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어랏’, 연예인 숭배 현상을 유쾌하게 풍자하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똑똑하진 않지만, 의지가 강한 ‘아더왕’으로 분한 정준하에게 “우리가 찾던 연예인 아니냐”라는 질문이 떨어졌다. <스팸어랏> 속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올려야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예인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You Won't Succeed on Broadway’가 나오는 장면이다.

그 때 정준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매 시작 5분 만에 <헤드윅> 전 공연을 매진시킨 조승우처럼 티켓파워가 없어서...연예인에 겨우 꽂혀있어”였다. 객석에선 웃음보가 터졌다. 유명 연예인을 향한 뮤지컬계의 러브콜, 연예인이 없으면 안 되는 현 뮤지컬 공연계의 실태를 유쾌하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대 놓고 까발리는 정공법은 관객에게 제대로 먹혀 들었다.

<스팸어랏>은 BBC의 코미디 쇼, ‘몬티 파이톤의 날으는 서커스’의 작가 몬티 파이톤이 영화 ‘몬티 파이톤과 성배를 찾아서 (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

코미디 뮤지컬의 대명사 <스팸어랏>(연출 데이비드 스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객을 웃기는 작품이다. “살려면 적을 알아야 하는 데 아는 적 있어? 술 한잔 하면서 알아 가면 되지” 같은 말이 안 되는 대사가 마구 튀어나온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혀 틀리지 않은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즐비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뮤지컬, 즐기는 만큼 웃는 뮤지컬이 틀림 없었다.

2010년 초연된 <스팸어랏>이 대폭 업그레이드 돼 돌아왔다. 크리에이티브 팀의 재해석을 통해 공연의 변형이 가능한 논-레플리카(Non-Replica) 프로덕션이라 가능한 일이다. 또한 기존 대극장(999석)에서 620석 규모의 중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관객과의 친밀도가 높아졌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각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맞게 대사를 무한변신 할 수 있는 점. 정준하에겐 MBC <무한도전>의 '무한상사' 코너 옷을 입혀 현실 풍자 장면에서 “정리해고 잘 알죠?”란 대사를 던진다. 드라마 속의 드라마를 보는 듯 묘한 재미가 있다.

배우 정준하가 저마다 엉뚱한 면을 가지고 있는 다섯 명의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성배를 찾는 여정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취업을 고민하는 현실과 사회 및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한 패러디와 풍자를 선보인다. 정준하의 바보 같지만 진지한 이미지가 투영 돼 존재감만으로도 웃음을 터트린다.

기존의 브로드웨이 명작들에 대한 존경과 야유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뮤지컬 패러디 장면들에 대한 반응도 좋다. 뮤지컬 '조로',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헤어스프레이', ‘미스 사이공’, '헤드윅', '노틀담의 곱추',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라이온 킹’ 등 세계 유명 뮤지컬을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풍자는 빼놓지 않는다. 숨을 헐떡거리며 수차례 분장을 고치고 의상을 갈아입는 이는 앙상블과 기사들이다. 그들은 편하게 서 있는 아더왕에게 “연예인이 이걸 하고 있겠냐”면서 펀치 한번 날린다. ‘이런 장면에선 이런 노래를 불러야 한다.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같은 뮤지컬의 흥행 공식에 대한 풍자도 한 몫 한다.



<스팸어랏>에서 깨알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이는 랜슬럿 경으로 분한 배우 정상훈과 잭 역의 배우 정철호다. 정상훈이 강하게 휘 몰아치는 유머를 구사한다면, 정철호는 아기자기한 유머로 관객을 미소 짓게 만든다. 강하고 아름다운 디바인 호수의 여인(이영미·신의정)이 정신 줄 놓고 웃기는 개그와 리얼한 표정도 안 보면 서운하다.

뚜렷한 내러티브를 찾는 관객,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 관객이라면 이번 뮤지컬이 조금 짜게 혹은 싱겁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생 뭐 있나요, 웃어봐요. 인생 별 거 없죠, 웃어봐요“라는 가사가 녹아있는 ‘올웨이즈 룩 온 더 브라이트 사이드 오브 라이프’(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를 부르다 보면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식상한 러브스토리나 유치한 코미디 극과는 다른 차원의 재미를 선사하는 뮤지컬 <스팸어랏>은 9월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배우 서영주 정준하(아더왕), 이영미 신의정(호수의 여인), 윤영석 고은성(갈라하드 경), 김호, 정상훈, 이훈진, 정철호, 조형균, 공민섭, 박경동, 윤민우가 출연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OD 뮤지컬]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