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얼굴’, 표절 아니더라도 의심 받기엔 충분하다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영화 <관상>은 913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런 정도의 성공이라면 당연히 영화의 드라마화를 통해 또 한 번의 성공을 꿈꿔볼만 하다. 그런데 최근 이 <관상>의 제작사인 주피터필름측은 KBS가 편성을 해놓은 <왕의 얼굴>이라는 드라마 때문에 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해 있다.

주피터필름측은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강호측을 통해 <왕의 얼굴>이 <관상>의 표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관상 중에 얼굴을 테마로 삼고, 동물의 형상과 빗대고, 인물들이 관상을 통해 서로 보완해주고, 그런 구도 속에서 특정 인물의 관상을 바꿔서 운명을 바꾸려는 테마, 또 범인을 찾아내는 부분,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이 자결하는 설정까지 차용됐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다. <왕의 얼굴>은 모방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플롯들이 반복돼서 나타난다. 표절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아직 방영되지도 않은 작품이니 이를 두고 표절이라 말하는 건 섣부르다. 하지만 주피터필름측이 이렇게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KBS가 지난 2012년 KBS미디어 관계자가 영화 <관상> 제작사의 관계자로부터 영화 시나리오의 드라마화에 대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는 것. 즉 당시 접촉이 있었으며 다만 드라마화의 협상이 결렬되자 KBS가 동일 소재의 드라마를 제작 진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저작권 침해라 말하긴 어려워도 KBS의 ‘부정경쟁행위’라는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이대로 <왕의 얼굴>이 방영되고 나면 <관상>의 드라마화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런 사실은 KBS도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KBS는 여기에 대해 “영화 <관상>의 성공으로 관상이라는 소재가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근거로 관상이란 소재에 대해 영화사가 독점적인 소유권을 주장하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얘기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의적인 차원으로 생각해보면 과연 KBS라는 공영방송이 이런 식으로 자본과 플랫폼 우위를 내세워 콘텐츠제작자들의 기회를 꺾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의구심을 남긴다.

최근 1,600만 관객 수를 넘어선 <명량>의 흥행 열풍에 힘입어 KBS는 내달부터 <불멸의 이순신> 33부작을 재편성한다고 밝혔다. 내년 1월에는 드라마 <징비록>을 선보인다고 한다. <징비록>은 영화 <명량>의 흥행성공 이전에 기획된 것이지만, 영화 제작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예상할만한 이순신 열풍을 어느 정도는 감지했던 것이 아닐까. 즉 <명량>의 성공 때문에 <징비록>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반복되는 소재의 유사성은 KBS 콘텐츠가 새로운 소재들을 발굴하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KBS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타 방송사가 해온 것을 가져와 적당히 KBS화함으로써 일종의 ‘베끼기 논란’을 만든 바 있다. MBC <나는 가수다>가 뜨자 <불후의 명곡2>를 만들었고, <아빠 어디가>가 뜨자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만들었으며, tvN <꽃보다 할배>가 뜨자 <마마도>를 편성하는 식이었다. 즉 공영방송이라면 방송을 선도하면서 오히려 타 방송사들이 모두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큰 파이의 콘텐츠 소재 개발을 해야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인 셈이다.

시류에 편승하기에 급급하기보다는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할 수는 없는 일일까. <왕의 얼굴>을 <관상>의 표절이라 말하기 어렵고, <징비록>이 <명량>의 이순신 열풍 후에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시청자들로서는 KBS가 갖고 오는 이런 식의 이미 누군가 해놓은 성공 소재의 활용이 어딘지 게으르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사실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시류를 탈 필요는 애초부터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경쟁에 나서겠다면 최소한 업계의 질서를 흐리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영화 <관상>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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