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모로우 모닝>, 기분 좋게 진화한 로맨틱 코미디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로맨틱 코미디가 진화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은 기발함을 겸비했다.” tvN의 ‘SNL 코리아’ 김슬기의 뮤지컬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은 <투모로우 모닝> 본 공연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인생의 또 다른 출발선에 선 두 쌍의 남녀이다. 한 쌍은 결혼을 앞둔 30대, 또 다른 한 쌍은 이혼을 앞 둔 40대 중년이다. 이 두 쌍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극장에 들어서자 마자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건 정승호 디자이너가 만든 칠판 재질로 된 네 개의 문이다. 장면 전환은 이 네 개의 문을 통해 진행된다. 각자의 문엔 기억의 흔적과 시간의 흔적이 분필 글씨로 어지럽게 적혀 있다. 번거로운 소품 전환은 따로 없다.

프레스콜에서 이 무대를 보고 의문점이 들었다. “왜 두 커플의 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한 무대에서 펼쳐놨을까?” 의문은 본 공연을 보고 나서 풀렸다. 이 작품은 ‘두 쌍의 커플의 사랑과 인생 이야기’란 탈을 쓰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 쌍의 커플을 입체적으로 무대에 불러낸 뮤지컬이었다. 이니셜을 따르면 ‘CJ 커플’의 현재와 미래의 러브 송 뮤지컬 쯤 되겠다.

먼저 젊은 남녀를 살펴보면, 영화감독이 꿈인 ‘존’과 성공적인 커리어를 꿈꾸는 패션잡지 에디터 ‘캣’이 등장한다. 10년 뒤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접고 보다 현실적인 광고 카피라이터가 된 ‘잭’과 새내기 에디터에서 세계적인 패션지 편집장이 된 ‘캐서린’이 바로 그들의 미래이다. 위트 있는 작가는 ‘존’과 ‘잭’, ‘캣’과 ‘캐서린’처럼, 캐릭터의 이름 역시 비슷하게 설정해 놨다.

주인공들의 출입구 문엔 ‘설명할 수 없다’와 ‘생각한다’라는 문구가 써져있다. 30대의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희망, 40대의 깨져버린 환상과 후회에 대한 상징적인 문구로 읽혀졌다. 하지만 이 문을 들고 나면서 인물들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기억의 파편들을 두 손에 꼭 쥐게 된다. 손에 상처를 남기는 날카로운 유리조각도 분명 있지만 추운 겨울 마음을 덥히게 해 준 따뜻한 추억도 많았을 것이다.



<투모로우 모닝>은 판타지를 걷어내고 ‘진짜 사랑’에 관한 보고서를 펼쳐 보인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우리 사랑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다짐이 그것이다. 당신이 존 주니어의 앙증맞은 신발과 디 카페인 커피에서 뭔가를 보았다면, 아들 아담을 높은 곳에 올라가게 놔두는 아비 잭의 마음이 느껴졌다면 분명 이 작품이 단순한 로맨틱 물은 아님을 확실히 안 것.

영국 뮤지컬계를 이끌어가는 신진 창작자 중 한 명인 로렌스 마크 와이트(Laurence Mark Wythe)가 대본, 음악과 가사 모두를 쓴 이번 작품의 매력은 상당히 다채롭다.

남녀관계의 역학을 이토록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까 싶은 대본과 가사, 적재적소에 나오는 음악의 힘이 크다. 구소영 음악감독의 지휘하에 건반, 플룻, 클라리넷, 알토 섹소폰, 첼로, 기타, 드럼 등의 생 음악이 귀를 감싼다.

성공한 로맨틱 뮤지컬로 평가 받는 <아이 러브 유>보다 여운이 상당히 길다는 점도 강점이다.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귀가 후 가족들을 마주하며 다시금 생각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치밀한 원작에 기발한 무대 디자이너, 생각하는 연출가(이성원), 언어의 감각이 뛰어난 각색가(정영), 사랑스러운 배우들의 손길이 묻어있는 작품이었다.



전반과 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는 EVERYTHING CHANGES(내 인생 달라지겠지) 넘버의 호소력이 좋다. 불안, 설렘, 희망이 가득 찬 ‘결혼’과 후회와 추억으로 점철된 ‘이혼’을 마주한 두 남녀의 내면을 보여주는 넘버이다. 각자 숨겨진 비밀을 발설하는 THE SECRET TANGO(시크릿 탱고)의 리듬감과 안무도 인상적이다.

자격지심을 지닌 중년 남자의 내면을 체화한 배우 박상면의 진정성 있는 연기, 겉보기엔 화려한 커리어우먼이지만, 내면은 결혼의 처절함을 깨달아버린 위기의 주부를 섬세하게 표현한 이혜경의 감정연기가 좋다.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고민은 물론 젊은 남녀의 통통 튀는 매력을 살려낸 김슬기 이창용 커플의 연기 궁합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극장이 좀 더 작은 소극장이었다면 관객과의 밀착감이 높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젊은 관객은 물론 인생 경험이 풍부한 관객 모두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특별하고도 기발한 뮤지컬임은 틀림없다.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일상다반사를 ‘하룻밤’ 이야기로 풀어낸 뮤지컬 <투모로우 모닝>은 9월 1일까지 서울 대치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배우 박상면 박선우 이석준(잭), 최나래 이혜경(캐서린), 송용진 정상윤 이창용(존), 임강희 김슬기(캣)가 출연한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컴퍼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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