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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삼거리에서 ‘오이디푸스’가 남긴 발자국
기사입력 :[ 2013-10-19 15:15 ]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3대왕인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피해 태어나자마자 발에 꼬챙이를 꿰여 산에 버려졌다. 그 후 코린토스의 폴뤼보스 왕의 양자로 길러졌지만 불운한 신탁을 피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삼거리’를 지나 결국 테베에 다다른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위험에 처한 테베를 구하고 왕이 되어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 자식까지 낳는다. 신의 게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그 저주대로 되고 만 것.

2011년 초연된 극단 죽도록 달린다 서재형 연출의 <더 코러스(The Chorus); 오이디푸스>에서 가장 귀를 사로잡은 단어는 ‘삼거리’였다. 2500년 전 쓰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작품을 언급할 땐, ‘인생의 갈림길’ 내지는 ‘운명의 세 갈래길’ 이란 설명이 덧붙여졌다. 하지만 이번엔 ‘운명의 삼거리’이다. 작품은 무대에 자리한 세 개의 문을 열고 닫으면서 홀로 길을 걷는 오이디푸스 운명과 진실을 생생하게 펼쳐놨다. 또한 음악극의 마지막 넘버는 ‘당신의 삼거리’로 끝내고 있다.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한태숙 연출의 <오이디푸스>에선 바닥에 ‘사람 인(人)’자 형상을 그려 가혹한 운명의 갈림길을 상징적으로 불러낸 바 있다. 그 작품이 시각적인 전율을 불러왔다면, 서 연출의 작품은 보다 청각적인 전율을 불러왔다. 코러스들이 부르는 ‘삼거리’란 단어에서 오는 소리와 리듬, 그 질감 만으로도 고전 속에 박재된 인물이 아닌 현재진행형 오이디푸스가 눈앞에 그려지지 않은가.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에서 가장 깊은 잔상을 남기는 장면은 새의 움직임과 소리를 인간의 몸으로 온전히 표현해 낸 장면도,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알을 찌르자 붉은 색 천이 사방에서 떨어져 객석에 피가 솟구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장면도 아니다.

연극의 막이 내린 뒤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 처럼 남아있는 장면은 오이디푸스 역 배우 박해수가 밧줄로 묶여진 자신의 발을 잘라낼 수도, 그렇다고 자신의 발(운명)로 인정할 수도 없어 발버둥치던 장면이다. 그 옆에는 바닥에 누워서 부은 한쪽 발을 허공에 미동 없이 올려놓고 있는 코러스가 있었다.



이 한 장면에서 ‘나는 살았고...그들을 사랑했고...그래서 고통스러웠다’는 의미가 전달됐다. ‘나는 누구인가’그리고 ‘이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군중 속(객석)으로 걸어들어가는 오이디푸스의 뒷모습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코러스들과 함께 호흡한 300여명의 관객들은 이 모든 걸 지켜보는 목격자가 됐다.

서재형 연출은 “‘발’이 곧 오이디푸스이자, 인간 자유의지의 상징이다.”며 “오이디푸스가 선택이라고 믿고 걸어온 길 위에서의 ‘발’, 특히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발’로 떠나게 되는 것이 곧 인간의지의 출발이기에 마지막 장면까지 어떻게 통일감 있게 ‘발’의 이미지를 이어가느냐가 중요했다”고 전했다.

연출의 말대로 태어나자마자 복사뼈에 쇠목이 박히고 밧줄로 발목이 묶인 채 버려지게 된 오이디푸스에게 ‘발’은 벗어날 수 없는 ‘밧줄’과 함께 따라다니게 된다. 연극 속에서 이 ‘밧줄’을 꽈리를 틀면 갓난 아이가 되고, 풀면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채찍으로 둔갑하는 식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끈은 오이디푸스 발을 칭칭 동여맨다. 현장을 함께한 관객의 ‘발’은 과연 어디에 발을 담그게 될까.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는 흰옷을 입은 15명의 배우와 20여개의 나무의자, 4대의 피아노 만으로 모든 장면을 완성됐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암시하고 문제의 단초를 주는 코러스가 극을 끌어가는 음악극이다. 특히, 음악이 극이 일부가 아닌 음악이 극을 이끌어간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 아름 작가가 구어(口語)로 다듬어낸 대사, TIMF 앙상블 예술감독인 최우정과 한지원이 작곡한 오이디푸스의 테마, 갈림길 테마, 운명의 테마, 이오카스테의 테마 등은 극 전체로 잘 어우러져 사운드 자체가 극의 모티브와 사건과 연결됐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 다시 한 번 ‘오이디푸스’ 역을 맡은 박해수는 ‘더 이상의 적역은 없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새로운 코러스 장으로 합류한 배우 박인배는 인간의 숙명 앞에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다부진 발성으로 무게 중심을 잡아 호평을 받았다. 이오카스테 임강희, 크레온 이갑선,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 임철수, 라이오스 왕 김선표, 테레시아스 박지희 김준오 등 모든 배우가 타이틀 롤인 ‘코러스’ 역을 톡톡히 해냈다. 20일까지 LG아트센터.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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