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4’ 겨우 이럴려고 힙합을 이용해 먹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net <쇼미더머니4>에는 3명의 주목할 만한 참가자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돌 출신 참가자 송민호다. YG 식구인 그는 지난 시즌부터 본격화된 아이돌 참가자와 언더(혹은 무명)의 대립각을 이어받아서 이번 시즌 아이돌 측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대한산부인과협회를 들고일어나게 만든 센 가사, 동네 건달 같은 리얼 힙합그루브가 벤 무대매너와 패션은 가진 자 ‘아이돌’과 수많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홀로 갈고닦은 ‘언더힙합’의 경계를 허물고 스토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가 허문 건 반아이돌 대립구도만이 아니다. 그는 논란이 발발하자 쟁쟁한 래퍼들과 경쟁하다보니 자극적인 가사를 썼다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후회하고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자신의 랩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참가자들이 주장하는 힙합정신이 살짝 머쓱해졌다. 본토에서 건너온 힙합과 엠넷이 현지화한 한국힙합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 에피소드였다.
두 번째는 블랙넛이다. 그는 과거 이력을 떠나 참가자 중 가장 힙합스러운 마인드를 가졌다. 그 또한 탈락 위기에 놓이자 꼭 우승해서 자신을 바꾸고 싶다며 자신의 스탠스에서 한 발 물러섰지만, 한때 그랬다. 그 전까지 블랙넛은 제작진이 원하는 참가자의 가이드라인과 힙합스러움 사이에서 파도를 타는 스토리텔링의 서퍼였다. 우승을 위해 달려가라고 소리치는 제작진의 재촉에 시큰둥하고, 자기자랑과 절박함 대신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떠들어댔다.
경쟁미션에서는 상대를 예뻐서 사귀고 싶다는 이유로 고르고, 게릴라 미션을 할 땐 밥은 주냐고 물어보는 등 시스템을 비웃는 듯한 힙합스런 제스처는 참가자 중 가장 ‘틀’에서 자유로운 태도였고, 제작진 입장에서도 당황스럽지만 하나의 실타래였다. 오래가지 못했지만 블랙넛은 <쇼미더머니>와 <슈퍼스타K>의 차이를 만들어냈던 유일한 참가자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4회의 히어로 서출구다. 그는 프리스타일 랩퍼로 이름을 날린 대표적인 힙합씬 내의 유명인 참가자였다. 하지만 스눕독 앞에서 펼쳐야 할 사이퍼 미션이 먹이통을 향해 달려드는 가축들처럼 마이크 쟁탈전으로 설정되어 있자 스스로 포기했다. 방송에선 착해서 떨어졌다고, 절박함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지만 방송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프로그램과 방향이 다름을 알고 ‘포기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블랙넛이 서퍼라면 그는 승부사였다. 쇼에선 멀어졌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자존감과 신념을 지켜냈고 호감을 얻어냈다. <쇼미더머니>는 그 논란 덕에 또 한 번 주목을 이끌어냈다.
이 셋을 언급한 것은 <쇼미더머니>가 갖고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과 전제가 되는 철학을 언급하기 위해서다. 제작진은 인터뷰마다 자랑스럽게 ‘이 쇼는 논란을 통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논란거리가 되는 스토리가 이 쇼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임을 인정한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주목할 만한 참가자들은 논란의 스토리를 이끄는 일종의 소주인공들이다.
이런 소주인공들의 스토리를 한데 모으는 진짜 주인공이자 논란에 대응하는 만능 해독제는 본토 힙합 문화를 현지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힙합은 낯선 문화다. 이 쇼는 그런 지점을 파고들어 ‘힙합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소개하고 정의하면서 이 판을 자신들의 이름으로 접수하고 전파하려 한다. 쇼 자체가 교포발음과 영어를 섞어서 진행되고 ‘힙합 좀 알면 원래 이런 거 다 아는 거잖아?’라는 태도가 깔려 있다.
예를 들면 사이퍼 미션은 사실 심사위원들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거다. 심사위원의 능력 검증과는 별개로 본토 힙합 문화는 우리 정서에 아직 낯설고 딱 떨어지는 문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미션으로 논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사과를 했지만 정작 방송 내용은 서바이벌 사이퍼 미션에 대한 정당화였다.
