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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설치고, 영화 <스파이>는 잘 안되고
기사입력 :[ 2013-09-22 10:23 ]


웃기는 <스파이>, 흥행 부진한 진짜 이유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이 영화는] 가뜩이나 6자회담을 앞두고 극도로 긴장 상태인데 북한측 물밑 협상 주역이 탄 전용 비행기가 남한으로 향하던 중 누군 가가 쏜 스팅허 미사일에 격추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북한 VIP는 남북간 전면 개방, 곧 통일에 대한 계획을 진행하던 중요 인물이었다. 훈풍이 불던 한반도가 다시 급격하게 얼어 붙게 될 위기에 빠진 것이다. 비서실장은 당장 6자회담을 연기해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한다. 대통령(송재호)은 화나고 불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소리친다. “6자회담 연기는 절대로 안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실장의 거듭된 요구에 대통령은 확 짜증을 부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 그러니까, 세진기업 가동하세요!” 세진기업은 국정원이 가장 중요한 첩보공작과 그 임무 완수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비밀 조직이다.

한국 첩보원들의 활약을 포복절도하게 그린 코믹액션 영화 <스파이>는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한다. 일단,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것과 동시에 재미있다는 것이다. 당초 이 영화의 기획은 코미디보다는 다분히 정통의 첩보 스릴러 쪽에 무게를 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도 <미스터 K>였으며 연출은 이명세 감독이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조기에 감독을 교체했다. 그리고 <퀵>을 만들었던 이승준 감독에게 메가폰이 돌아갔다. 제목도 그때 <스파이>로 바뀌었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난항이 있었던 만큼 작품 만듦새가 들쑥날쑥하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깔끔한 웰 메이드 상업영화로 나왔다. 특출한 능력의 첩보원인 철수(설경구)가 태국에 급파돼 한반도 상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과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는 철없는 아내 영희(문소리)와 우연찮게 그 위험한 현장에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극을 영리하게 잘 엮어 냈다. 영화는 액션과 코미디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리듬과 호흡이 아주 좋다. 긴박한 순간에 웃을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계속해서 이어 나간다. 시나리오가 좋고 씬과 씬, 시퀀스와 시퀀스의 연결 및 그 구성 능력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첩보영화의 핵심인 서스펜스의 상황을, 폭소를 터뜨릴 만한 이야기 중간중간에 배치하거나 혹은 그 둘을 아예 뒤섞어 버린다. 그 요리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태국의 유명 레스토랑 ‘블루 엘리펀트’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액션 씬이 특히 그렇다. 중국, 일본 등 각국의 스파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 들어 북한의 핵물리학자이자 살해당한 VIP의 딸이기도 한 백설희(한예리)를 차지하려고 서로간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총격 씬을 벌인다. 거기에 대책없는 마누라 영희가 중간에 끼어 주인공 철수를 오도가도 못하게 만든다. 이런 장면은 알고 보면 난이도가 매우 높은 촬영이다.

<스파이>가 놀라게 하는 점 또 하나는 영화가 꽤나 ‘글로벌’하다는 것이며 그게 그렇게 어설프지가 않다는 것이다. 줄곧 태국과 한국을 오가며 ‘값비싼’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야기의 상황 설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6자회담 등 남북한간의 예민한 정치적 현안을 과감히 채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등 우리와 우호적 관계인 것처럼 보이는 국가들이 핵문제에 관한 한 극히 자국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것, 무엇보다 군산복합체를 이끄는 다국적 기업의 야욕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에 있어 북한보다 더 위험한 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영화 <스파이>는 그런 면에서 국내 첩보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다. 한편으로 영화는 이런 류의 영화가 빠지기 쉬운 국가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앞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올바른 정치관을 보이려고 애쓰며 그걸 코믹하게 보여주려 한다. 영화 속에서 세진기업 사장(정인기)이나 실장(고창석), 심지어 철수조차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금 나라가 위험에 처했는데 뭣들 하는 짓이야?!” 그러나 그들은 곧 간이 영수증을 5만 원짜리까지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 거리며 언제 자신들이 투철한 국가관 따위를 운운했느냐는 듯 스스로를 비웃는다. 사람들, 스파이들 조차도 진정한 나라사랑의 기준은 업무 진행비 5만 원을 맘 편하게 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영화는 비아냥댄다.

그런데 영화의 흥행 속도가 왜 이리 늦을까. 영화가 이 정도쯤으로 잘 만들어지고 재미까지 있으면 요즘 같아서는 단박에 3백만, 4백만 고지를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파이>는 그러지를 못한다. 개봉 3주 차에 250만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이 정도 흥행추세도 추석연휴의 도움이 컸다. 왜 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창성의 문제다. 영화는 오밀조밀하게 새로운 재미를 잔뜩 늘어놓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어디 선가 많이 본 밥상이다. 멀게는 아놀드 슈왈츠네거와 제이미 리 커티스가 나왔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1994년작 <트루 라이즈>와 빼다 박을 만큼 닮았다. 국가 최고의 기밀요원과 그의 철모르는 아내라는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데다 <스파이>의 고창석 캐릭터마저 <트루 라이즈>에서 슈왈츠네거의 동료 역을 맡았던 톰 아놀드 역과 흡사하다.



<스파이>는 여기에다 비교적 최신작인 <레드2>의 상황 설정마저 덧입힌다. 한 마디로 <스파이>는 아무리 새로운 얘기를 가미했다 스스로 주장한다 해도 할리우드 유명 코믹액션의 과거와 현재 작품을 ‘짬뽕한 것’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평단의 지적 이전에 요즘의 관객들은 먼저 알아챈다. 너무 잘 알아챈다. 관객들은 독창적인 작품에 가장 많이 끌린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외면한다. <스파이>는 바로 그 점에서 인기몰이에 애당초 한계가 있던 작품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파이>의 흥행이 더딘 것은 작금의 국정원 사태 때문일 수도 있다. 국정원은 현재 상당 수 정치사회적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고 또 추궁받고 있다. 국정원이 주도하고 계획했다고 여겨지는 사건들이 온 나라를 도배하고 있다. 사람들이 짜증을 내는 수준이다. 일부 어떤 사람들은 국정원 첩보원들을 기껏 댓글에나 동원되는 사람들쯤으로 생각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광석화처럼 날고 기는 무술 기량을 선보이고, 거기에 인간적인 면모까지 가진데다가,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이고 공평무사한, 영화 속 국가 스파이의 모습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이건 가짜야, 우리 나라엔 이런 첩보원이 없어, 이건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들 할 것이다.

현재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게 한가지가 않은 것이다. 스파이 코미디 영화를 즐길 만큼 여유롭지가 않은 것이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해야 할 실제 첩보조직이 아예 음지에서 나와 양지에서 설치며 사람들에게 현실감을 주는데 그 어떤 허구와 가상의 스파이 영화가 먹히겠는가. 영화 <스파이>로서는 불운이다. 대박 흥행 꿈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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