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들’ 홍콩영화 리메이크의 아주 좋은 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요새 중국영화들을 수입하는 사람들은 9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세대의 중국영화팬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최근에 수입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블록버스터 국책영화, 옛날 스타들의 출연작 아니면 고전 각색물들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삼국지와 초한지의 각색물을 몇 편이나 보았는지 차마 세지도 못하겠다.

그 와중에 수많은 영화들이 누락된다. 그 중 나에게 가장 아쉬운 것들은 두기봉과 그의 일당이 밀키웨이 이미지에서 만든 일단의 전문가 마초 스릴러들이다. 현대 홍콩의 대도시에서 확고한 프로페셔널리즘을 갖고 다소 수상쩍은 직업에 종사하는 남자들의 이야기. 대부분 이들은 무림고수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과 대립되는 직업을 가진 또다른 프로페셔널인 상대와 대결을 벌인다. 이들은 꾸준히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지만 제대로 극장개봉된 영화들은 많지 않다.

<미션>, <흑사회>와 같은 두기봉 영화의 각본을 썼던 유내해가 2007년 감독 데뷔작으로 만든 스릴러 <천공의 눈>도 이 전통을 따른다. (이 영화 역시 밀키웨이 이미지가 공동 제작했다.) 직업 범죄자인 양가휘 캐릭터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보석상을 턴다. 직업 형사인 임달화는 감시팀을 끌고 그들을 추적한다. 두기봉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영화적 쾌락은 적고 결말은 좀 편리하게 짜여진 것 같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한국영화가 <감시자들>이다. 이 계획 자체가 많이 수상쩍어 보인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한국에서 홍콩 영화를 모방하거나 리메이크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는데, 대부분 이들이 모방과 리메이크 과정 중 가장 불건전한 부분에만 집착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남성성, 불필요한 감상주의, 영혼 없는 스타일의 모방. <감시자들>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갈 위험은 충분했다.



그런데 정작 결과물은 예상 외로 나왔다. 모든 면에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시자들>은 여러 면에서 원작을 가뿐하게 넘어서는 영화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철저한 계산을 통해 정확히 리메이크 포인트를 잡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오리지널 영화에서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배웠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버려야 할 것을 제대로 배웠다는 것이다. 우선 이 영화에서는 감상주의가 거의 없고 남성성의 과시도 마찬가지로 제어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두기봉 류 밀키웨이 영화의 리메이크에서 남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두기봉과 일당들의 영화에서 이 둘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들이 뿌리를 두고있는 8,90년대 홍콩영화의 감성에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감상적인 남자들 이야기이긴 한데, 그 때와는 다르게 그리려는 영화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런 리메이크 과정에서는 그 과정을 고려해서 둘은 절제하는 것이 좋은데, 이 영화의 각본은 정확하게 그 위험을 피해갔다.

영화는 이들을 과감하게 버린다. 원작에 남아있는 애수 어린 중년 남자들은 완전히 사라진다. 설경구와 정우성의 캐릭터는 임달화나 양가휘와 비슷한 일을 하긴 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의 다른 사람이다. 그 때문에 비교적 충실한 각색(심지어 원작을 보지 않고서도 밀키웨이 단골 배우 임설의 캐릭터가 누구였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재미나 인상은 전혀 다르다. 그대로 따라했다면 어쩔 수 없이 질 수밖에 없었던 대결을 처음부터 피했던 것이다.



영화는 원작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극대화한다. 심지어 몇몇 장면들은 리메이크의 풍부한 러닝타임 안에서 더 꼼꼼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이야기는 더 이치에 맞고 더 노련하며 더 넓은 캔버스에서 움직인다. 그러는 동안 원작에서는 없었던 아이디어와 장면들이 들어가는데, 재미있게도 이들 중 몇 개는 원작보다 더 밀키웨이스럽다. 특히 한효주가 정우성을... 흠,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되겠다.

내용만 보면 다들 비슷비슷한 밀키웨이 영화들 중 <천공의 눈>을 택한 것도 올바른 선택처럼 보인다. 일단 두기봉과 대결하는 것보다야 유내해와 대결하는 게 낫다. 이야기만 택해 자신만의 스타일만을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중후반의 총격전은 그 빈자리를 채우는 작업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예다.

가장 큰 장점은 이 영화가 여자주인공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주는 몇 안 되는 밀키웨이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는 원작에서 서자산이 맡았던 역할을 심지어 더 크게 늘려서 한효주에게 준다. 그러면서도 원작의 스토리를 따라 주인공에게 불필요한 러브 라인 따위는 주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한다. 그 결과 영화 내내 딴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고, 괜히 여자주인공이나 '여전사'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며 그 안에서 노련한 프로페셔널로 성장하는 여자주인공이 만들어진다. 밀키웨이 영화를 모방하고 장단점을 충실하게 공부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영역에서 벗어난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며 겹치는 부분에서도 과감하게 능가하는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영화가 오프닝 크레딧에서 원작 소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제작사가 만든 리메이크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때도 걸렸던 문제이다. 물론 제작사의 걱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홍보에 적극 소개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프닝 크레딧에서 이를 밝히는 것은 당연한 예의가 아닐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감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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