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열린 창, 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가 10월 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7개국 21단체, 19개 작품(해외초청작 9편, 국내초청작 10편)을 만나볼 수 있다. 국내 무대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프랑스 초현실주의 연극과 부조리극, 표현주의적인 퍼포먼스, 미국의 멀티미디어 연극 뿐 아니라 격렬한 춤으로 승부하는 거장의 무용 작품들이 초청됐다.

■ 놓칠 수 없는 개막작과 폐막작

개막작인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Victor ou les enfants au pouvoir)(2~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프랑스 문화계의 거장이자 프랑스 문화예술계의 아이콘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가 연출한 작품. 내용을 살펴보면, 신장이 무려 180이 넘는 9살 소년 빅토르가 자신의 생일에 6살 소녀 에스테르를 초대해 자기 아버지의 불륜을 연극놀이를 통해 폭로하고 파티를 카오스로 만든다. 창작 후 80여 년이 지났지만,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가족, 교육, 사회에 대한 현실 인식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섬뜩한 반향을 일으킨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이자 칼 라거펠트와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인 엘로디 부셰가 남편의 불륜에 배신당한 엄마로 출연한다. 무대미술가 이브 콜레(Yves Collet)의 냉혹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주목할 것. 무대 중앙의 삼면의 벽체가 인물들을 향해 좁혀지면서 숨 막히고 옥죄는 분위기를 표현한다. 초현실적인 공간인 무대 전면의 웅덩이와 파국에 다가서며 무대 위에 드리워지는 거대한 세 구의 나무들은 장중하고, 비극적이면서 아름답다. 이번 한국 공연을 위해서 14m 길이의 대형 컨테이너 3대 분량의 세트를 직접 프랑스로부터 공수해온다.

폐막작 <왓 더 바디 더즈 낫 리멤버>(What the body does not remember) (25~2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연극성과 제스처가 춤의 코드에 내재되어 있고 항상 몸, 마음 그리고 사회나 세계와의 복잡한 관계에 관심을 지닌 빔 반데키부스(Wim Vandekeybus)의 1987년 데뷔작으로 당시 세계 무용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

인간의 육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확인할 수 있는 무용극이다. 9명의 무용수들이 무대를 가로지르고, 뒹굴고, 서로를 뛰어 넘는다. 서로의 팔을 잡았다가 이내 밀쳐내고 거칠게, 그리고 원초적으로 서로를 통과한다. 마치 전쟁터라도 되는 듯 머리위로 떨어지는 블록들은 무용수가 경로에서 벗어나기 전, 거의 머리위로 떨어지려 한다. 극한의 한계와 통제되지 않은 ‘아드레날린의 안무’이다. 작곡가 티어리 드 메이(Thierry De Mey), 피터 베르미어쉬(Peter Vermeersch)와의 공동 작업으로 ‘춤과 음악의 잔인한 대결’로도 불린다. 인간의 신체에 중심을 두고 남자와 여자, 지성과 본능의 긴장, 사람과 동물, 질서와 혼돈이 공존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전 세계 현대 연극의 중심을 확인하다.

<손택: 다시 태어나다(SONTAG: REBORN)>(3~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 칭송받는 20세기 지성의 아이콘,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동명 자서전을 그녀의 아들인 데이빗 리프(David Reiff)가 각색한 작품. 미국 현대연극의 중심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다.

시적인 비디오와 사운드로 명성이 높은 빌더스 어쏘시에이션의 공연답게 시종일관 무대 위 등장인물과 영상의 상호작용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한편, 극단 파이브 레즈비안 브라더즈(Five Lesbian Brothers troupe)의 리더로 유명한 모에 앵겔로스(Moe Angelos)는 무대 위의 20대 손택과 영상 속의 학자 손택을 절묘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낸다.

일본 연극계 거장 스즈키 다다시가 이끄는 도가 스즈키 컴퍼니의<리어왕>(8~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번 공연은 베세토연극제에서 1994년 공연된 <리어왕>의 20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새로운 한일 합작 버전이다. 2008년 <엘렉트라>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한일 합작 무대로, 이번 공연은 SPAF 무대에 이어 오는 12월에는 일본 동경의 기치조지씨어터에서 공연된다.



폴란드 신예 연출가 이벨리나 마르치니악의 옴니버스극 <크라임>(23~2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서 추앙받는 비톨트 곰브로비치(Witold Gombrowicz)의 두 단편 <계획 범죄(Premeditated Crime)>와 <코스모스(Cosmos)>를 결합하여 만든 작품.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서서히 커져가는 의혹과 드러나는 가족 간의 부조리 속에 드러나는 숨 막히는 결정적 진실이 관극 포인트.

심장마비로 사망한 가장을 죽인 범인은 아내인가, 딸인가, 아들인가, 아니면 어머니인가, 오빠인가, 여동생인가. 무대 위에서 진술되는 사건의 내용들이 형사의 심문에 답하는 내용인지 유사한 사건의 신문 보도인지 모호한 가운데, 관객들은 혼돈스러운 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 뭔가를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족이란 체계는 고문과 고통의 근원임이 드러난다.

