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해라’, 왜 정형돈의 장점을 무시했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가 선보인 파일럿 <네 멋대로 해라>는 자칭 4대천왕 정형돈을 모델링한 프로그램이다. 옷을 잘 못 입는 스타의 패션센스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에 정형돈과 ‘반지의 제왕’에서 ‘아저씨 캐릭터’로 완벽 자리매김한 안정환이 MC를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림이 그려졌다. 일반적 통념을 깨는 연예인의 패션 센스와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 두 명의 MC가 진행하는 앙상블, 일상을 예능으로 친숙하게 끌어들이는 스피디한 진행과 정서적 교감까지, 정형돈이 갖춰 입은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재미를 기대하게 했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에서부터 은갈치 정장에 녹슨 발리 크로스백을 후줄근하게 가로매고 구두를 꺾어 신고 다니는 아저씨 패션의 전형이다. 못난 인물들로 구성됐다고 주장하는 <무도> 내에서도 가장 패션에 둔감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맥락을 비틀고 패션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으로 GD의 패션을 나무라고 동묘앞을 쏘다니며 예능 패셔니스타로 거듭났다. 이런 정형돈에게 패션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맡겼다는 건 <무도> 가요제에서 GD와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만들어낸, 식스맨 프로젝트에서 광희와 손잡고 패션 메이크오버에 도전했던 정형돈에 대한 기대다.

또한 김성주의 오랜 예능 짝꿍 안정환과 짝지어준 것도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김성주와 정형돈은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스포츠중계를 하듯 리드미컬한 진행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 쇼는 일상의 재료를 갖고 예능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독특한 방식의 쇼였다. <네 멋대로 해라>는 쉽게 큰 줄기만 보면 요리를 옷으로 바꾼 거다.

게스트로 출연한 성시경이 MC로 있는 <비정상회담>의 ‘옷장을 부탁해’ 코너를 확장했다고 보면 적절하다. 집 안에 있는 실제 냉장고를 떼 오는 대신 실제 자신의 옷방을 공개하고 자신의 옷을 직접 스튜디오로 갖고 오는 거다. 달라진 점은 그 옷을 전문가가 만지고 코디하는 대신, ‘첫사랑과 10년만의 재회’ 라는 식의 주제 하에 게스트 스스로 직접 자신의 옷을 코디한다. 이 모든 것은 느슨하지만 일종의 대결 구도 하에서 진행된다. 상황 설정에 맞게 스스로 옷을 코디하면 패널과 방청객들이 누가 가장 괜찮은지 평가한다.



이런 과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스타의 일상과 민낯을 가감 없이 접하는 거다. 우리와 전혀 다르고 화려할 것만 같던 연예인들이 사실은 수수하고 우리와 비슷한 보통 사람이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면서 ‘귀여움’까지 느낄 정도로 정서적으로 더욱 친밀해질 수 있다. 재미는 여기서부터 나온다.

그런데 정형돈의 캐릭터를 확장해 쇼를 건설했지만 그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장점, 그가 맡은 프로그램들이 잘나가는 지점을 <네 멋대로 해라>는 무시하고 정말 멋대로 하면서 놓치고 있다. 우선 정형돈의 캐릭터가 진행 역할에 밀려 올라오지 못한다. 초보MC인 안정환과 함께 MC를 보다보니 진행에 치우쳐져서 건방져질 기회가 없다는 거다. 무슨 잘나가는 허세 가득한 디자이너 행세를 하면서 엉뚱한 조언과 지적을 날려야 재미가 사는데 그럴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어시스트를 받고 뒤에서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혼자 여러 역할을 맡느라 4대천왕 시절 이전의 밋밋함으로 돌아갔다.

이와 함께 <네 멋대로 해라>가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라이프스타일 관련 소재를 예능을 접목할 때 가져야 할 태도다. 보여주는 데서 끝나선 안 되고 그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지식 등의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그저 동질감을 얻는 선에서 민낯을 보여주는 지금 방식은 에피소드식 토크과 다를 바 없이 지루한 볼거리로 표류하게 될 공산이 크다. 스타의 옷장과 내밀한 공간을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런 공감대와 일상의 공개를 바탕으로 뭔가 시청자들의 일상에도 남을 만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테면 전문가의 메이크오버의 기능이 필요하다.



요즘 시청자들이 예능에 바라는 재미는 다각적인 감성, 경험, 정보다. 그저 바라보는 데서 웃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성공할 수 있었던 포인트는 요리대결이 아니라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요리를 웃고 즐기는 가운데 명망 있는 쉐프들에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였다. 요식업계를 주름잡던 백종원이 방송 천재로 거듭나게 된 콘텐츠의 힘도 여기에 있다.

<네 멋대로 해라>에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광희나 홍진경도 출연하고 오래전부터 케이블에서 패션과련 프로그램,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을 숱하게 진행했던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도 이미 출연하고 있다. 자칭 패셔니스타 ‘도니’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역할이 없다. 좀 더 신랄하게 비판하고 제안하고 바꿔주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되는데 그 기능이 없다. 방송을 통해 레시피를 배우듯 착장과 트렌드를 알아갈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예능의 핵심 요소가 빠졌다. 그러니 문희준과 강남의 과한 개그 욕심이 옷으로 표출되고, 별다를 게 없는 스튜디오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만약 다음번 기회가 있다면 보다 더 라이프스타일 예능으로서의 모습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미 자리잡은 패션관련 케이블쇼의 전문성과 경쟁할 수 있고, 공중파 예능으로의 생산성이 결합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에피소드식 예능 토크쇼에 패션이란 소재를 얹는 지금 방식으로는 소재도, 재미도, 캐릭터도 금방 고갈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