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갖춘 유재석에게도 예능 설계사는 절실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7월 이후 FNC발 뉴스들의 결정체는 유재석 사단의 결성이다. 기업 가치가 급등하고 코스닥 뉴스를 술렁이게 만든 것도 유재석이란 브랜드,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는 유재석 사단에 대한 기대의 반영이다. 기존의 이국주와 문세윤을 제외하면 FNC와 연결된 모든 예능인들은 친 유재석이거나 유재석과 함께 방송을 하고 있다. 4대 천왕 정형돈을 필두로, 오랜 지기 송은이부터 노홍철, 김용만과 같은 잠룡들 그리고 최근엔 <런닝맨><동상이몽>에서 함께 뛰는 지석진까지, 하하와 박명수를 제외하면 유재석 사단이라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유재석 곁으로 모이거나 모여들고 있다.

그런데 그간 수많은 대형 기획사의 최고수준 오퍼를 거절하고 겸손하고 건실하게 독자 활동을 하던 유재석이 사단을 형성하는 건 분명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와는 전혀 다른 예사롭지 않은 모양새다. 예능 노하우를 지니지 못한 FNC에 둥지를 튼 것부터 한성호 대표가 밝힌 인간적인 교감 외에 어떤 비전을 공유했는지 왜 사단을 꾸리는지 명확하게 드러난 바가 없다.

FNC가 꾸는 꿈은 명확하고도 당연하다. FNC를 비롯해 많은 기획사들이 예능 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힘껏 뛰어드는 판세에 대한 분석은 이미 많이 이야기 됐다. 주력사업인 K팝과의 시너지 및 TV매체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면서 방송 콘텐츠의 핵심으로 떠오른 예능(이란 장르로 수렴되는 대부분의 방송 콘텐츠)을 미래로 삼기 위한 투자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한다는 건가. 오늘날 TV 방송 관련 학술자료나 칼럼을 보면 TV시청 패턴의 변화, 방송 권력의 지각변동에 관련된 온갖 새로운 학술용어들이 판친다. 어렵고 뭔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지만 한마디로 집에 앉아 본방을 보는 TV시청 패턴이 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해 유통과 콘텐츠 제작 등 모든 방송 산업이 TV와 편성표라는 기존 우주를 벗어나고 있단 말이다. 쉽게 생각해 지하철 풍경을 떠올리면 된다. 모두가 한 손에 스마트폰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를 보고 있는 ‘우리’를 위한 방송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재편되어간다는 거다. 예능은 이런 변화를 가장 재빠르게 따라가거나 앞서서 이끌어갈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이고 유연한 장르다.



그런 이때 FNC나 여타 대형기획사들이 예능에 뛰어든 목적은 스타를 많이 보유해 방송국에 입김을 강화하고자 하는 수준이 아니다.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독자적 능력을 갖추는 게 궁극의 목표고, 그 첫 번째 단계로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방송국, 특히 공중파란 플랫폼이 점점 힘을 잃으면서 콘텐츠 자체가 더욱 중요해졌다. 방송국은 갑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라 협업을 하는 파트너고, 방송이 웹으로 점점 넘어가면서 방송국 브랜드보단 콘텐츠 제작자의 브랜드가 중요시 되는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역학관계는 뒤바뀐다.

즉 콘텐츠 제공자 즉 ‘자체제작’이 곧 파워가 된다. 나영석 PD가 tvN의 물량으로 <신서유기>를 제작하지만 웹에다 풀겠다는 것도 이런 일련의 맥락 속에서 벌이는 실험이다. 사업 모델이란 사람이 몰리는 곳에선 만들어지기 마련이고, 어디서 볼 수 있느냐의 접근성보다 특정 제작자나 출연자의 브랜드에 대한 긴밀한 유대와 충성심이 승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대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유재석은 예능 MC 중 가장 높은 충성도와 호감을 가진 브랜드다. FNC의 투자는 바로 이러한 유재석 브랜드에 대한 투자다. 독자적 콘텐츠 개발도 하겠지만 우선 유재석 사단을 통해 방송 제작 단계에서 대주주로 역할을 하며 유재석 브랜드만의 색깔을 더욱 확실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유재석의 입장에서도 지금처럼 공중파 기획안에 자신이 섭외되는 수준으로는 도저히 현상 유지를 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유재석은 비교불가의 대중적 지지를 받는 인물이지만 냉정히 말해서 기대되는 예능 브랜드는 아니다. 따라서 유재석의 브랜드, 유재석 사단이 성공하려면 콘텐츠 기획의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특정한 정서를 대중과 공감하면서 높은 충성도를 이끌어낼 기획, 그의 이미지와 능력을 살릴 판을 깔아줄 김태호 PD같은 설계사가 필요하다. 비교불가의 원톱이면서도 <무한도전>을 제외하고 <나는 남자다> <동상이몽> 등 신규 프로그램들에서 거둔 저조한 실적은 유재석의 능력과 호감도가 떨어졌다기보다 기획의 부재에서 나온 것이다. FNC에 들어가 사단을 모으고, 종편에 출연하는 등 일련의 광폭 행보는 유재석 본인도 이런 상황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 점에서 유재석 사단이 탄생했다고 호사가들이 호들갑을 떨지만 아직은 예능계의 지각변동이나 앞으로 변화될 방송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별다른 솔루션이 보이지 않는다. 기왕 하는 것 더 적극적이고 실험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동상이몽>처럼 어설픈 솔루션 치유 모임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YG가 유병재를, CJ가 나영석 PD를 비롯한 기획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듯 콘텐츠 브랜드를 책임질 기획자의 영입 혹은 AOA에게 용감한형제를 만나게 해준 것과 같은 파트너십이 절실해 보인다. 유재석은 성실하며 훌륭한 인격을 갖춘 리더형 인물이고, 재밌는 예능인이며 탁월한 진행자이지만 기획자는 아니다.

해외의 경우 유명 코미디 배우가 작가 겸 기획자인 경우가 많다. 유병재의 케이스가 보편적이라는 건데 할리우드의 주드 애파토우 사단에서는 윌 페럴을 위시한 2000년대 초반의 주요 코미디 배우들부터 세스 로건, 조나 힐 등 최근 메이저 스타가 된 젊은 배우들까지 스타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다. 애파토우가 제작을 맡아 지원했던 폴 페이그는 이제 그를 뛰어넘어 코미디 영화판에서 가장 잘나가는 감독이 됐다. 그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충성도 높은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유재석도 사단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 변화에 성공하려면 대중들의 충성도를 이끌어낼 정서적 교감과 일정한 색깔을 내야 한다. 그게 영어로 브랜드다. 이를 가능하게 할 기획자를 찾아야 한다. 김태호 PD와 짝을 이루면 가장 훌륭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선별할 줄 알아야 한다. ‘아, 이것이 유재석 사단의 예능이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브랜드를 갖추는 것이 앞으로 벌어질 대혼란의 시기와 콘텐츠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돛이 될 것이다. 그래서 유재석 사단이 속속 모이고 있다는 건 뉴스가 될 수는 있지만 전략은 아니다. 아직까지 한 자리가 절실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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