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굳이 블록버스터 코믹액션이 필요했을까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영화 <해적>에서 떠오르는 건 <조선명탐정>이나 <조선미녀삼총사> 같은 영화다. 사극이고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할리우드 장르물들을 조선 사극 버전으로 바꾼 작품들이다. <조선명탐정>이 <셜록홈즈> 같은 추리물을 따왔다면 <조선미녀삼총사>는 <미녀삼총사>를 조선판으로 그렸다. <해적>은? 척 봐도 알 수 있듯이 <캐리비안의 해적>의 조선판이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은 작품의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이 ‘끌리는 기획’이다. <해적>은 바로 이 기획적인 측면에서 관객들을 끄는 힘이 있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액션이 있고, 이 장르적인 액션과 사극이 만나는 독특한 장면들이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고래도 한 몫을 차지한다. 시원스럽게 바다를 깨치고 뛰어오르는 고래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 시원스러움에 폭염에 허덕이는 관객들은 절로 극장을 찾는다.

게다가 <캐리비안의 해적>이 가진 장르적 재미는 <해적>이라는 조선판 버전으로 넘어오면서 기대감을 높인다. 조선판에서는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가 궁금한 것이다. 실제로 거대한 워터파크의 슬라이드를 연상시키는 물길 위를 미끄럼틀 타듯 내려오는 손예진의 액션과 거대 물레방아가 벽란도라는 당대의 국제 무역항을 헤집고 다니는 장면은 대단히 흥미롭다. 이 정도면 이런 장면들을 잡아넣은 예고편은 대중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일 이 영화를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쉴 새 없는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로 생각하고 본다면 의외의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몇몇 장면들은 해양 액션의 묘미를 보여주지만 오히려 영화는 그런 볼거리보다는 코미디, 그것도 걸쭉한 대사가 만들어내는 코믹한 시퀀스들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적>이 손예진과 김남길의 영화라기보다는 유해진의 영화 같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다. 지금까지 잘 보기 어려웠던 손예진의 액션 연기는 흥미롭고, 마치 <선덕여왕>의 비담을 보는 듯한 김남길의 능청스런 연기도 괜찮지만 역시 이 영화는 마치 <왕의 남자>의 육갑을 보는 듯한 유해진의 코믹 연기가 살려내고 있다. 해적이었지만 여전히 배멀미를 할 정도로 적응이 안 되어 산적이 되었다 다시 바다로 나오게 되는 철봉 역할의 유해진은 마치 <개그콘서트>의 서열 개그를 보는 듯한 웃음을 선사한다.



위화도 회군에서 이성계의 대오를 이탈해 산적이 된 장사정 역할의 김남길 역시 의외의 웃음을 주는 인물이지만 쉴 새 없이 투덜대는 유해진에 비하면 약한 편이고, 손예진은 웃기기보다는 시종일관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이경영이나 김태우는 굉장한 긴장감을 주기 보다는 마치 <피터팬>의 후크 선장을 보는 듯 부담 없는 코미디물의 악역을 연기한다.

결국 <해적>은 액션 어드벤처라기보다는 코미디에 방점이 찍힌 영화다. 즉 실질적인 주인공은 유해진을 비롯해 김원해, 박철민, 조달환, 신정근 같은 깨알 같은 웃음을 주는 조연들인 셈이다. 이 영화는 마치 하리마오 픽쳐스의 천성일 작가가 <7급공무원>으로 보여줬던 액션 코미디의 연작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일 코미디가 목적이라면 왜 160억이라는 돈을 들여 굳이 블록버스터 코믹액션을 만들어야 했을까. 손예진과 김남길의 액션이 좀 더 중심을 잡아줄 수 있었다면 유해진의 웃음과 잘 버무려져 이 영화의 폭발력은 좀 더 강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피서 같은 여름방학 블록버스터로서 <해적>은 괜찮은 영화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해진의 코믹연기를 보기 위해 160억을 들인 점은 너무 비경제적인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영화 <해적>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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