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의 최근 변화와 ‘썰전’ 개편은 겹쳐져 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예능방송가에 이른바 ‘JTBC 인베이전’을 몰고 왔던 <썰전>이 개편했다. 선봉에 섰던 만큼 변화에 대한 요구도 가장 먼저 받았던 터였다. 큰 골자는 1부는 현상 유지, 2부는 전면 개편이다. 우선 김구라를 제외하고 출연자들을 싹 다 물갈이했다. 그리고 간판도 날렸다. 지지부진해진 대중문화비평을 과감히 버리고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담아 경제 이슈를 다루는 ‘썰쩐’이란 새 코너로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경제를 다루지만 잘 알려진 경제전문가가 고정출연하진 않는다. 강연계의 최고 인문학 강사 최진기를 ‘모셔’와 축으로 삼고, 김구라와 서장훈, 장도연 등은 경청하다가 잘 모르는 보통사람의 시각에서 질문한다. 이런 층위에서 갖는 궁금증과 뉴스의 이면을 최진기는 인문학적인 시각과 성찰로 풀어준다. 예능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기존 경제 시사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연예인이 아닌 생활인의 입장에서 경제 뉴스를 바라보고 인문학적 시각으로 해석한다는 것. 즉 시청함으로써 뉴스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함께 교양을 학습하는 거다.

지난 첫 방송에서는 ‘1도 전쟁, 술맛도 민감 혈투’라 하여 급변하는 소주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번 주에는 5년 만에 14배나 급증한 장기 렌터카 시장의 급성장 추세를 짚어주며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 배경과 사회상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신차 구매 시 장기 렌터카, 리스, 할부 중 본인에겐 어떤 방식이 유리한지 생각해볼 수 있게끔 했다.

<썰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신선했던 이유는 두 가지 금기에 대해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정치, 시사 뉴스를 본격적으로 예능의 틀 안으로 소환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방송이 방송을 말한다는 점이었다. 둘 다 파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문화비평은 JTBC방송 이슈는 피하는 등 ‘안면’이 받히는 상황들 앞에 번번이 막히면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원성은 높아졌고 도전은 실패했다.



하지만 똑같이 금기에 대한 도전이란 동력과 흥미는 거의 떨어져나간 상황에서 1부는 자립 자생했다. 정치시사 이슈에 대해 정리 요약된 브리핑을 듣는 효용과 재미가 자리 잡은 것이다. 아무도 속 시원히 말하지 않는 뉴스를(종편의 정치 시사 프로그램 제외) 정리된 의견과 논리를 통해 깊숙이 보여주며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짚어준다. 왜곡이 횡횡한 언론사의 뉴스보도보다 훨씬 더 자세하다. 일주일에 <썰전> 한번만 봐도 최신 시사이슈를 알차게 섭렵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철희의 시사 해석에 이어 최진기의 경제 논평을 붙인 <썰전>의 개편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다. 초창기 <썰전>이 예능의 금기에 도전하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면 이제 뱃머리를 교양의 영역으로 선회한 거다. 누구나 보고 웃을 수 있는 이야기 대신 확실한 타깃 시청자들이 반응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 콘텐츠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그동안 앞세웠던 금기에 대한 도전, 독한 혀 키워드를 포기하는 나름 큰 결단이다.

이철희, 최진기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수업의 질을 담보하고, 밉상인 강용석은 어디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려는 심리를 건드려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 방송에서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해가 아니라 이제는 방송을 보고 생각하게하고 정리하게 만든다. 방송통신대학이나 EBS는 아니지만 예능의 가면을 쓰고 일종의 교양방송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요즘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공부하는 중년이 늘고 있다는데 김구라도 배움에 꽂혀 있는 모양이다. 그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독설이나 신랄한 비평이나 잘난 척 대신 시청자와 함께 공부를 한다. 매주 야구, 미술, 역사, 재테크, 캠핑 등 한 가지 분야를 정하고 전문가를 모셔와 공부하는 형식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썰쩐’은 그보다 배움의 깊이와 생각할 거리가 더 깊고 넓어진 버전이다.

김구라의 최근 변화 양상과 <썰전>의 개편은 겹쳐져 있다. 독설과 독한 혀, 정서적 금기와 주제의 금기로 출발해 둘 다 학습과 교양의 영역으로 방향으로 선회했다. 교양과 지식과는 가장 담을 쌓은 것처럼 보였던 예능이란 장르에서 가장 독하고 센 이미지의 예능인과 프로그램이 이제 가장 똑똑한 의식을 가진 방송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수다에서 수다를 통한 학습으로의 전환. 금기를 넘어서 배움으로 나아간 <썰전>의 수다가 여전히 재미있을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노잼’의 화살에 장렬히 전사할지 새로운 수다의 장이 시작됐다. 목표는 조용하지만 오래, 웃고 떠들지만 의미 있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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