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함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창작 뮤지컬의 탄생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오랜만에 음악과 극이 일치되는 창작 뮤지컬을 만났다. 넘버 하나 하나에 캐릭터의 향취과 이야기의 핵심을 담아내 관객의 몸을 자꾸 ‘움찔 움찔’하게 만들었다. 김은영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한 음악은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서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긴장감을 선사했다. 세포를 하나 하나 뜯어내는 ‘스타카토’에 매혹됐고 모세혈관을 이완시키는 저음의 첼로 소리에 내면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곤두박질 쳤다.

분명 지금까지 맛본 창작뮤지컬과는 온도가 다른 차갑고도 미스테리한 뮤지컬이었다. 윤심덕이 사내와 김우진 사이에서 갈등했듯 관객 역시 창작뮤지컬과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라이선스 뮤지컬 사이에서 갈등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서늘하면서도 뜨거움이 공존하는 뮤지컬을 거부하긴 힘들어 보인다.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오페라의 묘미를 뮤지컬에서 느낄 수 있다. 그 결과 작품의 주인공인 ‘윤심덕’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임이 보는 내내 각인되기도 했다. 극 중반 김우진이 베일에 쌓인 사내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그가 오고 있어’라는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장면이 ‘새로운 뮤지컬이 오고 있어’라는 환청으로 들리기도 했다.

성종완이 작 연출을 맡은 뮤지컬 <글루미데이>는 ‘1926년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김우진과 윤심덕의 투신이 단지 불륜에 의한 극단적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랑하는 사이였던 김우진과 윤심덕 사이에 들어온 한 남자, '한명운 혹은 호시노 아카시'라 불리는 ‘사내’는 이름도 나이도 모든 것이 미상이다. 단지 김우진과 윤심덕의 지인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사내’가 극작가 김우진과 성악가 윤심덕 말고도 관객을 기어코 적막한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관부 연락선에 탑승시킨다. 여기서부터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흡인력을 내 뿜는다.



무대는 ‘배’라는 공간으로 상징화시킨 ‘선택의 순간에 놓인 인생’이다. 최종적으로 ‘배 안에서 벌어지는 5시간’안에 관객을 초대했다. 임규양이 디자인한 1층과 2층으로 나눠 진 무대의 활용도도 좋다. 파워게임을 보여주는 조명(나한수)의 활용, 극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는 음향(권지휘)역시 작품의 기둥을 잘 세워주고 있다.

식민지의 고통을 겪고 있는 1926년 조국과 열린 세상의 자유분방함 속에서 매우 혼란스러웠던 두 젊음이 앞에 나타난 ‘사내’는 누구일까? 시대에 대항하여 예술혼을 불태우고자 했던 예술가들 앞에 나타나 ‘창조적인 삶 그리고 생명력’을 외치는 인물이다.

작품을 보는 내내 두 남녀를 쥐고 흔드는 ‘사내’는 작가이자 배우이자 연출가인 성종완의 ‘페르소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 막히고 고루한 조선은 결국 비슷 비슷한 작품이 판 치는 뮤지컬 세계와 다르지 않았으며, 도덕이나 윤리보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윤심덕의 말은 관객의 속마음을 내 비추는 듯 했다.

관객 역시 흥얼거리게 만드는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는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변주되어 사용된다. 이탈리아의 작가 단눈치오의 소설 <죽음의 승리>에 나오는 이폴리타, 영화 <쿼바디스> 모두 작품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이다.



성종완 연출은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글루미데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삶의 태도'다”며 “모두가 죽는다는 정해진 결말 안에 살면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질 것인지를 이야기 하는 작품이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작품은 관객 스스로 각성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또한 연극 <환상동화>에서 예술광대 역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 성종완의 예술 혼이 많이 묻어나왔다.

물론 창작 뮤지컬이니 만큼 드라마적 구성이 완벽하진 않다. 중반 이후로 조금은 극의 긴장이 풀리는 점 역시 아쉽다. 뮤지컬 <쓰릴 미>를 연상시키는 비슷한 구조도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저 하늘에 쓴다. 새로운 결말을’에서 감지할 수 있는 창작자와 배우들의 선택과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극적인 실제 사건과 판타지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결합된 창작뮤지컬 <글루미데이>는 23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에서 공연된다. 이후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화성 반석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배우 윤희석, 김경수, 안유진, 곽선영, 정민, 이규형이 출연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주)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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