면 (해고)편지를 들고 울고 있는 동료 가수들이 많아요. 이미 노래 잘하는 한국 성악가들이 너무 많아 조금만 눈 돌리면 바로 바로 채용 할 수 있으니 그들로서도 아쉬울 게 없죠. 또 실력이 좋다고 계속 계약이 연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가수에게 딱히 맞는 역이 없다고 생각이 들어도 ‘나가라’고 하거든요. 어찌 보면 ‘파리목숨’ 인거죠.”

-독일과 비교해 국내 오페라 상황이 다른 점이 있다면?
“독일에선 한 작품을 맡으면 10회 혹은 20회를 공연해요. 그 아이템으로 1년 혹은 2년 뒤에 또 올라가구요. 연출은 같고 가수만 달라진 채 계속 올라가는거죠. 관객 입장에서도 1년 전에 봤던 그 작품이 좋았으면 또 보러갈 수도 있는거구. 똑같은 연출 작품을 다른 가수는 어떻게 소화하나 비교하면서 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국내 오페라는 일반적으로 4회 공연에 한 가수마다 1회 혹은 2회 밖에 무대 서지 않죠. 가수 입장에서도 여러 번 공연 할 수록 더 무르익을 수 있는건데 그 점에서 아쉽긴 해요. 물론 무대 보관소도 충분하지 않고, 사립단체의 재정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은 들었어요. 또 다른 점이라면 국내 극장 사이즈가 너무 커서 연기보다 소리에 집중해야 저 끝에 앉은 관객들에게도 내 소리를 듣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겠네요. 아! 지휘자를 비추는 모니터가 양 사이드 각각 한 개씩 밖에 없는 점도요. 중앙 모니터가 없어서 지휘자를 보기가 힘들어요.”

-고음을 내는 테너들이 대개 예민한 경우가 많던데, 인터뷰에서 만나보니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다른 테너들에 비해 컨디션을 덜 타는 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베개가 옆에 있고, 안대만 있으면 잠도 잘 자요. 째깍 거리는 시계 소리 외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없어요. 스스로 무디다고 생각하니 계속 무뎌지는 것 같아요. 예민한 테너들은 감기 걸린 사람은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데 전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누군가 제게 ‘바리톤 혹은 베이스 같은 테너’라고 칭하기도 했어요. 음악이 직업이 되면 행복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아요. 어떤 때는 감기에 걸렸어도 무대에 올라요. 세계 최고의 리릭 테너 중 한 명인 알프레도 크라우스처럼 ‘바빠서 일정을 취소할 지 언정 아파서 일정을 취소하는 가수는 되고 싶지 않아요.’”



■ 베이스 서정수, “독일에서 제 스승은 유투브, CD, 무대”

베이스 서정수는 경원대학교 성악과, 독일 독일뉘른베르크음대 성악과 만하임음대 오페라과 최고 연주자과정 졸업 후 독일 퓌어트 극장 ,독일 자를란트주립극장, 독일 울름극장에서 바그너 오페라 <라인의 황금>, <윈저가의 유쾌한 아낙네들>, <난쟁이>, <돈카를로>등 을 공연했다. 독일에서의 생활을 접고 2012년 귀국한 뒤 서울시오페라단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 중 <마술피리>에서 ‘자라스트로’ 역을 맡아 호평 받았다.

-한국에서 오페라 가수로 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작년에 귀국했다.
“‘살고 싶으면 한국에서 살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유럽에서 살아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만큼 국내 오페라 무대는 많지가 않으니까요.(옆에 있던 신상근씨가 한마디 한다. 정수는 독일에서 커리어를 더 쌓을 수 있었는데 향수병이 커져서 한국에 들어왔어요.) 딸이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돼서 들어오기도 결심한 것도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독일에선 제대로 성악을 봐 줄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 이태리에서 수학한 사람에게서 성악을 배워야 했거든요. 8년 반을 독일에서 있었는데, 제 스승은 ‘유투브, CD, 무대’라고 말 할 정도로 연간 85회 이상을 공연했어요. 1년에 6작품 3개 국어로 된 작품을 연달아 하기도 했죠. 독일에선 계속 오페라 작품이 올라가니까요.”

-독일 사람들은 한국 성악가들에게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스개 소리로 우린 독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라고 해요. ‘아프지도 않고 소리내는 기계’로 치부 되는 경우도 많거든요.(신씨가 한 마디 거든다. 얼마 전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에서 바리톤 정진원과 소프라노 박현주 선생님과 함께 ‘루치아’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저희를 보는 시선이 설날 특집에 나온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것 처럼 느껴졌어요) 유럽 극장에 점점 한국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과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는 것을 비슷한 맥락으로 본 거죠.”

