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할배’, 단기 화젯거리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작년 여름과 함께 시작된 tvN <꽃보다 할배>는 현상이었다. KBS에서 건너간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는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 부흥하며 실험적인 예능으로 화답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캐스팅은 새로운 예능의 장을 열었다. 그 누구도 예능의 주인공으로 생각지 않은 ‘선생님’급 배우들을 모시고 떠난 배낭여행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그림이었다. 단 하나의 차이는 새로움을 만들었다.

두 번의 여행과 한 번의 번외 편을 거쳐 이제 벌써 4번째다. 여전히 잘나가고 있다. 평균 시청률 7.4%, 최고 시청률 8.9%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케이블의 한계는 첫 번째 여행에서 이미 넘어섰다. 그런데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방송 전후로 기대한다는 글이나 방송후기가 쏟아지던 지난여름의 열광적인 분위기가 사라졌다. 직전 시즌이었던 <꽃보다 누나> 때보다도 뉴스, 게시판, 실시간 검색어 등등에서 체감되는 노출이 줄었다.

사실, ‘재밌다’ ‘따뜻하다’ ‘감동이 있다’ 이런 말 이외에 이번 스페인 편에서 뭐라 말할 거리를 찾기 힘들다. 뉴스거리가 없는 것이 비평이 줄어든 주요 이유일 것이다. 캐릭터는 이미 자리 잡았고, 어려운 할배들을 잘 모시고 얼마나 무리 없이 여행하느냐의 미션을 긴장감 있게 주조하는 스토리라인도 익숙하다.

그래서 할배들 간에 싸움을 내세우지 않는 한 갈등구조도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접을 받고 지내는 분들이 배낭을 메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런저런 관광지를 둘러보는 그야말로 이국적인 모습도 이제는 일상적이다. 긴 세월 함께 지내면서 각자 아무런 말없이 있어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묻어나고, 눈만 봐도 우정의 깊이를 서로 알 수 있는 함께하는 낭만 또한 원래 항상 있었던 공기처럼 당연시된다. 제작진은 <꽃보다 누나>와 비교하며 할배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하지만 ‘남자는 그런 게 필요없잖아.’라고 말한 백일섭의 말대로 재회의 기쁨이나 우정을 낯간지럽게 그림으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번 스페인편이 예전만큼 이야기가 되지 않는 건 이미 다 봤던 경험 때문이다. 할배들의 여행을 지켜보는 재미는 새로움이 아닌 반가움의 영역이다.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것은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원천기술이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프로그램의 단단한 정서를 뒷받침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꽃보다 할배>는 로망의 예능이다. 중년들은 할배들의 여행을 지켜보면서 청춘의 용기를 얻고, 청춘들은 박근형의 청년 정신, 이순재의 책임감과 열정 등등 인생 대선배들의 한 마디를 통해 인생의 길을 안내받는다. 요즘 같이 삭막한 세상에 좀처럼 만나기 힘든 어른의 존재를 웃으면서 마주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제와 새삼스럽게 가타부타하기 어려운 것이다.

할배들의 여행을 지겹지 않게 만드는 건 역시나 제작진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이다. 이번 여행에서 제작진은 이서진의 비중을 훨씬 더 키웠다. 우선 빈자리를 만들었다. 이서진을 일부러 늦게 합류하도록 조정해 할배들끼리 헤쳐나가는 새로운 상황을 연출했다. 여기서 이순재의 책임의식과 열정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이 할배들의 여행에 관심을 가졌다. 이서진이 합류해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자 방송도 본궤도에 진입했다.

그는 짐꾼이라기보다 제작진과 출연자의 중간자적인 입장에 선 독특한 입장이다. 출연자로 역할도 따로 있지만 제작진과 이서진은 할배들을 편안히 모셔야 하는 공통의 미션이 있다. 이제 몇 차례 여행을 함께한 사이가 되니 나영석 PD와 티격태격하는 걸 넘어 할배들을 볼모로 제작진을 아예 자신의 수하로 삼기도 한다. 제작진도 당연히 가만있지 않는다. 할배들을 깍듯하게 모시다가 제작진이 있는 방에만 가면 껄렁해지는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해서 보여주고 씻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그를 쫓아다닌다.



이서진은 컴퓨터 게임에서 권장하는 시점(카메라뷰)이 있듯이 제작진이 <꽃보다 할배>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도록 고안한 시점이다. 제작진은 3인칭시점의 게임을 즐기듯 이서진의 뒤를 바짝 쫓아다니며 깐족거리면서 웃음을 만든다. 짐꾼의 의무 중 하나가 어르신들 즐겁게 해드리는 거라고 자꾸 유머를 재촉하고, 요리 문외한인 VJ와 작가와 장을 보러 나가자 ‘참 좋은 요리왕 나가신다’라는 자막을 써서 희화화한다.

마트에서 상추와 배추의 논쟁을 꼼꼼하게 그려내 이서진에 동의하지 않는 VJ의 의도를 자막으로 읽어준다. 그렇게 웃음을 지으며 따라가다가 할배들을 위한 이서진의 진심어린 마음가짐을 드러낸다. 길가다 멈춘 할배들의 모습을 ‘미어캣’으로 표현하듯이 이서진의 존재는 별것 아닌 것으로도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예능 최고의 스토리텔러들이 이 프로그램을 지켜보게 만드는 장치다.

새롭고 신선한 것이 익숙해지고 일상적이 되면 번뜩임에 대한 찬사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꽃보다 할배>의 시작은 센세이션이었지만 그 환호가 잦아든 지금 더 큰 것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사소하고 잔잔한 이야기에 천착한다. 제작진은 이슈와 화젯거리를 만들기보다 지속 가능한 포맷으로 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는 듯하다. 할배들과 이서진과 그들의 여행을 지켜보는 우리. 함께하는 낭만은 할배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꽃보다 할배> 주위에 켜켜이 쌓이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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