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똑똑한 관찰예능이란 이런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도학위룡>(1991)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신성이던 주성치를 홍콩 코미디영화의 제왕으로 단박에 끌어올린 빅히트작으로, 그 흥행에 힘입어 1993년까지 1년에 한 편씩 시리즈로 이어졌다. 머리는 좋지만 까칠한 사고뭉치 강력계 형사반장(주성치)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고등학교에 학생 신분으로 잠복근무를 한다는 설정의 코미디로, ‘어른이 학교에 다시 가게 된다면’이란 상상력이 빛을 발한 초기 주성치 코미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리즈를 통해 오맹달과 장민 등 주성치 사단의 모습도 본격화 됐다.

JTBC의 새로운 토요예능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는 ‘성인이 되어(혹은 내가 만약) 다시 학교에 간다면’이란 상상을 예능화한 버전이다. 40대 후반의 성동일부터 40대 로커 윤도현, 예능인 김종민과 캐나다 출신 브라이언, 20대 초반의 강준, 남주혁과 현직 아이돌 허가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연예인들이 교복에 학생증까지 발급받고 다시 학교를 찾아간다. 단순히 체험하는 수준이 아니다. <진짜 사나이>의 군대도 방송을 위한 이벤트로 흘러가지만 타이트한 시간표와 준엄한 종소리에 철저히 지배되는 학교에서는 그런 게 없다. 학교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5분간의 수업시간에는 그 어떤 예능의 설정도 불허 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연자들의 역할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충실히 학교생활에 임하는 것이 전부다. 학생들과 똑같이 등하교를 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벌점제도에 노출된다. 학생들과 같은 교과서로 공부하고 같은 조건으로 시험을 친다. 칠판 앞에서 수학문제를 못 풀어 전전긍긍하고, 괜히 매점 갈 시간만 학수고대한다. 심지어 윤도현과 혜박은 교내 독서실에서 야간자율학습까지 신청한다.



여기서 <도학위룡>의 재미와 조우한다. 학교라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 던져진 연예인들은 자신의 신분과 나이와 친구들과 똑같은 학생 신분이란 역할 갈등을 겪게 되고, 자신의 원래 정체성을 누르고 학생처럼 살고자 하는 의지는 웃음으로 피어난다. 국내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던 브라이언이나 예능이 너무 익숙한 김종민은 그런 역할 갈등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등교하는 뒤태부터 영락없이 일진 포스인 성동일이나 모범생을 지향하는 윤도현은 완벽하게 학생 모드로 전환했다. 얌전한 허가윤과 파이팅 넘치는 매점마니아 혜박은 진짜 여고생 분위기가 난다.

지각하지 않으려는 몸부림부터 지루하거나 생소한 수업을 버텨내려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무대나 다른 프로그램에서 본적이 없던 그림이다. 수업시간에 과자를 몰래 먹고, 괜히 체육시간에 여학생들 앞에서 폼을 잡으며 덩크를 내리 꽂고, 짝꿍과 오목을 두다 혼나는 등 변치 않는 학교 풍경 속으로 이들은 녹아들어간다.

카메라를 따라 다시 찾아간 교실에서 시청자들은 잠시 잊고 살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학교의 기물도 변하고, 과목별 특별 교실의 설비도 으리으리해지고, 이동식 수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매점은 편의점으로 바뀌었지만 연예인을 따라 다시 학교로 들어가 앉아보니 친구들과 어울렸던 기억, 어느 학교에나 존재하는 캐릭터 있는 선생님, 수업 시간의 분위기 등은 그대로다. 함께 앉아 같은 눈높이로 주변을 둘러보니 예의 없고, 알 수 없는 존재라 생각했던 10대들이 사실은 그저 우리의 예전 어렸을 적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학생들에게도 이 이벤트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듯 보기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 선생님들은 ‘너희가 언제 이렇게 말 잘 들었냐’, ‘수업태도가 좋으냐’, ‘아무도 졸지 않느냐’고 의아해 한다. 연예인과 카메라의 존재는 아이들의 수업태도를 확실하게 끌어올렸다. 그 백미는 마치 영화 <스쿨오브 락>을 보는 듯한 윤도현의 합창대회 지도다. 그 전까지 아이들의 합창은 합창대회가 딱히 성적에 도움 안 돼서 그런지 태도부터 소리까지 엉망이라 평가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윤도현의 에너지와 프로페셔널 음악인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경외는 반 아이들의 자신감과 의욕을 끌어올렸다. 아이들의 태도와 실력이 한 시간 안에 쑥쑥 올라오는 모습을 신기하게 보는 음악선생님의 심정은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됐다.

연예인이 배치된 반뿐 아니라 연예인이 우리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니 전교생들이 학교생활을 즐기는 게 보인다. ‘형하고 같이 다니니까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한 교우의 말이 그래서 치기어린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쉬는 시간 이어지는 쏠쏠한 매점찬스는 덤이다.



다들 TV가, 예능이 변화해야 한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때, 실제 발을 굴려 앞으로 나가는 건 현재까지 JTBC가 유일하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는 설정만 보면 영화 <두사부일체>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학교에 가서 벌어지는 엉뚱한 에피소드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는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학교생활에 매우 충실히 임한다. 관찰 예능의 룰을 확실하게 지키면서 학교 교정에 남겨두었던 아련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점이 포인트다. 출연진들이 더더욱 적응하고 아이들과 친해질수록 재밌는 그림은 늘어날 것이다.

연예인들이 교복을 입으면서 시청자들도 눈높이의 교환을 이루게 된다. 한 쪽에는 추억을, 한 쪽에는 지금 보내는 학창시절이 돌아오지 않을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느끼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 세대 간의 거리를 좁히게도 해준다. 형들을 편하게 해주려고 가까이 다가가고 이런 저런 도움을 조용히 전하는 아이들. 혜박과 허가윤이 쉽게 친구들 이름을 외울 수 있게 좌석 배치도를 손수 그려주는 마음씨는 또 얼마나 고운가. 까불고 놀 것만 같은 사내아이들이 체육시간에 카메라 때문에 옷을 못 갈아입겠다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에는 이처럼 똑똑한 관찰형 예능이 가져야 하는 주제의식과 정서적 만족이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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