-실력 있는 젊은 성악가들을 널리 알리고 싶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다
“국내에선 오디션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것 같아요. 점차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젊은 가수들보단 유명한 가수들을 선호하죠. 독일에서 제가 ‘국내 들어가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고 했더니 독일 사람이 그러더군요. ‘공연이 올려지면 우리가 너희들을 보러 갈 텐데 왜 무대가 없느냐’고. 하지만 국내 오페라 공연은 매번 적자가 반복되니 무대가 많지 않죠. 그래서 이번에 신선섭 단장님이 젊은 사람들의 데뷔 무대를 만들어 준 게 너무 감사해요.”

-어떻게 성악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나
“사연이 긴데...학창시절에 전 스스로 노래를 못 부른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이 부르는 키에 맞춰 부르지를 못했으니까요. 그러던 중 제가 다니던 남자 고등학교에 교생 선생님 두 분이 오시게 됐어요. 한명은 성악 전공이고 한명은 피아노 전공이셨어요. 교생 선생님이 ‘누가 노래 한번 불러 봐’라고 제안을 하셨는데, 제가 그날 과장스럽게 성악가 흉내를 내며 노래를 불렀어요. 전 그냥 흉내만 냈을 뿐인데 선생님이 ‘성악을 해 보지 않겠냐’고 해서 그렇게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또 공부 쪽으론 이미 손을 놔서 다른 쪽으로 길을 찾고 있었던 시기와도 잘 맞았구요.”

-그렇다면 대학시절 성악과가 적성에 잘 맞았나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넌 게을러서 안 돼’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그 답을 듣고 팔당댐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난 이거 아니면 안 되는데..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최근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뵙고 인사드렸더니, 선생님이 ‘예전에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 너무 안타까워서 그랬다’고 말씀하셨어요.”

-성악가들은 결혼을 일찍하는 것 같다
“외국에서 생활을 많이 하는 분들이 많아 안정을 찾기 위해 일찍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가장 신랄하게 제 실력을 평해줄 사람 역시 동반자이기 때문에 성악가들에겐 결혼이 중요해요. 주변에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 진짜 잘 하는 줄 알고 거만해질 수 있는데, 동반자가 컨트롤을 해 줘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는 점도 있는 것 같아요.”



■ 바리톤 정승기 “나의 위대한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 칼스루에 국립음대 오페라학교 석사과정을 졸업한 바리톤 정승기는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시립극장 전속 가수 역임 후, 이탈리아 베네치아 라펠리체 극장에서 <라보엠>의 마르첼로, <라트라비아타>의 제르몽으로 데뷔, 유럽에서 7년 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현재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 전속 가수이다.

정씨는 최근 베이스 강병운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국립오페라단의 <돈 카를로>에서 '로드리고'로 출연해 성공적인 국내 데뷔 무대를 가졌다.

-<돈 카를로> 공연 잘 봤다. 타이틀인 돈 카를로 보다 ‘로드리고’로 제목을 정해야 한다는 관객 평도 봤다.
“제가 특별히 잘했다기 보다는 짜증을 잘 내는 ‘카를로’ 보단 ‘로드리고’란 캐릭터가 더 매력적이라 그런 반응이 나왔을거에요.”

-<돈 카를로>에서 2회 무대에 섰는데, 첫날 공연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 공연에 대한 평이 더 좋은 것 같더라.
“오페라가 끝나면 항상 긴장이 되요. 특히 커튼콜 때 박수의 강약이 다 느껴지거든요. 그 분위기로 관객의 감상이 어땠구나가 감이 와요. 제가 느끼기에도 첫날보단 둘째 날 박수소리가 더 좋았어요. 상대 가수와의 눈빛 교감도 둘째 날이 더 좋았구요. 오페라 가수는 박수를 먹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이번 ‘리골레토’ 주역이 막강하다. 바리톤 김동규 박정민 정승기 모두 대단한 가수인 것 같다.
“전 아직 나이가 어려 조심스러운 역할이긴 합니다. 바리톤 가수로선 아기 단계죠. 관객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과연 젊은 리골레토 소리를 이해해줄까. 익숙할까. 이런 생각들이 들어요. 5~10년 뒤에 다시 한다면 보다 성숙된 모습을 각인시켜줄 수 있을텐데요.”

