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가 사실은 미생이 아닌 슈퍼맨이었다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미생> 마지막회는 갸우뚱하게 만든다. 장그래(임시완)에 감정이입을 하고, 한성률(변요한)을 보며 웃던 시청자들에게 요르단 암만에서 파쿠르를 펼친 마지막회는 반전이었다. 마치 현실이 팍팍하더라도 웃으며 살자거나 희망의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바로 이 점에서 동의가 필요하다. <미생> 신드롬은 판타지에서 나온 게 아니다. 원작이 가진 리얼리티와 만화적 장면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는 점, 그리고 원작보다 더 풍부하고 현실적인 캐릭터가 몰입도를 높여준 것이다.

원작과의 비교를 떠나서도 훌륭한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상의 정서를 드라마 속 세상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작할 때마다 보이는 서울스퀘어의 전경샷은 드라마 속 세상과 시청자들이 살아가는 현실 공간이 만나는 상징이었다. 우리 모두 ‘상사맨’이거나 대기업 사무직 사원은 아니지만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열광했다.

직장인의 사실적 묘사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세상이란 바둑판 위에서 그저 놓이게 되는 바둑알임을 알지만 그 속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그 안에 들어가서 버텨내는 보통 사람들이 이야기이기에 장그래와 그 동기들을 응원했다. 그래서 그들을 돕는 오 차장(이성민), 김 대리(김대명) 같은 선배들을 멋있고 부럽기도 했다. 이 또한 일종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다. 허나 아등바등 살면서 그 정도 따뜻함은 기대할 법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계약직 사원 장그래 구하기로 이야기가 집중되면서 현실감각은 현저히 떨어졌다. 과장하자면 거대한 회사의 가장 큰 이슈가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이었다. 장그래를 살리기 위한 동기들은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선 차장을 비롯한 선배들이 직접 인사팀 담당자를 찾아가 설득하고 부탁했다. 어떤 회사에서나 존재하는 여러 유형의 상사 타입, 회사 내부의 경쟁과 갈등 등 회사생활을 실감나게 보여준 것이 <미생>의 힘이었는데, 막바지에 이르러선 회사생활도 아니고 회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장그래의 재계약을 둘러싼 이슈들은 일종의 당위나 선악구도에 바탕을 둔 감성적 접근이었다.



물론 결론은 원작과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애썼지만 드라마 같은 반전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세상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멋진 프리젠테이션도, 요르단 중고차 사업도 이끌어낸 장그래 같은 주인공도 어쩔 수 없다는 것, 눈물의 이별도 없었다.

문제는 원인터를 나간 오 차장과 그곳에서 영업3팀이 행복하게 뭉치면서부터다. 여기서부터 회사원들이 꿈꾸는 판타지의 세상이 펼쳐진다. 회사원들은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만 할 때, 불합리한 회사 내에서 아등바등 살기보다 능력 있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일을 벌이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 번씩 해본다. 그런데 상상의 범주에 머무는 건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 존재했을 때의 이득과 기회비용과 대조했을 때 계산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쉽고도 행복한 길이 있었다면 오 차장은 갖은 수모를 겪을 필요도, 장그래가 정규직 전환을 놓고 잔인한 차별을 견디며 버틸 이유도 없다. 오 차장과 동업 중인 선배가 진작 회사가 전쟁터면 바깥은 지옥이라고 그랬다. 하지만 사회의 비정함을 한 몸으로 받았던 장그래는 어렵지 않게 또 다시 구제된다.

그래도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회사가 전부가 아니고, 치킨집을 하든 어떻게든 또다시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퇴사 후 잘 되는 케이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껏 필자가 본 <미생>은 대체 뭔가 싶은 의문이 강하게 밀려오는 건 요르단으로 건너가서부터다. 요르단 가는 것 자체가 딱히 개연성이나 현실성이 없는데 장그래는 날아가서 첩보 추격전을 벌이고, 나름의 능숙한 심문기술로 자백을 받아낸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은 바둑기사 지망생은 회사 생활 2년을 거치더니 슈퍼맨이 됐다. 페트라를 배경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인생에 깊이를 담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이국적인 풍경만큼이나 낯설고 어색했다. 마치 다른 이야기,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네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그 담백함 때문에 끌렸던 드라마인데 희망의 판타지 수준을 넘어서더니 너무 멀리 사막까지 나가니 일순간에 황량해졌다.

요르단에서 벌어진 일들은 현실의 퍽퍽함을 달래는 달달한 믹스커피일 수도 있다. 판타지로 현실의 텁텁함을 덜어내고 웃으면서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원인터의 세상에 푹 빠져온 사람들에게 적당한 마지막 인사나 선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희망도 좋지만 이런 식의 화려함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결국 미생의 대표 주자처럼 보였던 장그래가 실은 슈퍼맨이었다는 이야기는 <미생>이 우리들의 이야기라며 열광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판타지보다 위화감을 끼칠 염려가 더욱 크다. 서울역 앞을 벗어나 요르단의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웃으면서 ‘안녕’이라 말하고 싶었겠지만, 지금껏 원인터와 장그래에 몰입했던 감정까지 모두를 머쓱하게 만든 인사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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