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 과감하기 어려운 파일럿 예능의 한계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이제 추석 같은 명절은 으레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시간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이번 추석에도 각 방송사들은 상당히 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내놓았다. SBS가 <열창클럽 썸씽>, <주먹쥐고 주방장> 등을 선보였고 MBC는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건강보감 리턴즈>, <헬로 이방인> 등을, KBS는 <결벽대결 1mm>, <쟁반 릴레이송> 등을 각각 방영했다.

여전히 지상파 3사가 각자 잘 나가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스페셜’이라는 이름을 붙여 재방송하는 관행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번 추석에는 새로운 특집 프로그램을 훨씬 더 많이 방영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된 것은 지금 현재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 일종의 위기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식들을 시도하려는 것이고, 그 첫 선으로서 추석이라는 명절은 괜찮은 테스트 마켓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담감은 아무래도 MBC와 SBS에서 더 크게 느껴진다. KBS가 보여준 <결벽대결 1mm>나 <쟁반 릴레이송> 같은 프로그램은 파일럿이라기보다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명절 전용 시리즈가 되어가는 <당신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개그콘서트>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가 전제된 것이고, 일종의 미방송분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정규화하기는 어렵다.

이번에 MBC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의욕적으로 파일럿이 될 만한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는 그 중 가장 괜찮은 성과를 보여준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프로그램의 구성은 물론이고 그들이 그냥 만나는 게 아니라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콘셉트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예능에서 얼굴을 보기 어려웠던 송재호나 이재용, 김성령, 진지희 같은 인물들을 드라마나 영화 바깥에서 발견한다는 재미도 쏠쏠했다.



<헬로 이방인>은 최근 주목되고 있는 외국인 예능의 또 다른 버전을 보여줬다. 함께 홈스테이를 하며 벌어지는 소통의 이야기를 다루는 기획적인 접근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너무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었다. 생활의 공간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가족오락관>식의 쇼를 보여주는 건 요즘 트렌드와는 잘 맞지 않는다. 만일 이를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자연스런 일상이 묻어나게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건강보감 리턴즈>는 과거 <일밤>에서 했던 코너를 리메이크했다. 이경규가 다시 MBC에서 그것도 김구라와 함께 방송을 한다는 점이 주목되는 지점이다. 과거에 다 써왔던 코드들을 사용하지만 그래도 이 몸 개그가 어우러진 건강 이야기가 가진 힘은 여전하다. 트렌디한 프로그램으로는 어렵겠지만 스테디한 프로그램으로는 괜찮을 듯 싶은 예능이다.

SBS의 <열창클럽 썸씽>은 스토리텔링 음악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많이 보여주던 노래 부르는 이들의 사연을 담은 무대는 확실히 다른 감흥을 보여주는데는 성공하고 있다. 다만 만듦새가 정교하지 못하고 그것이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의 감성을 폭발시켜주지 못하게 한 점은 아쉬운 점이다. 또한 후반부 박근형씨 부자의 편은 너무 지나치게 사적인 가족 모임 같은 느낌을 만들어 호응하기 어려운 한계를 만들었다.



<주먹쥐고 주방장>은 SBS가 김병만이라는 달인을 내세워 만든 ‘주먹쥐고’ 시리즈 2탄이다. 전편인 <주먹쥐고 소림사>에 비교하면 다소 밋밋한 인상이 강했다. 헨리의 과도한 행동들이 마치 설정 같은 느낌을 주었고, 요리를 배워나가는 과정도 <주먹쥐고 소림사>에 비해 약하게 느껴졌다. 또한 김병만의 존재감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마치 음식점 투어를 하는 듯한 겉핥기에 머문 것은 이 시리즈의 기대감에 비한다면 너무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 추석 특집을 통해 파일럿으로 등장한 프로그램들은 전체적으로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추석 같은 명절이 부여하는 한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절이면 늘 다루는 것이 가족과 고향, 음식, 음악 같은 것들이다. 그러니 새로운 파일럿이 시도하는 소재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계를 보인다. 이번 추석 특집 파일럿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명절이라는 틀을 의식하다 보니 그 완성도나 참신함 면에서는 다소 부족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래도 명절이다보니 무언가 과감한 시도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규편성을 염두에 둔 파일럿 프로그램을 굳이 명절에 대거 띄우는 게 과연 얼마나 이득이 될까. 명절 파일럿 프로그램이 갖는 이런 한계점을 이제 방송사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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