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등을 내준 ‘1박2일’, 뭉클했던 감동의 실체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녀 아녀 아녀” 할머니는 “아녀”를 입에 달고 다니셨다. “못해”, “싫어”, “나는 안해”라는 말들은 습관처럼 나왔다. 김준호가 “업히세유”하고 등을 내밀자 여지없이 돌아오는 건 “아녀”. 하지만 기듯이 등을 들이미는 김준호 때문에 할 수 없는 듯 업히신 할머니는 “내 생전 처음이여”라며 한없이 행복해 하셨다.

이 짧은 장면 속에는 김제 신덕마을에서 <1박2일>이 보여준 감동의 실체가 들어 있다. ‘아녀 할머니(?)’는 마치 이 힘겨운 농사일에도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농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호의를 보여주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시는 모습은 그간 그런 경험이 거의 없으셨다는 걸 말해준다.

아무도 그리 큰 관심을 주지 않아 작은 호의조차 어색해하시는 모습.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찾아준 <1박2일>을 출연자나 스텝 할 것 없이 자식들처럼 대하시는 모습은 시청자들을 찡하게 만들었다. 찌개 하나 끓여내면 된다고 하고선 떡하니 한상을 내와 “어여 먹으라”는 할머니에게서 우리가 떠올리는 건 고향의 어머니다.

이 할머니들을 고스란히 닮아버린 동네는 그래서 <1박2일>이 와서 벌인 작은 마을잔치에 한껏 흐뭇한 정경을 보여주었다. 저녁을 놓고 구촌마을과 신기촌마을이 한판 벌인 복불복 게임에 기꺼이 참여한 마을 사람들 역시 할머니들처럼 수줍지만 정이 넘쳤다. 실물 끝말잇기에 등장하신 ‘터프가이’ 아저씨는 “애매하다”는 유호진 PD의 말에 “이거 웃통이라도 벗어야 되는겨”라며 짐짓 터프한 모습을 보여 PD를 기죽게 만들었고, ‘늠’자를 잇기 위해 ‘늠름한’ 면장님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실 시골살이에서 걸레를 맨손으로 짜는 일이 무에 자랑거리가 될까. 하지만 <1박2일> 복불복 게임으로 치러진 부녀자 팔씨름 대회에서 승자가 된 한 아주머니는 그 힘이 걸레를 짜는 데서 생겼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고 밭을 일구고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리는, 그간 농촌에서 살아온 그 신산한 생활의 면면들이 하나의 자랑거리로 바뀌는 순간이 바로 <1박2일>이 마을잔치처럼 치러진 복불복 게임의 실체다.



따라서 게임은 진지했지만 결과는 하나도 중요할 것이 없었다. 진 팀은 굶어야 한다는 PD의 말에 “누가 됐든 굶어선 안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은 넉넉하진 않아도 나눠 먹는 시골 인심을 보게 만든다. “다 공평하게 나누면 지금껏 한 게 의미가 없다”는 PD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적게 먹겠다”고 말해 결국 PD마저 두 손 들게 만들었다. 또 잠자리 복불복에서도 게임에서 져 야외에서 자게 된 <1박2일> 아들들에게 할머니들은 “미안하다”며 이불을 갖다 주고 챙기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전북 김제에서 벌어진 <1박2일> 전원일기 특집은 이 프로그램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국을 여행하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는 것이 <1박2일>이 해온 일이지만,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 따뜻한 정과 훈훈한 인심을 나누며 여전히 그 작은 시골마을들을 지키고 살아가는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분들의 소박한 삶이 있어 우리 같은 도시인들이 살 수 있고 또 가끔씩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아녀”하며 업히는 걸 극구 거부하던 할머니를 업어주는 김준호의 모습은 그래서 마치 이 소박하고 작은 시골마을을 찾아 잠시 업어주듯 흥겨운 하루를 보내준 <1박2일>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꺼이 시골에 등을 내주는 <1박2일>의 모습은 아마도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걸어가야 할 길이 될 것이다. 바로 거기에 <1박2일>만의 저력이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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