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발레의 힘을 보여 준 무용수 이현준-강미선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드라마 발레 <오네긴>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1막과 3막에서 선보이는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2인무이다. 고난이도의 리프트와 격렬한 파트너링으로 이루어진 남녀 주인공의 파드되(Pas de Deux)다. 1막의 꿈 속 파드되가 오네긴을 사랑하는 타티아나의 춤에 더 비중이 쏠린다면 3막은 타티아나를 사랑하는 오네긴의 내면에 더 무게 중심을 둔다. 맞다. <오네긴>은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긋난 사랑의 타이밍은 극 내내 관객의 내면을 건드린다. 2막에서 오네긴은 타티아나에게서 건네받은 러브레터를 조각 조각 찢어 타티아나의 손에 다시 쥐어준다. 이어 3막에선 다른 사람의 부인이 된 타티아나가 중년 신사 오네긴이 건넨 편지를 찢는다.

발레 한 편을 보고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있는 감수성이 남아있다면 이건 무용수의 공일까? 아니면 관객의 집중력 차이일까?

지난 12일 강미선(타티아나) 이현준(오네긴)의 공연을 보면서 느낀 건 ‘관객을 집중 시킬 수 있는 무용수의 치밀한 감정선과 테크닉이 관객의 메마른 감정의 둑을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였다.

주역 무용수의 색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은 마지막 3막. 그 어떤 타티아나도 엇갈린 사랑 앞에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거릴 수 있고, 그 어떤 오네긴도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을 수 있다. 그런데 관객의 반응은 같지 않다. 같은 제목의 <오네긴>일지라도 공연의 막이 내린 뒤 그냥 박수만 치고 자리를 뜨거나, 박수칠 힘도 없이 하염 없이 무대를 바라보게 되니 말이다. 12일 공연은 후자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유니버설 발레단 <오네긴>이 7월 6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됐다. 8일 공연(서희 로베르토 볼레)과 12일 공연을 두 차례 관람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 이태리 라 스칼라 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최고무용수)이자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무용수 ‘로베르토 볼레(Roberto Bolle)’ 무대는 중력을 무시한 듯 상대를 솜털처럼 가볍게 들어올리는 리프트 실력이 탄성을 자아냈다. 서희 역시 1막의 파드되에서 환상적인 테크닉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또한 인물의 순수함과 환희, 고통과 회환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설득력 있는 타티아나를 선 보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볼레가 분한 ‘오네긴’은 복잡 미묘한 나쁜 남자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우아한 귀족에 가까웠다. 그 결과 마지막 3막의 여운이 길지 않았다는 점.

반면 미국 털사발레단 입단 후 6개월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 첫 컴백 무대를 가진 이현준 ‘오네긴’은 타티아나를 애끓게 만드는 감정, 관객의 애간장을 녹이는 호흡, 마지막 오네긴의 뒤늦은 깨달음과 애타는 마음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채 객석을 사로잡았다.

관객의 눈이 발끝으로만 향하게 하지 않고 온 몸을 바라보게 한 점 역시 박수치게 만들었다.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이 그의 영혼과 만나는 순간 무대 위에서 ‘팔딱 팔딱’ 살아 움직였다. 숙련된 테크닉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오네긴’이었다. 이현준은 “오네긴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오네긴의 감정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나가고 싶다”란 바람을 밝혔는데, 그의 바람처럼 상대를 배려하면서 드라마의 핵심을 잘 짚어낸 점이 인상적인 무용수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강미선이 선보인 ‘타티아나’는 반짝이는 눈빛부터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입술, 팔, 발끝까지 내면 연기가 일품이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 타티아나’에서부터 실연의 아픔을 넘어선 성숙한 ‘여인 타티아나’로의 변화까지 모두 설득력 있었다. 특히 뒤 늦게 찾아온 첫 사랑 앞에서, 절규하는 한 여인의 아우라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다. 이현준-강미선이 만들어내는 장면 하나 하나는 유명 영화 장면처럼 하나 하나 각인되는 점 역시 매혹적이었다.

또한 강미선이 2013<오네긴>에서 가장 많은 총 4회 공연을 책임진 이유 역시 알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올가 역의 김나은 이용정의 한층 성숙해진 뛰어난 기량 역시 칭찬 하지 않을 수 없다.

발레 <오네긴>은 19세기 러시아 문호 푸쉬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안무가 존 크랑코의 1965년작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더해져 20세기 드라마 발레의 정수로 꼽힌다.

2009년, 유니버설발레단은 국내 발레단으로서는 최초로 공연권을 획득하여 <오네긴>을 공연했다. 2009년과 11년(재공연)에는 녹음 음악으로 공연을 했다면 이번에는 러시아 볼쇼이극장의 지휘자 ‘미하일 그라노프스키(Mikail Granovsky)’가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더욱 풍부하고 생생한 음악을 선보였다.

<오네긴>의 또 다른 주역으론 황혜민-엄재용 커플, 새로운 오네긴으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른 이동탁이 나섰다. 또한 수석무용수 강예나의 고별무대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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