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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유희열에게만 큰 짐을 떠넘기는 건 아닐까
기사입력 :[ 2015-07-27 15:30 ]


아이돌로만 가득 찬 음악방송이 가슴 아프다면


제4강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책무 [文化的 多樣性에 對한 責務]

[명사]
1. 한 사회의 문화가 획일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아니하고 그 종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나 의무.
2. 그런데 그 책임, 나까지 져야 하는 거던가?


[엔터미디어=이승한의 TV키워드사전] 최근 건강 문제로 와병하던 중,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두고 초심을 찾으라는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요지인즉슨 이렇다. 최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아이돌 출연 빈도가 너무 높아졌는데, 비(非)아이돌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빛과 소금 같은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마저 변질되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수신료 현실화 건강한 공영방송의 시작’을 추구하는 KBS라면 그런 부분까지 살펴야 한다는 충고도 담겨 있었다. 아이돌만 출연하는 <뮤직뱅크>의 시청률조차 3%가 안 되는 마당에 왜 아이돌에게 의존하느냐며, 차라리 음악은 좋은데 방송을 못하는 가수들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조언을 건넨 기자는 “하루 빨리 <스케치북>스러운 길로 복귀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칼럼을 마쳤다.

글쎄, 나 또한 비아이돌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 못내 안타깝다. 기자의 고언이 무슨 마음에서 나온 건지도 알 것 같다. 그런데 기자가 말하는 ‘변질’의 시점은 언제일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처음 전파를 타기 시작한 2009년 방영 목록을 살펴보자. 7월 3일엔 아이유가 나왔고, 7월 10일엔 2NE1이, 7월 17일엔 슈퍼주니어의 규현이, 7월 31일엔 포미닛과 소녀시대가, 8월 7일엔 FT아일랜드가 나왔다. 칼럼을 쓴 기자분껜 송구한 이야기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시작하던 시점부터 이미 비교적 아이돌이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들어 다소 그 비중이 늘었다고 한다면 동의할 수 있지만, 아이돌을 쇼에서 배제하는 건 한 번도 <스케치북>스러운 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점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지니는 독특한 매력이었다. 그 시간대에 해 왔던 프로그램들, <이소라의 프로포즈>나 <윤도현의 러브레터>과 같은 선배 프로그램들과 비교해봤을 때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아이돌 비중이 무척 높은 프로그램이었다. 유희열은 인기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돌을 특별대우하는 MC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이돌이라고 해서 문턱을 높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렬한 팬심을 보여줬으면 보여줬지. 윤하가 몰래 데려온 카라를 만나고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던 유희열의 모습이 괜히 화제가 되었겠는가. 씨스타와 윤상이, 장필순과 자이언티가, 언니네 이발관과 빅뱅이 모두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란 점이 <유희열의 스케치북> 고유의 매력이었던 것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아이돌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보다 더 큰 문제는, 기자도 ‘빛과 소금 같은’ 프로그램이란 표현으로 암시했듯 이런 종류의 쇼들이 점점 더 드문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MBC는 <음악여행 라라라> - <아름다운 콘서트> - <음악여행 예스터데이>의 연이은 종영 이후 비슷한 콘셉트의 라이브 음악쇼를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수요예술무대> 시절에 비하면 클래식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TV예술무대’를 월요일 밤 1시 40분이라는 유배지에 가까운 시간대에 배치했다. SBS 또한 사정이 다르지 않아서, <정재형 이효리의 유 앤 아이> 종영 이후엔 문화계 소식을 전하는 ‘SBS 컬쳐클럽’과 <문화가중계> 정도가 살아남았다. 그마저도 장르적 편중이 클래식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라 <김정은의 초콜렛> - <정재형 이효리의 유 앤 아이>의 라이브 음악쇼 계보는 사실상 끊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개국 초창기 ‘P.S. I love you 박정현’을 만들었던 TV조선은 방영 13회 만에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그 이후 종편 4사를 다 뒤져보아도 이렇다 할 음악 쇼가 나온 적은 없다시피 하다. 현재 종편 4사를 통틀어 존재하는 음악쇼는 곧 4시즌에 돌입하는 JTBC <히든싱어>와 JTBC <끝까지 간다> 정도가 전부인데, 이마저도 정통 라이브 음악쇼라기보단 음악을 매개로 한 게임쇼에 가깝다. 이제 순위 프로그램과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가수들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자기 노래를 할 만한 무대가 거의 없어진 셈이다. 나오더라도 가면을 쓰거나 방 안에 들어가거나 추첨공을 뽑아 남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물론 시청률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낮은 시청률이지만 의미 있는 프로를 만든다는 의무감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다른 언론들이 좀처럼 다뤄주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이를테면 시청률에 구애받지 않고 꿋꿋하게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길을 11년째 걷고 있는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 말이다. 당장 <유희열의 스케치북> 관련 칼럼을 쓴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는 올해 <스페이스 공감>에 대해 몇 차례나 보도했을까? 2015년 1월 1일부터 7월 26일까지 <스페이스 공감>은 총 78번 언급됐는데, 그 중 76번이 김준수가 6년 만에 방송 무대에 선 2015년 5월 1일 방영분에 집중되어 있다. 나머지 두 건은 과거 <스페이스 공감> 헬로루키에서 대상을 받았던 코어매거진이 서울공연을 한다는 소식과, 싱어송라이터 빌리어코스티가 인터뷰 중 ‘서 보고 싶은 무대’로 <스페이스 공감>을 꼽았다는 것 정도다.



오해 마시길. 해당 언론사를 비판하거나 망신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당장 나부터도 글을 쓰면서 <스페이스 공감>을 언급해 본 일이 거의 없는 마당에 내가 뭐라고 남을 비판한단 말인가. 그러나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아이돌에 밀려 음악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근심하는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조차, 정작 우직하게 정통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의 길을 걷는 <스페이스 공감>에는 김준수가 나오는 게 아닌 이상 큰 관심을 주지 않는 상황은 대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 우린 어쩌면 누군가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책무를 지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그렇게 타협 없이 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겐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지상파에서 비아이돌 계열 뮤지션이 설 무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가슴 아프다면, 지금 남아있는 무대들에 대해서라도 더 많이 떠들어야 한다.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대해, EBS <스페이스 공감>에 대해, KBS <콘서트 7080>과 <열린 음악회>에 대해, MBC ‘TV예술무대’와 SBS ‘SBS 컬쳐클럽’에 대해. 그렇게 실컷 떠들고 널리 알렸을 때에야, 우리도 거들테니 더 다양한 콘텐츠를 무대 위에 올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책무는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게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모두가 같이 나눠져야 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당장 나부터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 책무를 나눠지며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EBS <스페이스 공감>은 목요일 밤 12시 10분, 1시 5분에 두 편 연속 방영이 되며, 이번 주엔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한 호란과 4인조로 개편한 밴드 솔루션스가 출연한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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