-정승기를 검색하면, 프랑스 파리 ‘툴루즈 국제 성악콩쿠르’, ‘루치아노 파바로티 국제 성악콩쿠르’. ‘퀸 소냐 국제음악콩쿠르’, 스페인 빌바오 성악콩쿠르 등 온통 콩쿠르 관련 기사만 뜨더라
“꼭 상을 타겠다는 생각으로 나간 게 아니라 유학하면서 발전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콩쿠르를 많이 나갔어요. 왜 떨어졌는지 계속 체크하면서 자기 실력도 알게 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도 깨닫게 되거든요. 비디오로 찍어 논 제 영상을 보고 계속 연구했어요.”

-그렇다면 예전부터 노래를 잘 한다고 알려졌던 성악가가 아니었나
“전 고 3때 늦게 성악을 시작했어요. 이번 ‘리골레토’에 출연하시는 김동규 선생님의 독창회와 <라보엠>을 보고 무작정 성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렇게 대학을 들어갔는데, 선생님과 선배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가 되는 사람이 있고 안 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있는데 전 후자라고 했어요. 하지만 전 ‘노래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군대에 가서 성악에 미치게 됐어요. 군악대로 배치 돼 몰아서 연습을 할 수 있었거든요. 매일 매일 연습할 시간만 기다렸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니 제 스스로가 달라져 있었어요.”

-달라진 모습에 주변에서 깜짝 놀랐겠다.
“저의 옛날 모습을 알고 있는 선배나 동기들은 ‘어떻게 네가?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내보였어요. 전 군 제대 시절 내내 하얀 운동화에 ‘나의 위대한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고 써 놓고 다녔어요. 위대한 노래가 불려지면 제 음악 인생이 끝난거잖아요.”

-왜 그렇게 성악이 좋았나
“다른 사람이 다 못 생겼다고 하는 사람을 나 혼자 예쁘다고 말했을 때, 그 게 이유가 있나요? 그냥 좋은거죠. 계속 그것만 생각나고.”

-티토 곱비를 연상시키는 음색이라는 평도 있다
“그렇게 평해 주시는거지, 실제론 똑같지도 않아요. 표현의 왕인 그 분을 좋아합니다. 가수들을 좋아하면 따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 만의 색깔을 찾는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독일과 이태리를 오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이태리 에이전시에도 소속 돼서 독일 칼스루에 극장에서 일정이 비는 날엔 다른 극장으로 가서 공연을 해요. 활동 반경을 넓혀 가고 싶어요. 이번엔 <돈 카를로>랑 <리골레토>로 두 달간 독일 극장을 비우고 있는 거죠. 10월경엔 대구오페라축제 참가작인 칼스루에 극장 팀과 함께 <탄호이저>로 국내 무대에 설 예정입니다. 또 독일에서 무대 경험을 많이 해 한국에 와서 연주해도 당황하지 않고 해 낼 수 있어요. 성악가에겐 끊임없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무대에 많이 서 봤느냐의 여부에 따라 자연스런 연기와 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요.”

-공연 평들은 챙겨보는가
“전 크리틱을 좋아해요. 문외한이 해주는 평도 좋구 전문가가 해주는 평도 다 좋아요. 크리틱을 듣지 않겠다는 건 성장하지 않겠다는 말과 똑같죠. 전 이쪽을 보고 노래하는데, 관객은 다른 쪽에서 절 보고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평은 항상 챙겨봐요. 기자님의 ‘국내 데뷔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도 봤어요.

성악가들에게 독설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스승과 와이프 밖에 없어요. 칼스루에 오페라 학교에서 만난 스승님은 매번 제 공연을 보고 평을 해 주세요. 소프라노 임선애 누나와 같은 제자입니다. 이번 국내 작품은 보지 못하셨는데. 오페라 DVD를 받으면 보여드리려구 해요.”

세 명 성악가들의 히스토리는 각기 달랐지만 공통적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재학시절엔 실력을 뽐내지 않고 있다 나중에 숨겨진 보석이었음이 드러난 점, 두 번째는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는 점이었다. 그들이 10년 후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지 더욱 기대되는 인터뷰였다.

한편 이번 <리골레토>에선 바리톤 김동규 박정민 정승기(리골레토), 테너 박현재 이승묵 신상근(만토바 공작), 소프라노 김희정 박혜진 강혜명(질다), 베이스 김요한 손철호 서정수(스파르푸칠레), 메조소프라노 조미경 백재은 최종현(막달레나), 바리톤 전승현 최기봉 권서경(몬테로네 백작), 바리톤 이두영 윤두현(체프라노 백작), 소프라노 김현정 백윤미(체프라노 부인▪ 조반나), 테너 이옥우 류기열 신지훈(보르샤), 바리톤 정한욱 김준빈(마를로), 소프라노 김아름 김다운(빠지오), 문상현(위병)이 출연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성악가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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