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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오르페오’가 만든 천국과 지옥을 만나다
기사입력 :[ 2015-08-04 11:10 ]


가장 오래됐지만 가장 현대적인 오페라로 탄생한 ‘오르페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는 오늘날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그리스 신화 중 하나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뱀에 물려 죽은 아내를 찾으러 천상으로 간 하프의 명수 오르페오가 그녀를 지상으로 데려갈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라는 플루토네와의 약속을 어기고 결국 뒤돌아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지난 7월 2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막을 내린 오페라 ‘오르페오’는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과 유한하고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간’ 사이의 간극을 음악으로 채워 넣은 작품이었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의 새 단장이 된 김학민 연출은 ‘죽음을 불사한 사랑을 나눈 남녀의 이야기’와 ‘영원을 갈구하나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는 자각과 깨달음’을 큰 틀로 한 채 이번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무대디자이너 신재희는 크기가 상이한 원들의 조합을 통해 각각의 여정을 담아냄은 물론 무대 정면의 원형 창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인물들의 심리에 따라 색을 달리하며 인간의 희노애락을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통제와 감시의 세계인 하계 장면에서는 거대한 눈을 무대 위에 설치하며 장면을 구획했다.

프롤로그와 5막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지옥까지 정복했지만 스스로의 열정은 정복하지 못한 남자 오르페오의 사랑과 시련, 은총이 주요 내용으로 그려진다.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멀지만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오페라”라고 김학민 연출이 스스로 명명했듯 지금으로부터 약 408년 전인 1607년 만토바에서 초연된 작품을 2015년 현대로 자연스럽게 초대하고자 했다. 음표가 그려진 거대하고 동그란 공은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사랑과 추억의 결정체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관객들에게 순수한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오브제로 등장했다.



특히 마지막 ‘찰칵’ 사진 찍는 소리에서 읽어낼 수 있듯 김학민 연출은 멀게만 느껴지는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 시대 관객들과의 접점을 고민한 듯 했다. 대중성을 오페라 무대 위로 끌어오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지금까지 줄곧 계속 돼왔다. 물론 이런 시도를 바라보는 관계자와 대중들의 시선은 엇갈린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오페라단(단장 이건용)이 국내 초연으로 선보인 ‘오르페오’는 연주 가능한 가장 오래된 오페라이다. 또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역사의 사이에 서 있는 점도 큰 의미를 더한다. 대규모의 다양한 기악 편성과 마드리갈(14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자유로운 형식의 성악곡) 분위기의 보컬 앙상블은 르네상스를 가리키지만 유기적으로 짜인 음조와 감정적인 보컬은 다가올 바로크 양식을 예견하고 있는 것. 또한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악곡 형식인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의 모체가 된 모노디 양식은 오페라 ‘오르페오’에 의해 음악적으로 본격 확립되었다.

바로크 음악 및 고음악의 대표적인 학자 정경영 교수가 이번 공연에서 바로크 음악감독을 맡아 지휘자 양진모 씨와 함께 음악을 섬세하게 만들어 갔다. 악보의 문제, 악기의 문제, 연주법의 문제 세 가지를 충분히 고려한 창작진은 원곡 악보를 현 시대와 대한민국 실정에 맞게 전부 새로 그려냈다. 그 결과 바로크 음악 연주법은 유지하되 쳄발로, 류트, 테오르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는 현대 악기로 편성했다.



현악기와 관악기를 번갈아 사용하는 식으로 다양성을 확보했고, 노래를 반주하는 콘티누오 역시 쳄발로와 첼로를 기본으로 하되, 극의 내용에 따라 적절한 음색을 갖는 다른 구성을 사용했다. 지휘자 양진모는 지휘뿐만 아니라, 쳄발리스트 김희정 교수와 함께 쳄발로를 연주하며 출연 성악가들과 호흡을 함께 했다.

현대의 시각으로 재구성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음악을 온 몸으로 보여준 이는 바리톤 한규원과 테너 김세일이다. 여타의 비슷한 제목의 오페라 보다 타이틀 롤의 비중이 막강하다. 이 외 성악가 정혜욱, 허진아, 정주희, 이희상, 김선정, 김보혜, 박준혁, 김인휘, 조규희, 이석늑 등이 출연했다. 님프와 목동 역등으로 출연한 장지애, 강윤광, 김지훈, 유혁, 조병수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초기 바로크 오페라 음악을 오늘날의 음악으로 되살린 연주자는 2010년 국립오페라단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반주를 맡아 호평 받은 '바흐 콜레기움 서울‘(리더 이현정)이었다.

이 작품의 중요한 배역인 ‘오르페오’는 인간은 물론 동물과 산천초목까지 감동시킨다는 노래 실력을 갖춘 음악가이다. 그는 만물은 물론, 어두운 곳에서 일생을 지내는 지하 세계의 신까지 감동시키는 음악, 즉 ‘말 할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이다. 3막 ‘힘쎈 정령이여’가 유명하다.



주인공 오르페오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다. 물론 홀로 음악 속에 심취하는 게 아닌 관객까지 함께 그 세계로 손잡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즉 1막에서는 영원한 하늘의 별만큼 많고, 푸르른 오월의 들판에 핀 나뭇잎처럼 많은 심장이 모두 기쁨이 넘쳐흐르는 로맨스남 오르페오로 등장하는가 하면, 5막에서는 아르고스(눈이 100개나 달린 거인)의 눈이 눈물을 흘러 바다를 이룬다 해도 오르페오의 비탄에는 충분치 못함을 관객들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하듯 심장이 산산이 부서진 남자로 나선다. 그 점에서 바리톤 한규원 오르페오는 음악과 드라마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율하며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들려주는 성악가는 차고 넘치지만 여기에 더해 극장 공기를 제압하는 능력이 뛰어난 성악가는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 했다.

다만 두 명의 에우리디체인 소프라노 정혜욱, 허진아 모두 열연을 펼쳤으나 노래하는 장면의 비중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음악의 신’과 에우리디체를 따로 두지 말고 몇몇 프로덕션에서 볼 수 있듯 1인 2역으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오르페오’는 극장을 나선 뒤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묘미가 있었다. 바로 솔직한 관객들의 평이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무엇보다 태양의 신 아폴로 역 배우들의 의상에 대한 말이 많았다. 다소 서정적으로 진행되던 오페라 무대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신 금박칠을 한 가수들이 나서자 다들 눈과 입이 한 없이 벌어진 것. 미니멀한 무대콘셉트와는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아폴로의 의상은 좋게 보면 관객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나쁘게 보면 오르페오의 마지막 여정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게 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차기작 ‘파우스트’에 또 다른 희망을 걸어본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서울시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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