한중일 3개국 공동 프로젝트 <축언(祝/言)>(25~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아오모리현립미술관의 공연예술총감독인 하세가와 고지(長谷川孝治)를 중심으로 동일본 대지진 이전과 이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을 무대 위에 드러냄으로써 한중일의 미래와 예술인으로서의 사명을 이야기하는 작품. 갑자기 습격하는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그 이후의 어둠과 고요함을 담고 있다. 앙상블 시나위, 정영두, 극단 골목길이 참여한다.



■ 헤어나올 수 없는 무용의 ‘소용돌이’

제롬 벨(Jérô̂me Bel),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 크리스티앙 리조(Christian Rizzo)와 함께 세계 현대무용계를 이끌고 있는 프랑스 현대무용 최고의 안무가 4인방 중 하나인 라시드 우람단은. 무용 ‘스푸마토’(12∼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선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인 회화기법 ‘스푸마토’에서 영감을 얻어 ‘라인이나 윤곽 없는 연기처럼’ 몸의 경계를 희석시키는 작품이자, 기후난민에 대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룬 댄스-다큐멘터리이다. 몸의 경계를 희석시키고, 8분간 무대 위로 쏟아지는 폭우 는 숙련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함께 형태 없는 연기처럼, ‘스푸마토’ 기법처럼 하나가 된다.

프랑스 연출가 피아 메나르의 총체극 <푄의 오후>(19∼2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와 <소용돌이(Vortex)>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 받고 싶은 관객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드뷔시(Claude Debussy)의 음악인 <목신의 오후(Afternoon of a faune)>, <바람과 바다의 대화(Dialogue of the wind and the sea)> 등을 사용한 <푄의 오후>는 회전하는 바람과 일상적인 오브제를 사용하여 만든 시리즈로 5세 관객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컬러풀한 비닐봉투가 예상하지 못한 환상의 세계로 데려다 주는 점이 매력 포인트. (작품 제목의 푄(Foehn)은 산악지대에 부는 더운 바람을 뜻하는 말로, 목신(Faune)과의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한 언어유희이다.)

■ 국내 예술가들을 조화롭게 조명한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작가 김정숙 연출 권호성)(3∼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조선시대 아녀자들의 거처였던 규방을 극중 시공간으로 설정하여, 규방 특유의 젠더문화를 형상화한 작품. 숙영과 선군의 애틋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규방여인들의 일상풍경과 교차시키며, 하룻밤 사이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전통시가(詩歌)와 춤, 불경독송, 놀이 등으로 풀어냈다. 2013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작으로 선보여 호평 받은 작품이다.

극단 성북동 비둘기 김현탁 연출가의 연극 <메디아 온 미디어>(11∼14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 비극 ‘메디아’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해체와 재구성의 에너지 넘치는 문법과 연극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의 비극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란 질문을 던진다.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연극 <인생>(작 연출 김민정)(6∼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조선의 독립과 혁명운동에 가담하여 굴곡진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박헌영에 관한 공연으로 일제강점기 역사의 부름에 응한 혁명가들을 조명한다. 끝없는 유배, 고문으로 망가진 인간성, 거짓과 진실의 소용돌이 속에서 쓸쓸히 사라졌던 혁명가들의 최후를 무대 위에 불러낸다.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기 전, 그들의 최후를 바라보며 모든 회한을 풀고 가는 바로 그 여정을 함께 하려는 작품이다.

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스튜디오 반) <달집>(작가 노경식 연출 김수진)(21∼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대지와 함께 씩씩하게 살아가는 노파. 그 모습을 통해 바라본 “삶”이다.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 속에서 집과 밭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무용작품에서는 30대 안무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해경&이즈음 무용단이 제작한 무용 <꼭두질(puppet show 2013)>(8∼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우리의 고전인 심청전의 스토리 라인을 주도하는 인물을 천사와 악마로 가정하여 만든 작품이다. 내 머릿속의 천사&악마라는 존재를 해체하고 분석하여 구체화시키지만 그들의 존재에 대한 기준 또한 모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사회의 현실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들은 하나라는 생각으로 작품이 마무리 된다.



콜렉티브 A (Collective A) 안무가 차진엽의 <로튼 애플>(Rotten Apple)(17~2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사과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상징과 이야기적 가치를 모티브로 하여 인간에게 내재된 초현실적인 상상과 잠재적 욕망을 공감각적인 언어로 탐구한다. 관객의 유동적인 패턴 또한 공연의 일부가 되는 댄스 퍼포먼스 전시(Exhibiting site-responsive dance performance)이다.

이외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안무가 김보람의 <인간의 리듬>(8∼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윤푸름 프로젝트 그룹의 무용 <존재의 전이>(8∼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LDP 무용단 안무가 신창호의 <몸의 탐구>(15~1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단체 수미&성임의 안무가 장수미 허성임의 <필리아>(18~19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등을 만날 수 있다.

국제공연예술전문가 심포지엄도 개최된다. 올해는 프랑스 파리 ‘떼아트르 드 라 빌(Théâtre de la ville)’과 파리가을축제의 예술감독 엠마뉴엘 드마르씨-모타(Emmanuel Demarcy-Mota)와 미국 뉴욕 ‘빌더스 어쏘시에이션(The Builders Association)’의 연출가 겸 예술감독 마리안 윔즈(Marianne Weems)를 초빙하여 10월 4일과 5일, 이틀간 대학로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해외 주요무대 진출, 해외 극장 프로그래밍 전략, 멀티미디어 연극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논의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한국공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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