기본적으로는 아무리 봐도 동네 편의점 알바생(비하가 아니라 평범하고 친근하다는 표현이다) 같은 어린 친구들이 ‘디스’라며 남 욕을 외워 와서 하다가 도중에 가사를 까먹었다고 당황하는 판국인데 욕설과 센 가사를 힙합 고유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원래 힙합이란 그런 것과 힙합의 현지화 사이에서 고민 대신 논란이 발발할 수 있는 것들 위주로 세팅한다. 논란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 가지치기해서 모양을 다듬는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한국 힙합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서바이벌쇼에 논란을 양성하기 위해 힙합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국 힙합 씬에 모처럼 큰돈과 관심이 유입됐지만 발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염려가 짙어지는 이유다.
이 쇼를 즐기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비교적 어리거나 젊은 세대라는 데서 이런 염려는 더욱 짙어진다. 이들이 접하게 되는 힙합 문화의 전부가 <쇼미더머니>라면 조금 곤란하다. 왜냐면 쇼를 만들면서 왜곡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우선 힙합은 잘 알려진 대로 저항 정신 어쩌고로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힙합이 가장 상업화된 주류 음악장르로 성장하면서 본토에서도 더 이상 저항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우리 힙합도 언제까지 중학생에서 20대 초반 남학생들의 전유물로 남을 수는 없다.
그런데 엠넷은 힙합을 쇼로 만드는 현지화 작업을 하면서 센 척하는 제스처만 가져와서 가짜 ‘스웩’으로 참가자들을 무장시킨다. 오랜 기간 홀로 와신상담하며 랩을 갈고닦았다는 힙합 순수성, 열정에 대한 자부심, 자신이 최고라는 자존감을 드높이지만 체제 앞에선 순응하고 절박함을 강조하는 서바이벌 쇼 참가자일 뿐이다. 참가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힙합과 서바이벌쇼의 조합이란 세팅이 그러하다. 그래서 그들의 욕설과 배짱은 ‘포즈’일뿐 ‘포스’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의미 없는 센 가사들이 불편한 거다. 한마디로 <쇼미더머니>와 <슈퍼스타K>는 랩이냐 노래냐 외에 성공이란 목표 아래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서출구는 이런 쇼의 흐름에 충격을 준 파열구였다. 제작진은 사이퍼미션 논란에 대해 재빠른 사과로 대응했지만 실제 말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는 권위 있는 스눕독의 입을 빌려서 나왔다. “인생에서 몇 개는 인정하고 따라야 하는 룰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이 쇼의 정신이다. 힙합 정신이 원래 좀 반항적이라서 욕도 좀 한다는 데 이 쇼의 진짜 메시지는 뜨고 싶으면, 성공하고 싶으면 세상이 깔아놓은 길을 걷되, 그 시스템을 거부하지 말란 메시지다. 그런데 판은 누가 깔아놓았던가? <쇼미더머니>가 현지화한 힙합의 현주소다. 그렇게 센 척하던 랩퍼, 스웨거들의 욕설과 센 가사가 본토 힙합 정신이란 쉴드로 보호해도 매번 논란이 벌어지게 되는 근본 이유다. 신나는 비트 속에 성공하기 위해선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의 규칙이 있다고 어린 친구들에게 말하는 거다.
<쇼미더머니> 관련 기사에서 인장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등용문’이란 말과 결부해 바라보면 그 기회의 문이 희망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이럴 거면 왜 힙합을 수입했는지 모르겠다. 제도권 내에서 등수를 매겨서 줄 세우기는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하는 분야인데 말이다.
흥미롭게도 얼마 전 진짜 힙합스러운 모습이 동시간대에서 경쟁하게 될 KBS2 <나를 돌아봐>팀에서 나왔다. 제작 발표회에서 조영남(a.k.a 카사노바 a.k.a 아티스트)과 김수미(a.k.a 욕쟁이할머니) 간의 면전 입담 배틀과 기자들을 초대한 자리를 뒤엎고 전격 이탈한 두 중견 연예인의 기싸움은 시스템이든 체면이든 그런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자존을 앞세운 지금까지 우리나라 방송에서 본 것 중 가장 힙합스러운 ‘스웩’이었다. 이 정도 자존심과 뒤를 돌보지 않는 배짱이 있어야 저항의 힙합 정신이니 아니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이 이슈를 타는 것도 좋고 일단 흥행해야 발전하든 무엇을 하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그들의 기준, 체제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굳이 힙합을 통해 들을 필요가 없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논리다. 논란을 위해 어린 참가자들을 활용하고, 그들은 더 제작진에게 주목받기 위해 거친 제스처를 취하며 경쟁한다. 그 판을 깨면 안 되고 잘 보여서 살아남아야 한다. 힙합 문화에 열광하는 어린 세대들이 힙합을 통해서도 세상과 어른들의 논리에 순응하며 바라볼까 그것이 무섭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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